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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위스키 간판이 없는 바의 새벽

위스키 위스키 간판이 없는 바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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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에세이 top2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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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28*188mm
ISBN13 9791196770723
ISBN10 11967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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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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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스키 병목을 아래로 천천히 기울여 코르크를 살짝 적시고 마개를 열어 그의 코에 가져댔다.
“어떤 향 같아요? 보통 정로환 향이나 치과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해요.”
라가불린을 테이스팅 할 당시 나 또한 치과 치료실을 열자마자 진동하는 향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처음 맡아보는 향이라고 느꼈다. 마른 해초 같기도 했고 태우다 만 신문지 향 같기도 했다.
--- 「간판이 없는 바」 중에서

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참을 오갔다. 나는 아직 무슨 술이 어떻고, 칵테일이 어떻고에 대해 자세한 것들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좋았다. 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찾아보면 어렵지 않은 것이었고 이곳에 있다면 언제든 경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떠있었다.
--- 「편수와 오큰토션」 중에서

“대신 나는 이 보모어 12년이란 병을 설명할 때 오래되고 늙어버린 나무 같다고 얘기해요. 손님들은 그런 향은 뭘까 하고 상상해요. 상상과 동시에 본인이 여태 경험했던 향, 맛을 유추하며 본인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죠.”
--- 「테이스팅 노트」 중에서

향과 맛에 대한 획일화된 정보는 그들의 상상력을 방해할 수 있고, 내가 할 일은 단지 그들이 그 위스키 한 잔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본인 나름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가이드 하는 것이었다.
--- 「테이스팅 노트」 중에서

나는 찻물같이 옅은 나의 핫 토디가 좋았다. 찻물에 띄운 노란 배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면 지나간 그 흔적에 작은 기름이 뒤섞였다. 이곳이 처음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한데 섞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뜨거워졌다. 나와 유사한 청춘들은 늘 약술에 취해 그렇게 두런두런 언저리 속 얘기들을 내비쳤다. 언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진 이야기라던가, 상관의 변덕에 놀아난 이야기. 혹은 별 헤던 지난주에 이별한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늘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숨소리를 타고 스스럼없이 술 줄기와 물줄기를 타고 내가 쥔 몇 개의 작은 도구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 「뜨거운 칵테일」 중에서

가게 전체에 맴도는 붉고 검은 조명에 매킨토시 앰프의 시퍼런 불이 깜빡일 때마다 천장 위의 모래알 같은 것들도 번쩍였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백발의 오너 바텐더가 직접 주문을 받았다.
“맨해튼 오네가이시마스.”
바텐더는 갸우뚱했다.
“아, 마─나─딴.”
--- 「아사쿠사의 별」 중에서

“특별히 넣었어요. 오늘 이 칵테일 가격은 제임슨을 넣은 것과 동일하게 받죠.”
“좋은 커피와 좋은 아이리쉬 위스키라니.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네요. 시가만 한 대 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 「아이리쉬, 아이리쉬」 중에서

간신히 넣은 한 모금은 온몸을 쫙 펴지게 했다. 55도의 도수치고는 부드러운 목 넘김. 하지만 여운은 상당히 길었다. 나에게 잘 맞는, 좋은 위스키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운이었다. 목에서 가슴까지 깊게 전해지는 여운을 즐기는 게 위스키를 마시는 이유 중 첫번째였다.
--- 「비 오는 나카스 강변」 중에서

좋은 위스키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위스키는 가장 빛이 났다. 녹진한 카발란은 순간의 응어리들을 풀어헤칠 만큼 강력했다. 땡볕에 말라 찐득한 과실들이 옆으로 새어 나온 자두처럼 공기에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Angel&s Share」 중에서

엔젤스 셰어 현상으로 인해 위스키가 더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이유 없는 증발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곧 세상에서 증발할 공간과 그 안의 기억들이 누구의 몫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Angel&s Share」 중에서

새로이 맞이한 &간판이 없는 바&의 새벽도 여전히 고요했으나 웃고 떠들고 간 이들이 남긴 잔들은 아직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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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현대인들이 삶에 지쳐 외로워서 모이게 되는 바. 게일어로 '생명의 물' 이라는 뜻을 가진 위스키. 그 한 방울이 코 끝을 자극하고, 혀끝을 지나 목젖으로 넘어갈 때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위스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한다.
- 박유진 (그라더스(grds) 디렉터)
간판이 없는 단골 바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위스키를 곁들여 서홍주의 글을 읽는다. 에피소드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온더락 잔을 빙글 돌리면, 얼음이 달그락거리고 코끝에 새벽 어스름 향이 감돈다. 그의 문장은 온더락 얼음의 표면처럼 차분히 빛난다. 덕분에 이야기는 목 넘김이 부드럽다. 은은한 대화들이 차가운 공허를 희석시킨다. 소설처럼, 사람들은 간판이 없는 바로 모인다. 눈빛과 향이 오간다. 술잔과 귀를 기울인다. 한동안 그의 새벽을 채우던 바는 시간 속으로 증발해 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유 없는 증발 따윈 없다고 그가 썼듯이 그의 새벽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을 거라고 믿는다. 그가 마련한 새벽 풍경으로 사람과 이야기가 모인다. 나도 함께 잔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 최유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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