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loquens! 흔히 ‘언어적 인간’이라고 해석하는 이 말의 원뜻은 ‘talking man’, 즉 ‘말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언어인 자연 언어(自然言語 natural language)는 기본적으로 말로 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음성 언어인 말과 문자 언어인 글이 있는데 글보다는 말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이 없는 언어는 있어도 말이 없는 언어는 없으며, 어린아이들은 글을 배우기 전에 말부터 먼저 배우게 된다.
말을 구성하는 요소는 소리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음과 모음이 그것이며, 억양이나, 강세, 길이 등도 자연 언어의 소리에 포함된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러한 자연 언어의 소리는 자연계나 동물의 소리와는 다르다. 이런 면에서 인간 언어를 구성하는 소리를 말소리(speech sound)라고 한다.
1. 음성과 음향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수단은 말이다.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를 발명하고 현대에 와서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문자를 이용한 의사소통의 비중이 훨씬 커졌지만 의사소통의 기본은 입을 통해서 발화되는 말이다.
말은 소리로 되어 있지만 동물들의 소리나 천둥소리와 같은 자연계의 소리 또는 자동차 등에서 나는 기계 소리, 또는 악기 소리와는 두 가지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그 첫째는 소리의 음성적 실체이다. 우리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흉내 낼 때 ‘멍멍’이나 ‘왈왈’ 등으로 표현하지만 이 두 표현만을 비교해 보더라도 초성, 중성, 종성이 모두 다르다. 사실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서 첫 자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모음이 무엇인지, 받침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소리에는 자음이나 모음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반면 인간의 말소리는 해당 언어에서 동일한 자음이나 모음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산]이라는 음성을 들으면 모두 동일하게 ‘산’으로 표기하여 초성, 중성, 종성이 같다. 또 하나의 차이는 결합 또는 분절의 문제이다. 자연계의 모든 소리는 더 작은 소리 단위의 합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아지의 소리를 더 작은 소리인 ‘ㅁ-ㅓ-ㅇ’으로 분절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달라 더 작은 소리인 자음과 모음으로 분절할 수 있다. 한국어의 ‘산’은 ‘ㅅ-ㅏ-ㄴ’으로 구성된 말이고, 영어의 ‘mat’은 ‘m-a-t’의 세 소리로 분절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하여 내는 소리를 음성(音聲 sound speech) 또는 말소리라 하여 자연계의 소리인 음향(音響 sound)과 구별한다. 음성학이나 음운론 등 언어학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소리는 바로 이 음성, 즉 말소리이다.
2. 말소리의 특성
자연 언어의 말소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청각성이다. 우리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입으로 발화하여 귀로 듣는 음성 언어의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을 제공한다.
① 음성 언어인 말은 문자 언어인 글에 비해 신체적 노력이 적게 든다. 이것은 긴 글을 작성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으로, 글을 쓰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는 한,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② 음성 언어를 통해 화자와 청자 사이에 동시적이며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음성 언어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문자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 번거로움을 안고서라도 만나서 대화를 하게 된다.
③ 음성 언어는 환경적 제약을 덜 받는다. 즉, 어둠이라든지 시각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다.
둘째, 분절성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음향은 그 소리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없지만 음성으로 이루어진 단어는 더 작은 단위(예. 자음과 모음)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두 단어를 듣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단어가 몇 개의 말소리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성학에서는 자음과 모음을 분절음(分節音 segment)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셋째, 결합성이다. 이 특성은 위에서 언급한 분절성을 거꾸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첫째는 음성들이 모여 음절을 이루고 음절들이 모여 단어와 같은 더 큰 단위를 이루는데,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낱낱의 말소리를 결합하여 단어와 같은 다양한 의미의 덩어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갖게 된 것도 바로 말소리와 의미를 다양하게 결합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보통의 언어가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대략 40~50개의 말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소리를 결합하여 무수히 많은 단어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언어도 자음과 모음의 수가 부족하여 단어나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넷째, 대립성이다. 우리가 말소리를 결합하여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언어에서 사용되는 각각의 말소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산’과 ‘만’의 차이, ‘만’과 ‘문’의 차이, ‘문’과 ‘물’의 차이는 ‘ㅅ’과 ‘ㄱ’, ‘ㅏ’와 ‘ㅜ’, ‘ㄴ’과 ‘ㄹ’의 서로 다른 말소리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섯째, 추상성이다. 우리가 입으로 발화하는 구체적인 말소리의 실제 발음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동일한 소리로 인식한다. 마치 사과의 색깔과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지만 동일하게 ‘사과’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음하는 소리를 모두 다르게 인식한다면 대화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말소리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입으로 발화하는 구체적인 말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머릿속에 저장된 추상적인 말소리이다. 전자를 음성(音聲 phone)이라 하고 후자를 음운(音韻 phoneme)이라 한다.
결국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 입으로 발음하는 음성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머릿속에서 인식하는 음운은 같다. 이 책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모두 필요하여 소리의 생성과 관련하여서는 음성학적 설명과 용어가 필요하고 음성들이 모여 체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음운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3. 말소리의 생성 과정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말소리의 생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의사소통의 기본이 되는 말소리가 어떻게 생성되는가 하는 것이다. 말소리는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기본적으로 우리 신체 내부에서의 몇 군데의 기관을 거쳐 이루어진다.
---「제1장 언어와 말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