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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랭 선생님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일요일시집-0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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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40g | 140*200*10mm
ISBN13 9791197509025
ISBN10 119750902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좀 많이 늦었지만
결혼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
여자를 만났다

기뻤다 운명 같아서, 이 운명이
지옥과 천국을 자주 오가다 길을 잃어버릴 때까지만
살자, 한 번 더 기뻤다

내 꿈은 머랭, 닭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아서
머쓱하게 웃었다 여자가 따라 웃었다
설탕과 달걀흰자는 많이 친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좀 민망했다

그녀는 웃음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 같고
나는 웃는 얼굴을 만져 본 적이 없다

손만 잡고라도 잤으면 한다

잠깐 실례할게요
--- 「나는 이 이야기를 나의 머랭 선생님에게 해 주었다」 중에서


다른 사람을 가지고 싶은 마음
몸 밖으로만 떠돌다 입이 지워진 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러나 언제나 늙은 고아 같아서

아프다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라고
쓴다, 가만히 물을 두 뺨에 대 보는
돌멩이처럼

얼마나 더 울어야 보일까?
몸에 없던 구멍이 생겼다 개가 드나드는 개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꺼내거나 사람이 사람 속으로
숨어드는 구멍, 천사들이 날개를 말리거나 장난감을
갖다 놓아 아직 그 누구도 찾지 못한
구멍
--- 「당신 또한 천사들의 장난감을 가졌지」 중에서


기분 좋게 출발하는 중이야

안녕, 이란 말 대신 휘파람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없는 바람 불어오고
그 바람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보여 주는
모란앵무 데리고

못다 부른 노래마저 들킬까 봐 숨어서
다시 공부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도 하고
딸 하나쯤 낳고 살다가, 깜빡
죽는 것도 잊어버릴


미안해, 더 이상 찾지 마

나, 지금 당신 안이야
--- 「잠적」 중에서


외로움이 기도가 될 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글이 아니라 그림이다.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 한 소녀가 울먹울먹 요양병원 출입문 바깥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다. 할머니, 미안. 붕어빵 못 사 왔어. 문을 닫았지 뭐야. 다음에 올 때 꼭 사 올게.

괜찮아, 괜찮아. 밥 잘 먹고 먹다 남은 과자도 많아. 휠체어를 탄 할머니, 병원 출입문 안쪽에서 요양보호사가 갖다 대 주는 마이크를 막대사탕처럼 빨고 있다.
--- 「여기까지가 외로움인가, 싶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중에서


책장에 꽂혀 있던 첫 시집을 꺼내 가만히 안아 주었다. 죽은 듯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변해 있었다. 무지 서운했다. 나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첫사랑은 애가 둘씩이나 딸린 학부모가 되어 있었고 시집에 나오던 날 내리던 첫눈은 끝내 눈사람으로 살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순수한 의도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한겨울에도 집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있던 내가 어슬렁어슬렁 검은 개처럼 나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때마침 시인의 말을 읽고 있던 나는 이젠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고, 모두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 문제였다. 시집 속에 계속 남아 할 일이 있다는 듯 뭉그적거렸는데, 할 일이란 게 쌀을 씻어 안치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라도 괜찮다는 듯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참 난감했다. 잘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고, 나는 희멀겋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한 사람을 따라 웃고 있었고, 밤이 왔고 그새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참 서러웠다.
--- 「첫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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