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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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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10*297mm
ISBN13 9791190052955
ISBN10 119005295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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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옷장 뒤에 숨어 엿보았던 어른들의 비밀을, 사랑의 수수께끼를 사촌오빠가 풀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수수께끼를 풀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오빠에게 다정하고 친근하게 굴었지만, 오빠는 나를 피했다. 오히려 내가 다가갈수록 오빠의 마르고 창백한 얼굴과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 p.035

남작 부인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으나 별장에 파묻혀 살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마르그리트는 집사 노릇을 하는 성질 더러운 늙은이가 첩자 짓을 하면서 파리에 있는 남작에게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남작 부인은 어떤 남자와도 마음대로 왕래를 할 수 없었다. 남작 부인은 매우 신중했고, 가족의 이익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라 남자가 다가오면 피했던 여성이기도 했다. 별장은 물론 부인의 집안이나 주변에서 그 누구도 마리그리트와의 은밀한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 p.055

처녀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욕망에 빠지는 것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하는 남자가 덤벼들 때 처녀들이 자신을 맡기는 것은 호기심과 헌신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적지 않은 여자들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욕망과 쾌감만 추구한다. 이것이야말로 본능의 가장 놀라운 수수께끼가 아닐까.
--- p.072

고대의 도덕은 중세의 것과 달랐다. 중세에는 우리 감정도 어두워졌다. 본능의 결합은 남녀 간의 가장 내밀한 결합이다. 그렇게 결합하는 모습은 기후와 종교, 신념과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누구도 자신에게 부과된 법은 위반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라의 도덕률에 따른 제약과 억압은 오히려 은밀하게 쾌락을 추구하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 p.074~075

남자는 항상 무엇이든 싸워 이기려 든다. 그것이 여성이고 욕망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여자는 항상 무엇이든 맞춰 주어야 한다. 지극한 총애를 받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육체를 정복했다면 정신적인 부분마저 정복하려 들기 마련이다. 여자에게 이런 것은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단순한 본능이다. 인간의 위대한 스승인 짐승들을 보면서 이런 면을 수도 없이 깨달았다. 암컷은 방어하고 뒤로 물러나고 도망치며, 수컷은 쫓고 덤비고 지배하는 풍경.
--- p.076

나는 그들을 보면서 새삼 교육이 미풍양속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신경의 자극이나 교만으로 놀라운 희열에 도달할 수는 없다. 영혼이 감동을 받아야 천국과 맞닿는 듯한 희열에 도달할 수 있다. 영혼의 힘이 이성을 밀어내고 모든 근육이 일상적 활동을 넘어 움직이게 하며, 마침내 기적 같은 희열을 낳는 것이다.
--- p.082

식탁에서 첫 번째 포도주잔을 돌리고 나서, 왕자는 조금 활기를 띠기는 했어도 자신의 숨은 본능 같은 냉정함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누가 우리의 긴밀한 관계를 의심할 수 있을까. 왕자의 처신은 예절에 따른 것일 뿐이고, 또 귀족적인 냉정함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 p.123

왕자는 냉정한 이기주의로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관계라면 단숨에 끊어냈다. 하지만 어떤 여자도 배신당했다고 불평하거나 고발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냉정하게 뿌리칠 줄 알았지만, 언제나 여자의 명예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사랑도 다정함도 없이, 왕자는 오직 쾌락만 추구했다. 그래서 이 사람과의 우정은 내게 각별했다. 나도 마음을 주지 않고 즐거움만 찾았으니까.
--- p.124

페리의 시선이 내게 머물면서 나는 조금 혼미해졌다. 숨도 가빠졌고, 몸이 떨렸다. 호흡을 가다듬기에 너무 세차게 떨렸다. 모두가 내 둘레를 빙빙 돌았고, 나는 마치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을 맞는 것만 같았다. 길 잃은 여행자가 거대한 신기루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춤을 추며 돌았다. 나는 숨넘어갈 듯 헐떡였다.
--- p.187

파리에서는 제아무리 요란한 파티라 해도 교양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절대로 버리지 않는 예의와 품위라는 게 있었는데, 이곳에서의 파티는 품위와 도덕을 모두 팽개치고 오직 쾌락을 즐기려고만 했다. 몇 시간이나마 자유롭게 몸부림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같았다. 가면을 벗고서 존경이라는 역겨운 가면을 다시 쓰기 전까지만이라도 마음껏 즐기려고들 했다.
--- p.188

만약 런던에서 내가 남자들을 무릎 꿇렸다면 아마 거금을 쥐었을지도 모른다. W 경은 음악광인데 모든 여배우에게 엄청난 돈을 뿌렸다. 그가 끈질기게 나를 유혹했다. 다른 남자, 아는 여자 혹은 자신이 아는 지인들을 내세워 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사양했다. 나는 영국에서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리디스 부인과 친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도 누구 못지않게 유명했기 때문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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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오페라 가수 빌헬미네 슈뢰더 데브리엔트의 이 대담한 책은 독자의 호기심과 관음증을 소비시키는 에로틱 콘텐츠로만 볼 수 없다. 사람의 정신적 성숙이 공부나 직업뿐 아니라 섹스를 알고 경험하며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수기이다. 성은 은밀하게 숨겨야 하는 더러운 행위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자 즐거움이어야 하며, 여성은 그 일에 수동적일 이유가 없다는 걸 이 책은 스스럼없이 보여 준다.
21세기 프랑스에서 《카트린 M의 성생활》이 나오기 100년 전에 이미 유럽에서는 이토록 솔직한 성에 대한 자기표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것이 논란과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프리마돈나의 고백》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한 대의 죽비 같다.
-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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