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숲 옆 푸르지오 외 2편
김요아킴
불완전한 사람들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불완전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중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며
노르웨이 숲 옆으로 이주를 했어요
평평한 저 아랫동네에서
제가 발 디딜 곳은 없었어요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와 새끼들을 데리고
매번 유목민처럼 떠돌아야 했어요
비옥한 땅이 자본으로 전제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신도시의 유혹이
매번 발목을 잡으며 속삭였죠
자, 문을 열고 나서봐, 뭐든지 얻을 수 있어
달보다 환한 저 불빛과 화려한 간판이
네 영혼을 살찌울 거야, 그래
잠까지 줄여가며 더 힘껏 일해 봐
하지만, 편하게 누워야 할 방마저
주인의 단 한마디에 뺏겨버리는, 밤마다
그때 노래를 들었어요, Norwegian Wood
우리가 얼만큼 호흡하며 살지, 무엇이 참 기쁨이고 행복인지
상실의 시대, 동쪽 숲 바로 너머 이곳에서
이 노랠 꼭 부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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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思春期
붉은 꽃잎을 틔우기 위한
맵디매운 한 시절의 생채기는
문고리의 깊은 침묵으로 시작되고
폭발한 얼굴의 몇몇 화산구는
스스로의 유배를 예고했지만
혼란한 해방공간의 가족사처럼
색깔을 달리하는 슬픔과 분노의 용해점이
차례대로 두 딸아이에 모두 낯설 때
그 봄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찾은 남도의 섬, 각기
이 년 터울로 아비와 함께
꼭 사려니 숲에 들기 위해 들른
4.3 공원에서의 매번 터진 울음은
중산간 서걱이는 억새의 그림자만큼이나
까마귀의 날갯짓으로 선회하고
그날의 지울 수 없는, 꽃다운 나이
다시 그 봄을 기억하며
아비와 두 손을 꼭 잡은 채
나란히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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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친구 아비의 부고를 받고
수년 전 그 슬픔의 점도粘度를 알기에
찹찹한 바람에 움츠린 달이
채 뜨기도 전, 고향에 닿았다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아버지와의
지상에서 마지막 식사가
끊임없이 재생되어, 결국
옛 살던 집터로 향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펄떡펄떡
생기 넘치는 전어 한 점을
입에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이
마치 갓난아이 같았었다
친구 아비의 부고를 받던 날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사라진 우물의 도르래가 길어 올린
가마솥 따끈한 목욕물로
아버지는 세례를 받고
아장아장 뛰어놀던 수국나무 옆
아랫방에 신혼을 차리며
나도 생겨나고
무학산의 기운은 여전히
전신주 위, 오선지 마냥 팽팽한데
거대한 아스팔트 더미에 화석화된
추억만이 까만 밤의 음표로
흥건히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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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외 2편
김선아
지구 한쪽 어디에선가 게르니카가 자행되고, 그 야만과 참혹을 누군가는 촬영하여 전시하고 판매하고, 또 누군가는 교양인의 안목으로 전시장을 찾는다. 폭발음 속에서 반쯤 찢겨진 치마 춤과 끝까지 아이를 놓지 않으려는 한 여인의 손등에 밴 핏발, 멀찍이 나동그라지고 짓밟힌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신발, 숨 몰아쉬면서도 손가락 세 개를 꼿꼿이 펼쳐 든 청년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햇발. 처연한 발들이 클로즈업된 작품을 쓱 훑어본 나는, 그 전시장 2층 레스토랑에 앉아 노을이 잠드는 시간을 뒤적거리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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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읽다
입매 조글조글한 가랑잎 하나
?
탱글탱글 굴러가는 호두알을 쳐다보는 폼이
?
내달리는 총각 애의 튼실한 사타구니를 바라보는 것 같다
?
어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
새끼 하나쯤 더 낳아보고 싶은 눈꼴이다
?
숨소리 가랑가랑한 가랑잎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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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水島교회 1
바닷가 끄트머리
담벼락에 유채꽃 몇 포기 살랑거리는?
30년 넘는 그동안 교인 할머니들 다 떠나시고 한 분만 남아
예배시간이면?
그, 그의 아내, 꼬부랑 할머니 이렇게 셋이 밥 먹는다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