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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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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76g | 128*208*7mm
ISBN13 9788960215986
ISBN10 896021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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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 사과

이건 북향 사과군
당신은 맛없는 사과를 만나면
그렇게 말하는 버릇이 있더군
사과 좀 안다 이거지
꽃눈이 늦어 씨알이 잘고
오래 시고 푸른 사과
당신은 북향 사과 앞에서는
이 말도 잊지 않더군
비바람에 가지 놓치지 않고
껍질 두꺼워 벌레가 잘 끼지 않는다고
듣다 보면 내 이야기나 당신 이야기 같은
낯익은 이야기가 되어
잠깐 서글퍼졌다 훈훈해지지
사과를 고르다 보면 고르게 둥근 사과를
만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더군
한쪽이 기운 사과를 깎으며
더듬더듬 사과의 북향을 지나
기운 쪽은 내 것으로 당겨 놓고
도톰한 쪽을 내밀며
꿀사과야 하고 권하면
우리는 또 잠깐 서글펐다 오래 훈훈해지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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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다운 시를 읽는다. 한 편, 한 편을 흘려 읽을 수가 없다. 서정성이 적정하게 균형을 이룬 시편들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 시집을 나는 ‘엉덩이의 미학’으로 읽는다. 머리가 삶을 관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 “머리통”은 “엉덩이에서 쭉 뽑아 올린”(「엉덩이의 힘」) 것이다. 엉덩이는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다. ‘물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마르크스)하는 것처럼 현실이 이성을 지탱한다.
이 시집에는 소가 여물을 되새김하듯 오래 새기고 싶은 신선한 감각적 표현들이 넘쳐 난다. “소쩍새 울음 화살나무 촉처럼 돋아나는 시간”(「슬픈 왈츠」)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단편 서사인 「밥상 이야기」를 읽으며 “내 눈에는 눈물이 그득 차”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시인의 시는 뭉클했다.
- 이재무 (시인)
황정희 시는 달콤한 남향 사과를 아껴 먹듯 아껴 가며 읽어야 한다. 이 생물학적이고 우주적이며 동화적인 상상력과 언어 감각이라니! 이 영양이 풍부한 서정의 맛이라니! 그래서 이 시집은 가히 아름다운 서정의 보고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황정희가 가꾼 서정의 정원에서 “한쪽이 기운 사과”와 “곰삭아야 달아지는” 고욤이 주는 인생의 깊은 은유를 맛볼 수 있다. 더하여 이 시집은 동화적 상상과 동시적 표현이 이른 봄 나뭇가지에 오른 새잎처럼 맑고 푸르게 돋아 있는, 기후와 천체와 곤충과 수목과 날짐승과 길짐승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다시 꿰어 내는 만물동근과 만물동원의 남다른 상상력의 숲이다. 확언하건대 “새 울음 몇 자루 받고 능금을 모두 넘겼다”는, 이 아름다운 교환을 한 시인은 천하에 황정희가 처음일 것이다.
-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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