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지식인의 전유물이나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권력의 희생자로 민주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인권을 반대하거나 무시하면 ‘반(反) 인권론자’ 혹은 ‘혐오주의자’로 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인권을 존중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 ‘인권 감수성’이란 용어가 등장하여 감성적인 호소를 하고 있지만, 이는 인간 사회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 같다.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상호 갈등과 불신이 넘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오히려 개인의 권리 문제를 다루면서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 말, ‘인권 정부’로 불리는 문재인 정부가 유엔 인권대표사무소로부터 18차례의 경고성 의견 개진을 요구받았고, 미국 의회 내 초당적 인권 기구와 국무부로부터 인권청문회 대상으로 경고를 받았다는 내용을 접하였다. 이 뿐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코로나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종교·표현의 자유 및 대통령을 향한 비판을 무조건 억제하고 있다하여 ‘인권 감시국’의 대상이 되었다.
2021년 4월에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 의회 내 초당적 인권 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인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이 청문회는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특정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권의 일부 조치에 대해 ‘국제적 인권탄압세력’으로 우려를 제기하였다.
또한 국내적으로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 모든 국민이 분개하면서도 낙태와 관련해서는 등한시한다거나,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우리보다 600% 높은 북한 어린이가 죽어가는 현상에는 관심이 덜하다. 왜 이런 이중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인권의 원칙과 인간이 가지는 권리 중 최우선적 가치이자 권리인 생명권과 자유권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인권은 과연 누가 준 권리이며, 인권 보장은 어디에서 해 주는가? 나의 권리가 침해되면 신고하고 구제받을 곳은 경찰 또는 검찰인가? 법원인가? 국가인권위원회인가? 아니면 교회인가?’ 같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인권은 여러 가지 논쟁을 던져주고, 그 자료도 방대하다. 학자들마다 끊임없이 각자의 주관적 논리를 추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인권 침해가 없는 완전무결한 국가나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권 침해는 국가로부터 발생하였다. 또한 인간의 권리는 문명과 역사가 발전할수록 권리의 유형에서 지속적 분화가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인권인지를 정의하고 규정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
이런 역설적 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인권에 공감은 하면서도 ‘인권 운동은 너무 엘리트적이다’, ‘인권은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것이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을 돌아서도록 해야 한다’, ‘서로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권리만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권을 보호해 줄 것인가?’, ‘제소자 인권만 중시되면 교도관 인권은 없는가?’, ‘학생의 인권만 중시되면 교사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가?’, ‘여성 인권은 있고 남성 인권은 없는가?’ 등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의 이념이자 가치라고 여기는 인권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인권을 명목으로 평등법을 만들었지만 또 다른 논쟁과 갈등만 발생하고, 특정 집단에 의한 독재화가 일어나면서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에 기준과 원칙이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종교적인 신앙도, 철학적인 이성도, 자연법 사상도 인권의 보편적 근거가 되기에는 불확실하다. 이론이 허약한 현대에서 인권의 기준과 원칙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보통 법이나 도덕적 규범에서 근거가 될 만한 토대를 찾고, 이를 통해서 합리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그래서 인권하면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을 들먹이고, 1966년 인권 협약이나 인권 헌장 혹은 국가인권위원회 법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 인권의 근거는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라 유엔 총회 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권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점은 1960년대 이후로, 유럽에서 미디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권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주어진 자유권을 명분으로 모든 자연적·도덕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의 외침으로 나타난 것이다. 타고난 본성에서 해방을 바라는 마음은 규범 자체를 제거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된 주장은 남녀의 성별 파괴, 사회 구성원들 특히 청소년의 사회 규범과 태도 변화, 동성 파트너쉽과 결혼 제도 안에서의 완전한 법적 평등의 보장, 나아가 이러한 규범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 형법상 범죄시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정확한 인권의 개념과 정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권의 역사는 어떤 담론 과정을 거쳤고, 어떤 권리가 인권으로 발전되어 왔는가?’, ‘인권의 구체적 권리는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하여 인권의 개념 및 고전과 현대 인권 이론으로 구분하여 정리해보았다. 특히 현대 인권 이론의 등장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으며, 국제 인권 운동이 일어나면서 인권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사항을 저술하였다.
1844년,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하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자연권과 다른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신마르크스주의 또는 Neo-Marxism으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하고 있다. 또한 문화 상대주의는 젊은 대중들에게 신세계 가치관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폭발적인 확산이 일어났다.
동시에 해방신학이 주장한 소수자·약자 인권론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많은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가 분별력을 상실한 채, 인간의 이성과 지식에만 의존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인권 담론 과정에 나타난 현상을 인권의 기준과 특징을 통해 유형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인권 논란에 대한 정리 차원도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이성적 논리가 결국 인간을 파멸하게 한다’라는 인권의 변질론적 과정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인권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2007년을 시작으로 7번의 차별금지법, 인권 및 평등 기본 법안, 혐오표현방지법안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의해 각 지방자치 단체별로 진행 중인 각종 인권조례 등에서 논란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란의 이유와 공동체에 미치는 주요 영향을 분석하였다.
무엇보다 마르크스가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론을 제기하면서 핵심 주제로 다룬 ‘인간 해방’ 논리를 분석하였다. 이는 기독교의 ‘영혼 구원’을 모방하여 만든 주제이다. 오늘날 자의적 인권은 자기결정권으로 정당화되어 철저히 인간 중심, 개인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는 공동체를 떠나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그래서 현대 인권이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현대 인권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분법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는 양심의 이중성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선택적 행동을 취하는 이중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거짓과 위선이 인권과 평등, 정의로 둔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권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Ph. D) 논문 ‘인권 담론 과정에 나타난 자기파기적 현상연구’를 기초로 실제 현상과 사례를 보완하여 집필하였다.
---「프롤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