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성공모델은 빠른 추격자 전략이었다. 선진국의 산업 모델을 모방하는 방식이다. 토지와 설비 등 자본이 많이 드는 산업은 정부와 은행의 지원을 받아 소수의 기업가만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델에 맞게 학교 교육을 비롯한 사회는 표준화된 인력을 양산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바로 이러한 산업화의 성공모델이 오히려 디지털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디지털화에 맞게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하는데 이미 시대에 뒤처진 산업화의 성공모델과 의식에 갇혀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p.10, 「디지털문명, 변곡점에 서다」 중에서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출간된 책은 1억 3000만 권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물리적 도서관인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는 약 3000만 권이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대조적으로 2021년 1월 기준 전 세계 웹 사이트는 18억 3000만 개에 달하고, 한 해에 15억 개가 넘는 글이 블로그에 게시되고 있으며, 구글 검색엔진이 찾을 수 있는 웹 페이지는 약 30조 개에 달한다. 구글은 2019년 10월 기준으로 4000만 권이 넘는 책을 스캔하여 디지털 사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 p.55~59, 「누구나 지식인이 되는 인터넷 세상」 중에서
한국의 대학은 학생 공급과잉 시대에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수법을 혁신하거나 시대에 맞는 인재상을 배출하는 데도 뒤처졌다. 우리 대학들은 디지털혁명이 제기하는 새로운 도전과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라는 가중된 위기에 직면했다. 대학은 새로운 모델은 뒷전이고 대학입시만을 쟁점으로 삼으며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며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에 요구되는 기능을 갖추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외면당할 것이다.
--- p.85, 「대학의 붕괴와 교육의 대변혁」 중에서
빅데이터는 사회에 필요한 데이터의 분석과 의사 결정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빅데이터에 많은 사람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빅데이터의 활용은 한쪽이 유리해지면 다른 한쪽이 불리해지는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개인정보의 활용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사회적으로 적절한 정책이나 대책을 세우는 데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는 길 또한 막음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는 상황을 초래한다.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 p.115~116, 「데이터 경제와 개인정보」 중에서
무형자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가치사슬의 양 끝에 위치한 연구개발과 유통·서비스 과정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얻고 중간 과정인 제조·조립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가치를 얻는다. 산봉우리 모양이 뒤집힌 스마일 커브 형태다. 기업의 경쟁력이 연구개발과 지식재산, 브랜드라는 무형자산으로 옮겨 간 것이다. 단적으로 애플은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데 애플이 판매액의 60%를 가져가고 위탁 생산 회사는 단 2%만을 가져간다. 제조·생산보다 제품 개발, 디자인, 브랜드 등에서 부가가치를 얻고 있는 극단적인 경우다.
--- p.183~184, 「신기술의 등장, 기업의 판도가 바뀐다」 중에서
코로나19 이전에 진행된 노동의 변화와 미래의 일에 대한 논의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에 의한 자동화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동인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노동 과정에서 사람과의 접촉 여부와 그 정도다. 대면 접촉을 피하면서 일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사회의 이슈로 등장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진행된 노동의 변화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의 충격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 p.208, 「일의 미래와 오피스의 미래」 중에서
우버와 타다 논란은 한국 택시 업계의 특수성 때문에 갈등이 증폭되었다. 에어비앤비와 달리 우버는 한국 시장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나라에서 택시운송 사업은 국가가 관리하는 면허제인데, 2015년 제3차 총량 조사에 따르면 택시는 이미 적정 대수보다 5만여 대가 초과 공급된 상태였다. 아무리 우버가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택시 업계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추가 공급을 허용하기는 어려웠다. (…) 이런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우버보다는 택시 호출 서비스인 ‘카카오 택시’가 시간대 및 지역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해소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 p.273,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과 갈등」 중에서
디지털 경제의 발달은 사회보장제도를 ‘고용’이라는 경제활동의 조건이 아니라 ‘소득’이라는 경제활동의 결과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고용의 측면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조합 단결권과 고용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였으나, 앞으로는 고용이 유연화되기 때문에 소득의 측면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노동 방식이 개인화, 소규모화되고 노동의 결과물이 콘텐츠와 알고리즘으로 변하는 시대에 더 이상 사업자에게 고용되어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고수익의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고,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고 안주하는 것도 현재의 제도가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여 오히려 고소득자를 과잉보호하고 저소득자를 차별하는 구조를 만든 역진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p.301~302, 「복지의 미래, 소득보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