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이 누구지? 혹시 2000년 전에 저 머나먼 중국 땅 어딘지는 몰라도 ‘공자 왈, 맹자 왈’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공자 그분? 근데 그분이 왜?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설사 그분이 2000년 전에 돌아가셨다가 혹시 요새 한 번 더 돌아가셨던들 우리 집하고 무슨 연관이 있기에 엄마, 아빠가 저러는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나야 공자님인지 맹자님인지 상관없지만 보아하니 엄마, 아빠하고는 무슨 엄청난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내일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는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 「텃밭 할아버지」 중에서
뭉치, 우리 새끼, 덜렁이, 빵기호.
우리 새끼 빼고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 집 안팎에서 불리는 내 별명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뭉치’는 텃밭 할아버지, 우리 새끼 앞에 ‘아이고’를 붙여서 ‘아이고 우리 새끼’는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덜렁이’는 엄마가 나를 부르는 별명이다. 그래도 아빠는 이름을 부르니 가장 중립적인 셈이다.
문제는 ‘빵기호’다. 절대 인정할 수 없으며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고 복수심을 불태우게 하는 별명이다. 우리 누나, 아니, 나의 원수가 붙인 별명이다. 자기가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날더러 빵점이라니, 그냥 재수 꽝이다. 언젠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다.
--- 「빵기호와 빵순이」 중에서
“자, 잔을 들고.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선창에 맞추어 건배사를 한 뒤 다 같이 박수를 쳤다. 깜짝 놀랐다. 그제 정자에서 아빠와 누나가 나누던 말이 아닌가? 더욱 깜짝 놀란 것은 형, 누나 들은 그렇다고 해도 미란이, 석호, 준석이도 잔을 들고 맞장구를 쳤다는 것이다.
“석호야, 너 이 말 알아?”
제일 가까이 앉은 석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응. 왜?”
“난 첨 듣는데.”
“부모님 모임에서 맨날 처음 건배할 때 하는 구호잖아? 공부 좀 해라. 공부.”
“얀마! 저게 무슨 공부야. 술 먹자는 거지.”
“어휴, 무식한 놈! 저게 최고 공부란다.”
완전 자존심 상했다. 그동안 왜 나만 몰랐지? 모임에 빠진 날도 없는데?
--- 「공부 놀이」 중에서
요새 내가 놀이로 삼고 있는 ‘공부 놀이’도 자랑하고 싶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노트를 교환할 시간은 충분했다.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전부터 그렇게 공부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누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 공부 놀이한 내용을 교환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서 누나의 도움을 받아 다섯 권의 노트를 다시 정리하여 프린트로 인쇄하고 가지런히 묶어 놓았다.
그동안 카톡도 하고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자주 소통은 했지만 이렇게 모두 모이기는 오랜만이었다.
“이거, 내가 정리한 거야.”
석호, 준석, 미란에게 각각 준비한 인쇄물을 내밀었다. 친구들도 각자 프린트 묶음을 내놓았다. 경쟁심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정성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뽐내려는 마음에 나름 누나에게 도움을 받아 가며 했는데도 친구들의 노트를 보니 내 건 조금 초라해 보였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벼락공부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 「빵기호가 달라졌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