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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마리 섬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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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50쪽 | 618g | 145*210*22mm
ISBN13 9791190966030
ISBN10 119096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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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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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비디오를 메고 성죽굴에 들어섰던 이 가을은 내게 유별난 가을이다. 어떤 그리움으로 성죽굴에 뛰어들었을까. 그곳에 다사로운 햇살은 내리고, 구기자밭 아낙네들의 일손이 분주하다. 그 밭골에, 시름 속에서도 부르던 옛 농부가는 왜 뜨지 않았을까. 바구니 가득, 건드리기조차 아까운 구기자 고운 알맹이들이 왜 그리도 붉었을까. 뻐꾸기 울던 산발치 밭이 잡혀온다. 목화씨 뿌리던 어머니의 삼베적삼이 보인다. 듬성듬성 허전한 배추밭골과 그 모퉁이 허술한 리어카조차 쓸쓸하고……. 추곡수매가 주름살에도 일손만은 왜 그리도 바쁜지.
--- p.20

유년을 마치려던 여섯 살 6·25라는 폭풍 해일이 왕국을 덮쳤다. 더욱 신바람이 났다. 그 병정놀이에 끼어 외가 등지로 수없이 밤길을 달렸다. 어느 밤중 외가에 죽창 몽둥이패들이 들이닥쳤다. 반사적으로 뒷봉창을 발로 걷어차고 생쥐새끼처럼 잽싸게 그들을 따돌리고 맨발로 줄행랑칠 때 그보다 통쾌한 순간은 없었다.
--- p.44

그동안 지나온 한생 67년을 돌아보면 나는 줄곧 그래 왔고, 그 자리가 곧 꿈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박살나고 다 무너진 죽음의 빈터가 되고 말지라도 바로 그 “꿈”이라고 하는 것이 없으면 결단코 무덤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날이 내게 동화전설로 넘치던 유년의 바닷가왕국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단코 그렇게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죽음의 빈터에서 더 큰 꿈의 날개로 일어서지 못하고 말았으리라.
--- p.53

늦가을 넘어 겨울이 오고, 유난히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많이 내리고 가득 쌓여 다시 동화전설을 쓴다. 긴긴 겨울밤 베틀아낙 흥타령 꿈길 속에 뒷동산엔 다시 동백꽃 진달래 더욱 붉게 피고 뻐꾸기가 운다. 가슴 앞에 언제나 넓은 포구엔 다시 파도 춤추고 물새들 우짖고 갈매기와 흰 돛단배들이 꿈을 실어 나르는 봄, 비로소 학교에 들어가 먼 바다와 무수한 초록빛 섬들까지 다 보이는 시오리 푸른 산마루 고갯길을 힘차게 달린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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