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는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세계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나쁜 병입니다.
주인공도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려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랑과 우정도 깨졌습니다.
이런 불행 속에서도 주인공은 코로나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거손+비’로 코로나에 당당히 맞섭니다.
주인공은 환경 파괴가 코로나의 원인인 걸 알게 되면서 하이디의 삶을 동경합니다.
자연의 품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헤아립니다.
대장장이가 모루에서 무쇠를 벼리듯,
주인공은 청정한 자연에서 몸과 맘을 벼립니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잃었던 우정도 되찾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되찾는 과정이 너무 대견스럽고 눈물겹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린이 여러분도 은혜와 감사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에도 용감한 도전자로 발돋움할 거라 믿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아이고, 우리 찬이 어서 오니라.”
전화를 받은 외할머니는 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웃었지만 어두운 그 웃음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여기가 찬이 네 방이야.”
할머니는 여행가방을 갖다 주며 말했다. 엄마는 현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돌아섰다. 엄마와 떨어진다 생각하니 핑 눈물이 돌았다. 그러나 엄마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라.”
엄마는 울지는 않았지만 말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내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인지 엄마는 서둘러 떠났다.
“엄마, 엄마아!”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젖은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며 황급히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코로나19는 나를 떠돌이로 만들었다.
--- pp. 42~43 「엄마의 눈물」 중에서
“아빠가 코로나 확진자로 나왔죠?”
이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눈앞이 캄캄해 이모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럼 이모가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하나요?”
“찬아, 마거손비!”
나는 주춤 물러섰다. 이모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마거손비’를 외치며 세뇌교육을 시켰다. 이모는 코로나 확진자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나와 입원할 병실이 없다고 했다.
“그럼 어떡해요?”
“자가격리(집에서 외출을 금하고 다른 사람과 접촉 못함)를 해야 하지.”
--- p. 48 「죄 없는 박쥐」 중에서
웅이는 만복이 이야기를 했다. 만복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새벽 찬바람을 쐬며 폐휴지를 줍는단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 새하늘교회 골목을 쏘다녀도 코로나는 비켜간다 했다. 마스크는 바이러스와 찬바람을 막는 보온용이란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으니 거리두기가 저절로 이뤄지고, 폐휴지를 만진 손은 밥 먹기 전에 씻으니 ‘마거손’은 자동이라고 했다. 닫힌 공간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으니 코로나19는 부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지만 복만이네에게는 삶의 도우미가 된다고 농담했다. 다만 명줄을 잇기 위해 더 뛸 수밖에 없는 게 험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복지관에서 독거노인에게 주는 반찬과 도시락도 코로나로 끊겼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는 방학 동안 밥을 굶는 어린이에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카드를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카드가 있어도 만복이는 먹을 수 없단다. 오천 원 이내의 밥을 지정된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그런 식당이 셋이다. 국숫집과 국밥집, 김밥집인데 코로나로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새하늘교회 근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고 물어 먼 곳까지 찾아가서 김밥을 사 온다고 했다. 부자에게 코로나는 ‘걸리느냐 마느냐’ 문제지만, 복만네는 ‘굶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였다.
--- pp. 69~70 「마스크가 뭐길래」 중에서
“이모.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어요?”
“결과는 볼 것도 없다니까.”
내 예상대로였다. 외할머니의 모성애는 곧 감염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외할머니와 만남도 당분간 할 수 없다. 내가 갈 곳은 할아버지 댁뿐인 것 같았다.
“이모, 나 산골 할아버지 집으로 갈래요.”
나는 쭈뼛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왜, 이모가 싫다는 말이니?”
“그게 아니라 이모가 출근하면 나 혼자 종일 갇혀 있어야 하잖아요.”
“창살 없는 감옥이란 말이구나.”
--- pp. 98~99 「산골로 떠나는 떠돌이」 중에서
은박지 안에서 노랗게 익은 호박고구마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우리 셋은 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할아버지는 가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먹는가를 보려고 일부러 크기가 다른 고구마를 구운 것 같았다.
‘어떻게 먹을까?’
잠시 생각했다. 내가 주인이라고 큰 걸 먹으며 둘이 서운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석이에게 큰 걸 먹으라고 하면 흑기사가 섭섭해할 것 같았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야, 우리 가위 바위 보로 1등이 큰 것 먹기로 하자.”
“찬이 네가 주인이니 큰 것 먹어.”
자기만 아는 석이도 분위기가 바뀌니 생각도 바뀐 것 같았다.
우리는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석이가 큰 것, 내가 중간, 웅이가 작은 것을 먹게 되었다. (중략) 우리는 특별히 방에서 먹으라며 어탕국수를 내왔다. 그릇이 모자라는지 크기가 달랐다. 하나는 우동 그릇, 또 하나는 보통 대접, 다른 하나는 작은 대접이었다. 할아버지는 또 가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복불복 할래?”
나는 또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했다. 그때 석이가 나섰다.
“세상은 공평한 거야. 내가 제일 큰 고구마를 먹었으니 제일 작은 그릇은 내 것.”
이렇게 말하며 공기 그릇을 가져갔다. 나는 가운데 것, 웅이는 큰 그릇이었다.
우리들은 작은 것에서 커다란 원리를 발견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치를 깨달았다. 작은 것으로도 큰 이치를 가르쳐 주려는 할아버지의 뜻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 pp. 144~146 「산골에 울린 함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