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바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이야기’라는 말은 ‘이어약耳於藥’ 즉 ‘귀로 먹는 약’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야기는 유익합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말의 쓰임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가르쳐 줍니다.
사랑과 지혜가 가득 담긴 이야기는 더욱 유익합니다.
별은 바라보아야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만 비로소 유익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시 꾸민 것입니다. 지나간 이야기 같지만 되돌아보면 또 새로운 세상 이야기들입니다.
자, 넓은 그늘 아래로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러 가요
--- 「머리말」
그 무렵 네 고조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셨어. 그런데도 왜놈들을 물리치는데 앞장서셨어.
저 멀리 프랑스 파리로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데에도 앞장서셨지. 거기에서 큰 회의가 열렸는데 지금 일본이 우리나라를 억누르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편지였어. 그 편지에 우리 마을에서는 가장 먼저 이름을 쓰셨어.
나중에 거기에 이름을 쓴 사람은 일본놈들한테 모두 잡혀가서 곤욕을 치렀어. 그런데 네 고조할아버지는 잡혀가지 않으셨어.
‘이상하다. 내가 가장 먼저 이름을 썼는데 왜 나는 잡아가지 않는 것이지.’
그래서 네 고조할아버지는 스스로 경찰서로 가서 고함을 지르셨어.
“야, 이 나쁜 놈들아! 내가 맨 먼저 그 문서에 이름을 썼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만 잡아가고 나는 잡아가지 않느냐? 어서 다른 사람들을 풀어 주고 나를 잡아 가두어라.”
그러자 왜놈 순사가 말했어.
“영감 이름은 이 문서에 없소.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시오.”
“뭐라고? 내 이름이 거기에 없다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내가 맨 처음으로 이름을 썼다.”
네 고조할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을 잡아 가두라고 우겨대셨어. 참다못한 왜놈 순사가 그 문서를 내보이며 말했어.
“자, 여기 보시오. 영감 이름은 없소. 어서 돌아가시오.”
“아니, 이럴 수가! 내 아들놈이 내 이름을 제 이름으로 고쳤구나.”
그래, 네 증조할아버지가 붓으로 몇 줄 더 그어서 네 고조할아버지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고쳤던 거야. 그래서 네 고조할아버지는 붙잡혀 가지 않고 네 증조할아버지만 붙잡혀 가셨어.
--- pp.50~51 「할배요, 할배요 - 누가 뒷산을 지켜왔는가」 중에서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대. 며느리가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이 늙은이는 돋보기를 끼고 옆에 앉아 일일이 바느질을 살펴보더래. 보통 때에도 ‘이게 밥이냐? 죽이냐?’ 했기에 며느리는 손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어. 그렇지만 며느리는 침착하게 바느질을 해 나갔어.
그때 마침 마을 갔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마른 가자미를 한 두름 사왔더라는 거야. ‘그것 참 먹음직스럽구나!’ 늙은이는 아들을 아주 대견스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저녁밥을 먹으려고 둘러앉았을 때에는 밥상을 드르륵 밀어버리면서 ‘원 고얀 것들!’ 하고는 토라지더라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습니까?’ 하며 아들이 안절부절못하였어. 그렇지만 며느리는 꾹 참고 차근차근 생각했어. ‘어머님께서 왜 저러실까?’하고 말이야.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성급하게 굴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수도 없이 받아왔거든. 그때였어. ‘그렇구나!’ 며느리는 무릎을 치면서 벌떡 일어났어. 며느리에게 좋은 수가 떠올랐던 것이야. 자,며느리에게 생긴 좋은 수는 도대체 무엇이었까?”
할머니는 우리들을 빙 돌아보셨습니다.
“글쎄요?”
“아, 알았다. 밥을 더 가져오려고 부엌으로 갔지요?”
“음식이 더 잘 보이라고 촛불을 가지러 갔지요?”
우리들은 모두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한참 뒤, 할머니는 씩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웬걸, 며느리는 바느질 그릇을 뒤져 돋보기를 꺼내어 왔어. (중략) 그 늙은이는 낮에 아들이 가자미를 사올 때에는 돋보기를 끼고 있어서 크게 보였는데, 저녁밥을 먹을 때에는 벗고 있어서 가자미가 아주 작게 보였던 거야. 그래서 큰 것은 저희들끼리 먹으려고 숨겨두고 작은 것만 밥상 위에 올렸다고 의심을 했던 거야. 늙은이는 자신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어. 그 뒤부터는 그 늙은이도 마음을 고쳐먹고 며느리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게 보았어. 그래서 그 집은 동네에서 제일 칭찬 받는 집이 되었단다.”
--- pp.75~77 「지혜로운 며느리 - 이야기는 귀로 먹는 약이다」 중에서
“뭐라고? 그렇게 떫은 ‘톨’을 ‘상수라’라고까지 부른다고?”
“그러게 말이야. 이제야 임금님이 정신을 차리신 모양일세.”
마침내 백성들은 임금을 도와주기로 했어. 호미와 괭이를 들고 모두 일어나 오랑캐들을 마구 쫓아내었어. 덕분에 임금은 다시 궁궐로 돌아왔어.
‘이제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임금은 좋은 옷과 음식을 멀리 한 채 부지런히 일을 했어. 그래서 나라는 점점 튼튼해져 갔어.
그러자 임금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한 신하가 나서서 말했어.
“임금님, 이제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제는 좋은 옷도 입으시고, 좋은 음식도 좀 드십시오.”
“하기는 그렇군!”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옛날을 생각하며 슬그머니 다시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직은 할 일이 많습니다.”
산속에서 끝까지 임금을 모신 늙은 신하가 나서서 말렸지만 임금은 도무지 듣지 않았어. 생각 끝에 이 신하는 임금에게 톨을 바치며 말했어.
“임금님, 이 톨을 한번 맛보십시오. 우리가 피난길에 ‘상수라’라고까지 부르며 귀하게 여기던 것이옵니다.”
임금은 한참 망설이다 겨우 맛을 보았어.
“아이쿠, 떫어! 이걸 어떻게 ‘상수라’라고 할 수 있겠소. 도로 ‘톨’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 ‘톨’은 ‘도로 톨이’가 되어 ‘도토리’가 되고 말았어. 그리고 ‘상수라’는 변하여 ‘상수리’가 되었고!
얘야, 그 뒤 이 나라는 또 어떻게 되었을 것 같니?
이야기를 마치고 난 할아버지는 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셨습니다.
--- pp.122~124 「톨은 왜 도토리가 되었나 - 지난 일을 잊으면 또 어떻게 될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