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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김경희 | 공명 | 2021년 1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9 리뷰 22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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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64g | 140*200*18mm
ISBN13 9788997870585
ISBN10 899787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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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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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남매 중 막내인 나는 여러모로 가장 많이 아빠를 닮았다. 외모는 그렇다 치고 식성과 성격까지 똑 닮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좋은 관계로 지내지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아빠를 미워했다. 이유를 들자면 엄마를 너무도 고생시켰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빠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고 아빠가 하는 말은 건성으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별로 도움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그가 나는 못마땅했다. 인물값 좀 하는 잘생긴 외모에 한량 기질까지, 아빠는 언제나 치열한 삶에서는 한 발 빗겨 나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빠의 인생에 등을 돌린 채 마흔을 훌쩍 넘겼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인생이 즐거웠는지, 고통스러웠는지, 혹은 살 만한 것이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말이다.

2018년 봄에서 여름 사이에 10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작가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아빠와의 인터뷰처럼 긴장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번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마지막 인터뷰 날,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고 서로 꽤 대화가 잘 통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 시간씩 10번이면 될 일을 왜 3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왔을까……. 후회가 되었다.
10번의 인터뷰가 끝나고 정확히 한 달 후에 아빠는 암 선고를 받았다.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나는 그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수술 후 1년이 가까워질 무렵, 거짓말처럼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났다. 언제나 거대하고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 같았던 그가 약해질 수도 있으며 몹시 작아지다가 종국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딸은 아빠의 인생을 알 수 없었고 조금이나마 철이 들어서 이해하려고 할 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2019년 여름,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죽음은 그저 사라지는 거였다. 어제는 분명히 있었는데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죽음이었다. 시공간은 그저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왜 미처 몰랐을까?
--- 「프롤로그」 중에서


아빠의 존재는 내게 늘 연구대상이었다. 그는 늘 사람을 헷갈리게 했다. 어떨 때 보면 남자다운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 순식간에 비겁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아빠라면 가족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다. 어떤 게 아빠의 본모습일까 헤아려 보기 위함이다. 고민의 힘이란 그런 걸까? 나는 웬만하면 사람에게 잘 속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아빠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두 번이야 속을 수 있다지만 아빠는 뒤돌아서면 또 속았다. 그러면서 재산도 많이 잃었다. 웬만하면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아빠는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또 보는 사람이다. 어린 마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아빠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온 아빠가 거실에 앉아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포효하는 한 마리 사자처럼 보였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잘난 모습이든 못난 모습이든 고스란히 노출하는 사람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듣고는 나는 단박에 아빠를 떠올렸다. ‘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재봉선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너무 아름다워서 흠잡을 데가 없다’는 뜻도 되지만 ‘옷감에 재봉선이 없다 보니 치부가 다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 아빠도 그랬다.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안 그런 척 하는 것은 아빠의 성향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탓에 아빠 같은 사람들은 결국 무인도처럼 외로운 삶을 산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살지는 않았다. 단점과 치부가 다 드러나는 아빠로 인해 힘들 때도 많았지만 다르게 보면 나는 아빠 덕에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가히 미래에 올 고통을 미리 겪게 하는 그는 요가 같은 사람이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나는 아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모두 희생적이고 훌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도 있고, 자랑할 거 하나 없는 인생을 산 아버지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고 살아왔다. 그저 최악의 아버지만 아니면 되는 게 아닐까? 자식들은 훌륭한 아버지든 조금 못난 아버지든 모든 것에서 나름대로 배우며 자란다. 꿀처럼 달콤한 아버지이든 요가처럼 미리 고통을 겪게 하는 아버지이든 그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 「요가 같은 사람」 중에서


80세가 넘은 아빠의 숨이 이토록 소중한 거였다는 걸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딸은 이제야 알 것 같다. 숨이 멈춘 아빠의 코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팔베개를 해주던 아빠의 마음, 뭔가 더 해주고 싶지만 해줄 게 없어서 나오던 그 한숨들이 이제야 다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의 숨이 멈춰진 후 우리는 병실에서 한 시간 정도를 그대로 있었다. 잠든 모습 그대로 누워 있는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대보았다. 손끝은 조금 식었지만 아직 가슴은 따뜻했다. 투병으로 많이 야위었지만 그럼에도 아빠의 가슴은 여전히 넓었다. 다신 이토록 넓은 가슴에 안길 일이 없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돌이켜보니 받은 사랑만큼 아빠에게 돌려준 것이 하나도 없이 나는 아빠를 잃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몹시 후회가 된다.
아빠의 마지막 호흡을 목격한 그날, 나는 인생의 중요한 비밀 하나를 알아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몹시 이기적인 나는 그제야 아빠에게 등 돌린 세월이 후회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죽음 앞에서야 겨우 겸손해졌다.
--- 「마지막 호흡」 중에서


85. 아버지, 우리가 어떤 아버지로 기억하길 바라세요?

─ 글쎄,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는가 하는 건 너희들 몫이지, 내가 말할 건 아니지 않니? 그건 오로지 너희들 몫이야. 그저 지금 내 꿈이라면 너희들 모두 건강히 잘 살면 되는 거지. 내가 어떤 사람일까? 엊그제 내가 그림 배우는 곳에 다니는 전직 조종사 분들이 나를 며칠째 지켜보면서 이렇게 묻는 거야. 대체 예전에 뭐하던 분이시냐고. 보통 웬만한 사람들은 과거에 뭐하고 살았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 나는 도통 뭐하던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렇지, 나는 그런 사람이지. 한번은 그림 수업하는 날 다들 빙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어. 나는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일어나서 그랬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나는 마흔여덟 살이다, 라고 말이야.
---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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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풍성한 추억”이라는 저자의 말은 삶의 종착역에 가까워져 있는 암 환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 조합에 의한 우연이 아니라 서로의 영적인 성장을 돕도록 맺어진 인연이다. 저자가 아버지에게 100가지의 질문을 던지며 평생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불편함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또 아버지가 지난 80여 년의 삶을 회상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 정현채 (작가,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야식을 사들고 귀가하는 아버지,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우리 딸 최고!”라고 치켜세워 주는 아버지. 저자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 첫 장을 펼칠 때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아버지란 원래 그러니까. 엄마와의 관계가 애증(愛憎) 중에서 ‘애(愛)’로 더 기울어져 있다면, 아버지는 ‘증(憎)’으로 더 기울어진 존재가 아닌가(나만 그러한가)?
- 김민정 (작가, 『엄마의 도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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