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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멀고 가까운 2

지독히도 멀고 가까운 2

가연 장르소설집-37이동
도영 | 가연 | 2021년 12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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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44g | 148*210*16mm
ISBN13 9788968971013
ISBN10 89689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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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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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도 하지 않던 진우가 굳게 닫혀 있는 일등석 문을 힘 있게 두드렸다. 꽉 맞물려 있는 문틈에 꽂힌 눈동자가 흥미롭게 빛났다. 곧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돼 있던 청초한 얼굴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얀 얼굴과 커다란 눈. 고고하게 기울어진 콧날, 거기에 새빨간 입술까지. 동공 위로 비친 여자의 얼굴은 8차선 도로로 뛰어들던 그때와 변함없이 예쁘장했다.
“누구세요.”
그런데 ‘누구세요’라니. 고대했던 목소리가 내뱉은 말치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우는 입매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한층 짓궂어진 표정이 배은망덕하다는 듯 가은을 향하고 있었다.
“나 몰라?”
진우는 말끝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누구신데요?”
가은은 고민의 기색도 없이 건조하게 대답을 해 왔다. 진우의 눈동자가 한층 매서워졌다.
“하?”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나치리만치 어이가 없었다. 제 상식으로는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을 해야 맞았다. 적어도 여자의 목숨을 구해 준 게 이토록 쉽게 잊힐 일은 아니었고, 그게 그의 상식이었으니까. 애석하게도 진우는 그날의 일을 무척이나 선명하게 기억했다.

‘야, 뭐 하는 거야! 정신 안 차려?’

가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날 자신이 내뱉었던 날카로운 말부터 떠올랐다. 그것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녀가 확실하게 각인돼 있었다는 건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일이었다. 그런데 나를 기억 못 한다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생명의 은인쯤은 되는데?
또렷한 진우의 동공 위로 그날과는 사뭇 다른 가은의 얼굴이 깊숙하게 박혔다.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 어떤 것도 기억 못 한다는 듯 투명하기까지 했다.
“하!”
진우는 헛웃음을 토했다.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정리되지 않은 심경이 담겼다. 정작 맞은편의 가은은 아무 감흥도 없는 얼굴이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이라 진우는 바짝 약이 올랐다.
이걸 어떡하면 좋지.
잠시 골몰하던 진우의 입꼬리가 이내 삐뚜름하게 추켜 올라갔다.
“기억이 안 나면 지금부터 기억하면 되지, 뭐.”
웃음기 섞인 말은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모호했다. 진우는 가은을 빤히 바라보며 가볍게 일갈했다.
“이번엔 똑똑히 기억해야 할 거야. 다음번에도 그런 얼굴로 날 보면, 그땐 좀 기분이 나쁠 거 같거든.”
중저음의 목소리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경고하는 투는 단숨에 상대를 제압할 정도의 위압감을 싣고 있었다.
“까놓고 내가 쉽게 잊힐 얼굴은 아니잖아. 그것도 벌써 이번이 두 번짼데. 안 그래?”
은근하게 씹어뱉은 말소리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난 너 똑똑히 기억하거든.”
“…….”
“한가은, 맞지?”
또박또박 읊어진 이름에 가은의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진우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은근한 쾌감이 밀려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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