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제일 자신 있는 음식을 물으면 열이면 아홉 분은 “다 하지”라고 하십니다. 그럼 질문을 바꿉니다. “할머니 자녀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요?” 그제야 간장게장, 된장찌개, 비빔국수,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 등 구체적인 종목이 나옵니다. 만드는 이가 아닌 먹어주는 이를 위해 하는 요리. 밖에서 사 먹으면 절대로 그 맛이 나지 않는 우리 할머니들의 음식 비법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먹을 것도 많은데 뭐 이런 음식을 배워요”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이순이 할머니도, 음식을 가르쳐주시던 훈훈한 시어머니와의 기억을 들려주시던 곽숙자 할머니도, 각자 책 몇 권으로도 담을 수 없는 뜨거운 인생 이야기와 뜨끔한 조언을 남기셨습니다. 여섯 할머니의 음식은 자손들의 살과 뼈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라난 토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부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들려드리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들의 레시피는 부엌에서가 아닌,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것이니까요.
--- 본문 중에서
고향 선산에 마지막으로 가신 게 언제예요?
박숙희 - 내가 여든아홉 때 간 게 마지막이오. 아이고 참말로 그리워가지고, 이 할마이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죽겠는 거라. 나는 여기다가 있는데 친구들이 다들 어디가 있는가 싶어서.
어떤 친구가 제일 그리우세요?
박숙희-한방에 앉아 노는 친구들. 동네 부인들은 저녁으로 시골에 뭐 할 게 있습니까. 모여서 얘기도 하고 화투도 치고 윷놀이도 하고, 고마 재미가 좋거든요. 보고 싶은 걸 참다가 참다가 보니 서울 냄새도 맡기 싫더라구요. 서울에 와서는 젊어서 절에 댕길 때 만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안 나가니까 친구 하나도 못보고. 전화나 한 번씩 하고.
여기에 가족들이 다 있잖아요.
박숙희-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딸도 있고 손녀들도 있고 손주도 있고 증손주도 있도 다 있어요. 다들 직장에 댕긴께 요전날 생일에 함 다왔다 갔어요. 증손자가 오면 막 떠들어재끼거든요. 그런데 가고 나면 고요한 게 서운한 게, 누구라도 왔다 가면 서운해요. 늙응게 마음이 아주 어려졌나 봐요.
--- p.55~56
할머니, 소원이나 바라시는 게 있나요?
이순이-꼭 이루고 싶은 거는, 안 아프고 건강히 살다 가고 아들 건강하고 우리 손녀딸 건강하고, 그거 말고 딴 거 뭐 있어. 80이 되어보니까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건강이 최고야. 젊은 사람들은 좋겠습니다. 나도 젊을 때가 있었는데.
젊어지면 뭐 하시게요? 2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어떤 거예요?
이순이-내가 참 밝았어요, 그때 내가 얼굴이 쪼매나니 예뻤어. 그런데도 우리 엄마가 그냥 베 짜서 무명옷이나 몸뻬 같은 거나 해주고 그랬어요. 나 시집올 때도 엄마가 고작 무명으로 된 저고리 입혀줬어요. 그래서 이제 20대로 가면 좋은 옷을 입고 친구들하고 예쁘게 사진을 한번 찍고 그러면 좋겠어. 요새 예쁜 옷이 많잖나. 그런 옷을 입고, 예쁜 머리로 깎아가지고 한번 찍고 그러면 좋겠어. 그게 소원이에요. 내가 우리 손녀딸한테도 말해. “나 다시 태어나면 이쁜 옷 입고 사진 한번 찍어봤으면 좋겄다. 아름다운 요새 젊은 사람들처럼.” 말하다 보니 두서없이 늙은 할매가 많이 지껄였네요. 미안합니다. 옛날 할머니는 그러려니 하시오.
--- p.149
두미도에 유명한 음식이 있어요?
곽숙자-우리 고향 창선에는 물이 잔잔해가 고기 잡는 배도 없다. 그런데 여기오니까 고기가 많더라고. 그걸로 사시미도 하고.
여기 와서 드셔본 음식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곽숙자-문어먹장국.
문어 먹장을 먹는 줄은 몰랐어요.
곽숙자-여기는 문어가 많이 잡히는데, 문어는 돈이 되니까 죄다 팔고 섬에서는 죽은 것들, 내장이나 먹장 이런 것 끓여 먹었다. 문어 살은 삶아서 초장 찍어서 먹고, 덴드리(문어 내장)는 달궈서 시락국(시래깃국) 끓여 먹고, 먹장은 바짝 말려 보관했다가 이렇게 시락국으로 끓이는 거지. 바닷가에서는 다 그런 걸로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같이 해서 먹지.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