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모범적으로 방역 수칙을 지키고 있는 건가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4단계로 격상된 시기에도 워터파크에 놀러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너무 소심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게 했다. 오션월드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안전한 물놀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수영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는 아직까진 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영장은 더 위험할 거란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수영장은 한정된 공간이고, 물놀이를 하는 내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또한 물놀이를 하다 보면 마스크는 젖는다. 즉! 물에 젖은 마스크를 내내 껴야 한다는 소리다. 물놀이를 하다 보면 또 어떤가? 마스크가 번번이 벗겨진다. 몇 번이고 내려간 찰나의 순간순간들이 모이다 보면, 마스크를 쓰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진다. 더군다나 같은 공간에 확진자라도 있다면?! 물속에 비말은 섞일 테고, 물놀이하다 보면 물을 먹는 건 흔한 일이니…… 으흡!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이러나저러나 꺼림칙한 부분이 허다하다. 놀 땐 신나게 놀았더라도 집으로 향할 때면 찜찜함을 감출 수 없는 내가 그려진다.
혹시나 모를 일로 한동안 마음앓이를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나.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러니 이번 여름방학 겸 휴가 때는 동네 한적한 공원이나 가던가.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집콕하며 애들과 재밌게 놀아야겠다. 얘들아! 집콕하게 되면! 엄마, 아빠가 최선을 다해 놀아줄게! 그리고 딸! 소심한 엄마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때 오션월드에 가는 게 좋겠어! 간이 콩알만 한 엄마라서! 미안하다잉! 그때 우리 신나게 놀자!
--- pp. 60-61
“어머니 정말 다행입니다. 옆에 계신 선생님이 잘 케어해주셔서 아이 상태가 좋아졌네요. 선생님이 수락해 주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이가 응급실에 올 수 있었어요. 만약 선생님이 거부했다면, 올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지역에선 자가격리 중이던 어린아이가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마다 받아주지 않았어요. 요새 병원들은 자가격리자를 받아주려 하지 않거든요. 그런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받아주신 것이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만약 거부당했다면, 우리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주치의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퇴원할 때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주치의 성함을 알아냈다. 이.정.○. 선생님. 평생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한 문장이 떠올랐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전적으로 수긍이 갔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보건소로 안내해 준 1339 상담원, 병원을 수소문해서 부천 성모병원으로 연결해 준 보건소 담당자, 자가 격리자임에도 우리를 받아준 이정○ 의사 선생님, 아이를 적절히 체크하며 케어해준 간호사들. 그들의 분주한 손길로 우리는 아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부모가 되어 매번 느낀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우리 가족만 아등바등 몸부림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선 많은 분들의 손길이 함께할 때 비로소 부모는 아이를 지켜낼 수 있다. 물론 세상이 지금처럼 따스한 얼굴로 미소 짓기도 할 테지만, 때로는 자비 없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밀어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한 번 더 나아가고, 다시 온 몸에 푸른 멍이 들도록 온 힘을 다해 헤쳐가는 게 부모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상황에 상처받고, 절망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빛깔의 세상을 더 많이 만나게 될까. 그저 지금처럼만 미소를 지어준다면 우린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며 무럭무럭 자라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pp. 115-116
이 시기에 엄마들은 겨울보다 더 강하고 가혹한 마음의 추위를 앓았다. 나도 그랬고, 주위의 엄마, 아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그랬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방법은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면하고 견디는 일뿐이었다. 그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앞에 놓인 현실로 엄마들은 하루하루 지쳐갔다. 그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과거의 육아가 더 나았던 게 아닐까. 내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큰 삼촌, 작은 삼촌, 고모, 우리 가족은 한 집에서 박작박작 살았다.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그 사이 나를 돌본 건 삼촌과 고모였다. 20살 언저리의 삼촌과 고모는 2살도 안 된 조카의 똥 기저귀를 스스럼없이 갈았고, 돌봤다. 그 시대에 비해 지금은 가족 구성원이 단출하다. 많아야 다섯 식구다. 이런 환경에서 엄마들은 육아를 헤쳐간다. 도움이 필요할 때면 보통 양가 부모님에게 부탁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엔 홀로 해결해야 한다.
이 시대의 육아는 녹록지 않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육아 커뮤니티에 접속해 감정을 쏟아내고, 고민을 나누고, 궁금증을 해소한다. 그중에 적극적인 엄마들은 더 나아가 오프라인으로도 인연을 발전시킨다. 적극적이지 않은 나는 오프라인으로 인연을 발전시키는 엄마들을 볼 때면 그저 신기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어린이집에서 잘 맞는 인연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A와의 인연은 첫째가 5살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8살) 이어져 오고 있다. 당연히 지금도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각별한 사이다. 불현듯 감사했다.
--- pp. 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