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대나무를 보기 위한 것은 기다림이다. 어느 중국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나서 거의 오 년 동안은 아주 작은 순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성장은 땅 밑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다섯 번째 해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약 25m 높이로 성장한다고 한다. 남들 다 겪는 사춘기도 나는 늦었다. 중3이 되어서야 대나무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아마 마음을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그것도 아주 많이 변화했을 것이다.
--- 「코스모스 피는 길에」 중에서
‘나는 나 자신과 좋은 친구인가?’
친구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나를 자책하며 닦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타협하며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긍정적 마인드는 나이듦의 산물이다. 돌이켜보니 나에게 친구는 서로 관심의 균형을 맞추어 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남은 인생도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친구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친구란 현재진행형이다.
--- 「친구란 현재진행형」 중에서
선생님이란 단어는 나에게 매우 친숙하다. 평생 들어왔고, 매일 써왔 던 단어다. 일곱 살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졸업과 동시에 학교에 근무했으니 55년을 학교에 몸담고 있었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이었고 제자였다. 나에게 선생님이란 엄마 아빠보다 더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런 선생님 중에 가장 설레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고2 담임을 한 국어 선생님이시다.
--- 「친숙한 단어, 선생님」 중에서
“선생님, 돈이 없어졌어요.”
또 탐정할 시간이다. 예전엔 도벽 사건이 수시로 있었다.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일장 연설을 한 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리고 소지품을 다 확인하기도 하고 설득과 애걸, 작은 협박 등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어쨌든 나는 없어진 돈을 거의 회수하지 못했다. 경험도 적은 나는 이런 일을 처리하기엔 너무 어설펐다. 아이들 지능보다 부족한 게 틀림없다. 그것보다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 「새내기 교사」 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 익숙해졌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의 행동 도 그럴 수 있다고 긍정하게 되었고, 기대치에 못 미쳐도 예전처럼 닦달하지 않았다. 지나간 제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괜찮다. 괜찮아.”라는 말을 왜 해주지 않았을까.
--- 「슬기로운 교사 생활」 중에서
할머니 허리춤 속바지 주머니 속에는 꽁꽁 숨겨둔 소박한 보물 하나가 있다. 아주 옛날 신문 한 자락 조그만 서양 여자 얼굴 사진이다.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긴 코와 작은 얼굴과 예쁘장한 입매가 당신 어머니 닮았다고 했다. 예전 어머니 사진 한 장이 없어 그렇게도 간직하고 계셨나 보다.
--- 「보고 싶은 할머니」 중에서
밖으로 나와 어머니는 설렁탕 한 그릇 먹고 가자고 하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훈훈한 건 뜨거운 설렁탕 한 그릇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도 나도 알 수 있었다.
--- 「어머니와 영화 구경」 중에서
달라진 것은 물리적 환경이 다가 아니었다. 20년은 초등학생 아이를 멋진 지성인으로 변화시키는 세월이기도 하다. 은행 창구에서 만난 아가씨가 갑자기 달려 나오더니 내 손을 잡아 흔든다. 10살짜리 꼬마는 어느새 멋진 숙녀, 은행원이 되어 있었다. 한번은 헬스장에서 등록하고 담당 트레이너를 만났는데 체격이 아주 좋은 그는 바로 예전 제자였다. 좀 쑥스럽지만 정성 어린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제자였던 인연은 시청 공무원, 태권도 사범, 전통시장 상인, 전도사, 회사원, 꽃집 사장님 등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멋쩍게도 산부인과 간호사로도 만났고, 교육청 주무관으로도 보게 되었다. 가장 획기적인 일은 신규교사로 같이 근무하게 된 제자였다. 옛 제자와의 만남은 감동적이다. 추억을 같이했고, 그들의 생각 한 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참 뿌듯했다. 교사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 「다시 만난 제자들」 중에서
어느덧 수석교사로서 활동을 8년째 수행 중이다. 40년의 경력이 헛되지 않도록 동료 교사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배움 중심 수업의 실천과 나눔, 각종 수업컨설팅과 멘토링, 동료 교사의 교육활동 지원, 연구 및 자료 개발, 수석교사 직무 역량 강화 연수 등 바쁜 일상이었다. 수석교사를 찾는 동료 교사의 손길이 빈번해질 때면 바쁜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학교에서의 수석교사 역할뿐 아니라 교육 전반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수석교사의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