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체질 유형〉 ‘큰 머리’ 아이와 ‘작은 머리’ 아이에서
- 태어나면서부터 신경-감각 체계와 신진대사 체계가 불균형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앞서 언급한 1923년 2월 6일 교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이 두 체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상호 작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위안의 말도 잊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평형 저울은 이쪽이나 저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이를 대할 때 마음속으로 항상 이런 질문을 떠올려야 합니다. “너의 세 가지 체계는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있을까? 너의 중간 영역이 튼튼하게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 교사가 가르치려는 내용을 분명한 표상으로 갖고 있지 못하면 자기가 하는 말 속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빠져들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교사가 하는 말이 그저 책에 적힌 내용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고에 머무른 지식에 불과합니다. 교사의 감정과 의지를 관통한 지식이라야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흥미를 갖게 하며, 의미 있는 요소가 됩니다. 아이의 내면 존재가 교사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수업 내용의 본질과 만나야 합니다. 사실 이처럼 높은 기준을 갖고 수업에 임하면 교사 자신도 달라집니다. 수업 내용과 교사의 내면이 일치하면서 중심이 단단해지는 동시에 힘이 생깁니다. 이는 교사가 완전히 탈진했다고 느낄 때 놀라운 효과를 발휘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있는 힘과 사랑을 다해 행하면,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태도, 배움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가르친 내용은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몸에 익힌 배움을 대하는 내적, 외적 태도와 그 능력은 평생 남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성장을 위한 긴 여정에 기꺼이 나설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핵심입니다.
〈6가지 체질 유형〉 ‘환상이 많은’ 아이와 ‘환상이 적은’ 아이에서
- 우리는 아이가 어떤 형태로 지식을 받아들였는지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수업 중에 아이가 어떤 사실을 파악했다가 다시 흘려보내고 있는가? 아니면 특정 지점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가? 배움의 과정에도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들이마시고, 파악하고, 내보내기. 그래야 다시 자유롭게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는 교사가 수업을 통해 전달한 내용이 아이에게 닿긴 했지만 신체 깊숙이 들어가 버린 경우입니다. 아이의 의식은 열려 있고 선명하지만, 듣거나 본 것이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슈타이너가 제안한 치유 방법에서 우리는 다시금 앞서 언급한 치유의 근본 법칙을 만납니다. “아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아이의 필요에 응하라.”
환상이 많은 아이, 즉 사고가 강박적이며, 작은 것도 잊어버리지 못하고 개념이나 표상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경향의 아이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요? 우리 어른들은 머리가 너무 복잡하거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 참신한 생각을 떠올리고 싶을 때 달리기를 하거나 몸을 움직입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움직여서 굳어버린 머릿속과 마음도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움직임은 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처방입니다. 어떤 과목에서든 움직이게 하기를 의식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합니다.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면 아이가 철자나 개별 글자에 갇히지 않고 아름답게 흐르듯 써 나가도록 지도합니다.
- 슈타이너는 교사들이 제대로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여러 강의에서 반복해서 언급했습니다. 양 극단의 한쪽 끝에 있는 아이들의 상태와 이들이 중간에서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을 이야기하면서, 움직임과 쉼이라는 양극을 조화롭게 하는 호흡의 원형적 원리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았습니다. 쉼과 집중은 모든 의미 있는 감각-신경 활동의 전제 조건입니다. 반면 움직이려는 의지는 모든 신진대사-사지 활동의 전제 조건입니다. 인지학적 인간관의 관점에서 올바로 호흡하는 것을 배운다는 말은 삼중적 유기체 속에 사는 법과 중간 영역을 발견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교실에서 올바로 호흡하는 것을 배운다는 말은 수업 내용을 흥미를 갖고 받아들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움직이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사랑에는 항상 고통이 따릅니다. 흥미와 사랑으로 뭔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내면화하고, 아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했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한다면, 배움에 어려움이 많은 아이들도 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공감으로 깨어나면서 아이는 차츰차츰 수업 내용을 자신과 연결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 6가지 양극적 유형의 아이들을 위한 치료는 교사들이 수업에서 ‘올바로 호흡하는 법’을 가르칠 방법을 찾아내는 데도 영감을 줄 것입니다.
〈학교 보건 문제에 관한 루돌프 슈타이너와 교사 간의 논의〉에서
-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음 사항을 염두에 두기를 당부합니다. 우리 발도르프 교육은 그 전체가 치료하는 성격을 띤다는 것입니다. 발도르프학교 수업과 교육 방법 자체가 전반적으로 아동의 건강 증진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아동이 발달하는 매 순간 올바른 것을 하는 교육 예술을 확립하면, 그런 예술적 교육 활동에 아동을 건강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들어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갈이를 하기 전에 아동이 올바른 방식으로 모방하는 존재가 되도록 교육할 때, 그 다음에 (초, 중등 단계에서 교사의) 권위가 올바른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할 때, 그 다음 연령대에는 판단력을 형성하도록 적절한 방식으로 준비해 줄 때, 이 모든 것이 아동의 유기체를 건강하게 만들면서 작용합니다.
- 교사의 정서는 전적으로 아이들 정서 속에서 계속 살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먼저 구체적으로 그린 다음에 그 구상을 마음 속에 품고 교실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내용을 책에서 읽어 주는 교사의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 비해 여러분의 아이들은 적잖은 신진대사 문제를 정말로 더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 옛 시대 사람들은 교육이 곧 치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 유기체는 사실상 언제나 그 자체를 통해 병적인 상태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르침과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치료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교사 각자가 특정한 의미에서 자기 아이들을 위한 의사라는 의식을 뼛속 깊이 새긴다면, 정말로 대단히 유익할 것입니다.
- 아이들이 언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이 아이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부사는 무엇인지, 왜 아이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야만적인 의성어일 뿐입니다. 수업에 지속하는 관계가 생겨나도록 하고, 그 관계 안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단어를 반복해서 기억하도록 할 때에만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달달 외우게 시키면, 게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달달 외우게 한 것에 여러분 자신이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더는 달달 외우지 않습니다. 예전에 배운 것을 나중에 다른 관계에서 다시 만나면, 아이들이 배우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