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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지하철

: 제16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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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2쪽 | 420g | 154*225*20mm
ISBN13 9788988820537
ISBN10 898882053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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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을 만치 추운 밤이었는데 공기는 상당히 습하다.
발밑이 질퍽한 것은 비가 그친 후이기 때문일까.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꿈틀거리는 기분이 든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시큼한 체취를 풍겨 고개를 돌리자 기관차의 그을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군중은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표정은 놀랄 정도로 닮았다. 그들을 같은 얼굴로 보이게 하는 것은 아마도 허기일 것이다.
여기가 어딜까?
알지 못하는 나라의 알지 못하는 거리의 허기와 추위에 가득 찬 시장.
참을 수 없는 냄새 때문에 손수건으로 코를 가리면서 신지는 겨우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집중했다.
진창 위에는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기라도 하듯이 지친 남자들이 웅크리고 있다. 군중은 여울 속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남자들을 피해 흘러간다. 일단 자리를 잡은 남자들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p. 84
아내가 죽은 뒤로는 왠지 일을 하는데 보람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한 달에 반도 타지 않지만 쉬는 날에는 꼭 지하철로 외출을 해요. 목적지도 없이 여기저기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고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게 아주 편리해요.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마음이 편해져, 목적지도 없이 빙글빙글 돌게 되죠.
--- p.205
신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미치코를 부축해 골목을 달렸다. 달릴수록 미치코의 몸이 어쩐지 허전하고 시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여자를 잃을 수 없다고 온 힘을다해 꽉 쥐는 팔의 무게가 이윽고 녹아 흘러내리는 얼음처럼 아슬아슬하게 되고, 부드러운 촉감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신지는 쏟아지는 비를 안고 있었다. 미치코 미치코 그 소중한 이름을 계속 부르며 찾아 헤메는 신지의 앞길에 지하철 입구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한 신지의 몸을 꽉 안아주었다.
--- p.257
선물가게에서 빈 상자를 사서 아내에게 선물할까. 애정의 정체에 짐작이 갈 때까지 잠시 생각해 보자. 처음 본 반지를 손에 꼭 쥐고 어둠을 응시하자 몸 안에 잊혀졌던 용기가 솟구쳤다. 칠십년동안 슬픔도 고통도 철강의 몸체를 막으며 지하철은 달린다. 인내의 갑옷을 몸에 두른 과묵한 전사처럼 지하철은 달린다. 제3레일의 굉음을 그의 용감한 꺾이지 않는 개가처럼 들으면서 신지는 맹세했다. 그렇다. 지하철을 타고 가자.
--- p.257
분명 부끄러움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술에 녹아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뒤끝이 언짢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적어도 회비 2만엔어치는 먹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회의와 동정의 독을 계속 들이켰던 것이다. 플랫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카사카미츠케에서 긴 지하도를 걸어와 가쁜 숨을 고르고 나자 무서울 만큼 추위가 덮쳐왔다. 퍼뜩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두꺼운 머플러로 얼굴을 반을 두른 노인이 서 있었다.

'아, 노히라 선생님'

머플러를 내리더니 노인은 하얀 콧수염을 옆으로 쓸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 2차는 가지 않았나?'

마치 흙으로 구운 방울을 흔드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로 노히라 노인이 물었다.
--- p.16
'고맙습니다. 어머니, 미안해요.'
정말 일순이었다. 미치코는 오도키를 붙들어 묶듯이 안더니 함께 돌계단을 굴러떨어졌다. 두 사람의 몸은 폭포처럼 비가 떨어지는 경사 급한 돌계단에 심하게 퉁기면서 떨어졌다. 비명소리는 없고, 돌과 뼈가 서로 싸우는 둔탁한 소리가 신지의 발밑에 전해졌다. 아버지가 의자를 밀치고 빗속으로 달려나왔다. 날듯이 계단을 뛰어내리더니 아버지는 배를 안고 쓰러진 오도키를 품에 안았다.

아버지는 물웅덩이에서 몸을 일으킨 미치코의 얼굴과 돌계단 위에 서 있는 신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거기에서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 그 순간,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고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골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향해 선언하듯이 소리쳤다.
'발을 헛디뎠어! 누구 구급차 좀 불러줘.'
그리고 나서 강한 어투로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돌아가. 어서 가. 아, 대체 어떻게 된 밤이야. 내가 대체 무얼 했다는 거야? 너무하지 않아? 나, 하룻밤에 아이를 둘이나 죽였어. 뭘 멍청히 있는 거야. 어서 가!'
--- p.244
가로수는 모두 불타죽었는데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낙엽이 데굴데굴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오도키는 가짜 애인 노릇에 지쳐, 그것만이 세계의 유일한 색처럼 보이는 빨간 하이힐 코끝으로 낙엽을 잡더니, 밟아부서지지 않도록 갖고 놀다가 다시 놓아주었다.
--- p.141
'......덕분에 가끔 병동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여생을 즐기지. 지하철은 좋아. 사람에게 상냥해. 많이 붐비지도 않을 뿐더러 생각한 장소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자유롭게. 노페이는 즐거운 듯이 깊게 팬 주름진 얼굴로 웃었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이제 이것으로 됐다는 듯이 노페이는 신지의 등을 밀었다.

'그런데 고누마 신지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가능하면 아버님과 화해하고 가업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뇨, 아버지와는 만나지 않을 겁니다.'

따뜻한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신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자네도 동생도 힘이 들 거야.'

신지는 유혹하듯이 문을 연 긴자 선 차량에 슈트케이스를 안아 넣었다.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 부드러운 발차 벨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처럼 살 뿐입니다. 나도 게이조도 고누마 시키치의 아들이니까요.'

문이 닫히자 노페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p.256-257
'......덕분에 가끔 병동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여생을 즐기지. 지하철은 좋아. 사람에게 상냥해. 많이 붐비지도 않을 뿐더러 생각한 장소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자유롭게. 노페이는 즐거운 듯이 깊게 팬 주름진 얼굴로 웃었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이제 이것으로 됐다는 듯이 노페이는 신지의 등을 밀었다.

'그런데 고누마 신지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가능하면 아버님과 화해하고 가업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뇨, 아버지와는 만나지 않을 겁니다.'

따뜻한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신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자네도 동생도 힘이 들 거야.'

신지는 유혹하듯이 문을 연 긴자 선 차량에 슈트케이스를 안아 넣었다.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 부드러운 발차 벨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처럼 살 뿐입니다. 나도 게이조도 고누마 시키치의 아들이니까요.'

문이 닫히자 노페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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