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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

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

베개 시인선이동
정고요 | 시용 | 2021년 11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228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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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57쪽 | 215g | 125*190*12mm
ISBN13 9788996370888
ISBN10 899637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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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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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

세계가 달아올랐다
낯익었다
폭염의 날들

고양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정자 아래
나뭇잎 돌 작은 열매 꽃으로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있었다

아이들 등지고
반대 모서리에 앉았다

한 아이가 다가왔다
제가 고양이를 만져봐도 될까요

글쎄, 고양이가 낯선 사람은 무서워해
나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아이가 응답했다

저는 한빛초등학교 1학년 전영수라고 합니다

--------------------------------------------------------------------



아버지, 저는 제가 태어난 해에 죽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지냅니다. 인간의 동물적인 면에 실망하고 동물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바라며 지냅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저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제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들 가진 것 가지는 대신 사람들 안 가진 것을 가집니다. 행복에 물을 타는 대신 불행을 졸입니다. 졸인 불행에서는 고독의 냄새가 납니다.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세상에 자식처럼 여기는 게 많은데 세상은 저를 자식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죽음이 시작되면 삶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삶이 끝나지 않아 죽음이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이럴 수 없었지만 이럴 수 있습니다. 눈을 뜨고 아버지를 볼 수 없어 눈을 감아야 아버지가 보입니다. 밤에 읽은 글은 아침에 없고 아침에 쓴 글은 밤에 읽지 못합니다.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허물어질 일 없이 아버지를 묻었습니다. 검은 옷을 태우고 돌아와 발톱을 깎았습니다. 발톱을 깎는 자세는 무릎을 껴안기 좋습니다. 무릎을 껴안기 좋아서 무릎을 터트리기 좋습니다.

깎다, 라는 동사에는 기역이 너무 많습니다. 기억이 너무 많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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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라이닝

시를 쓰고 제 삶은 정말 바뀌었답니다. 정고요 시인의 전언에 마음이 쓰였다. 이제 나는 시를 쓴다고 삶이 바뀌진 않는다고 생각하는 무덤(덤한) 사람이 되었다. 시인의 말이 참으로 거대하게 느껴졌다. 시인이 저렇게 확신에 차 (정말) 말하는 건 시가 그에게 진실로 그러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인의 말을 지워 놓고 싶었다. 시를 읽기 전까지. 한때는 나도 시를 썼기에 삶이 달라졌다고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가 아니라면 나를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시가 나를 살게 했다고 감히 말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시를 쓰고 삶이 바뀌었다는 말은 그로써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기도 할 터. 시집의 제목 ‘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실감으로 다가온 건 그 때문이었다. 시인은 다시 태어나는 것. 그 실감을 기미 삼아 시를 읽었다. 읽으면서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문장은 ‘다음번 파도가 칠 때까지’였다. 바다와 해변과 파도를 열렬하게 구독하는 정고요 시인의 시에는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식어 버린 물이 아니라 ‘천천히 식은 물’을 시의 순간으로 삼으려는 태도. 누군가가 내게 정고요 시인의 고유함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그 기다림에 관해 말할 것이다. 정고요의 시는 기다리는 사람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계를 확인하게 한다. 그 지연의 세계 속에 머물면서 나는 언젠가 한 해변에서 보았던 아이를 떠올렸다. 해변에 서서 그저 한 파도에 뒤이어 오는 다음 파도를 기다리던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무섭고 신비롭다고 생각했다. 그게 시적인 건 아니었고, 아이가 돌아서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을 때 시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 웃음엔 울음이(감격이) 서려 있었다. 내가 『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의 최후에서 받았던 인상은 바로 그 ‘웃음-울음’이었다. 웃음을 기다리면 울음이 되고 울음을 기다리면 웃음이 된다. 정고요 시인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따르노라면 결국 탄생의 환희에 깃든 슬픔으로 회귀하게 된다. 맑고 깨끗하고 조용한 수평선, 그 위로 기다리면 흘러오는 구름. 그런 풍광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시를 쓰며 바뀐 삶을 다시 믿어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먹구름의 가장자리로 새어 나오는 빛은 한 줄기로도 세상을 환히 밝힌다. 정고요의 시에 대한 나의 화답은 이 말뿐이어도 족할 듯싶다.
- 김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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