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 출생. 아버지 사에키 분이치와 어머니 가네코 기쿠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무적자’로 살았다.
1912년, 당시 충청북도 부강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가 약 7년간 생활한다. 이때 외할아버지 가네코 도미타로의 다섯째 딸로 입적한다.
1919년 4월 12일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1920년 봄에 상경하여 신문팔이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한다. 거리 연설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만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니힐리즘에 심취하였다.
잡지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犬コロ)]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후미코는 1922년 4월경부터 박열과 동지로서 동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흑도회의 기관지 [흑도] 간행에 착수하여 1호와 2호를 발간하고, 흑도회가 해산한 이후에는 월간지 [후테이센징(太い鮮人)](불량하고 불온한 조선사람이라는 뜻의 불령선인(不逞鮮人)을 빗대어 말함)을 발간한다. 그리고 1923년 4월에는 박열과 함께 ‘불령사(不逞社)’를 결성한다.
관동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 3일, 후미코와 박열은 보호검속 명분으로 구속되고 10월 10일 치안경찰법위법으로 기소된다. 1924년 2월 15일 폭발물취급벌칙 위반으로 추소, 이어 1925년 7월 17일 박열과 함께 대역죄 및 폭발물취급벌칙 죄로 기소된다. 1926년 2월 26일, 후미코와 박열에 대한 대심원특별형사부의 공판이 시작되고 3월 25일에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어 4월 5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대학 비교사회문화연구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후 일본문학이 패전 후 연합국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같은 테마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 『만들어진 점령서사』(산지니, 2009)를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전쟁, 점령, 민족, 젠더, 언어 등의 문제가 서로 교차하면서 어떤 위계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지는지에 대해 주목해왔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 천황제의 억압과 통제에 추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히 실천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감동하여 그녀의 수기를 번역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