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예를 들어 지사에게는 이 고을에 들어설 때꼭 낙원에 들어서는 것 같다고 말하며 도로와 행정관청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경찰서장에게는 야간 경비원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했고, 부지사와 대화할 때는 마치 실수인 양 ‘각하’라는 호칭을 일부러 사용하기도 했다. 부지사가 그 호칭에 흐뭇해했음은 물론이다. 그의 활약 결과 지사는 그날 저녁 자기 집에서 열리는 연회에 그를 초대했고, 다른 이들도 오찬과 차 모임에 그를 초대했다. --- pp.18~19
치치코프는 약간 뜸을 들인 후에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죽은 농노입니다.”
그 말에 마닐로프는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물고 있던 파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그는 잠시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긴밀한 우정을 나누던 두 사람은 마치 마주 걸린 초상화처럼 상대방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닐로프는 치치코프가 농담을 하며 웃음 짓고 있는지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진지해 보였다. 마닐로프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 pp.33~34
치치코프의 농노 구입 건은 곧바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농노들을 그렇게 많이 구입해서 이주시키는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 중구난방 떠들어댔다. 심지어 치치코프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하며 농노들을 거주지까지 안전하게 이송할 수 있도록 경비병을 제공하겠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치치코프는 그 조언들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자신이 구입한 농노들은 아주 온화한 성격이라서 별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들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런 온갖 소문과 논의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치치코프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뜻밖의 결실이 맺어졌다. 즉 그가 틀림없이 백만장자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치치코프를 사랑하고 있던 도시 주민들은 그를 더욱더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 pp.102~103
그 소문은 말 그대로 도시를 완전히 갈아엎어놓았다. N시에는 오래전부터 다른 어떤 소문도 없었기에 그 위력은 더욱 컸다. 그리고 도시에는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에 각기 완전히 다른 두 갈래 의견이 형성되었다. 남성들은 죽은 농노들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여성들은 사랑의 도피 행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남성들의 의견에는 논리가 결여되어 있는 반면에 여성들의 논리는 한결 용의주도했고 치밀했다. --- pp.118~119
하지만 과연 우리가 저속하다고 생각하는 욕망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까?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것들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함께 태어나며, 우리에게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마 치치코프 자신에게도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욕망과는 다른, 그를 그 어느 곳인가로 이끄는 욕망이 있을 것이고 그의 냉혹한 존재 안에도 마침내는 인간을 저 천상의 슬기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재로 화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 pp.147~148
텐테트니코프가 교수로 오해한 그 사람은, 우리가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우리의 친애하는 파벨 이바노비치 치치코프라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다소 늙었다. 아마도 풍파를 좀 겪은 것 같았다. 재정 상태 역시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예의범절, 몸가짐은 여전했다. 말투는 더 부드러워졌으며 말을 하거나 표현을 할 때 한결 절제가 있었고 모든 면에서 더욱 재치가 있어진 것 같았다. 옷깃과 와이셔츠는 눈처럼 하얗고 깨끗했으며 막 길에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연미복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도 아주 깨끗하게 면도를 한 상태였다. --- pp.170~171
하지만 치치코프는 자기의 과업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텐테트니코프와 죽은 농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적절한 대상을 물색했다. 그리고 관리인을 통해 10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에 퇴역 장군의 영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 p.173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그건 말입니다, 제가 단호하게 말씀드리지요. 만일 당신이 그렇게 급하게 부자가 되려고 한다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부자가 되려고 한다면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 p.188
치치코프는 주인의 말을 들으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늑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 유랑 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왔고, 고향 집이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것 같았다. 갈망하던 것을 다 얻고서 “이제 충분해”라고 중얼거리며 여행 지팡이를 집어던질 때의 느낌이었다. 코스탄조글로의 지혜로운 말들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다. --- p.191
거래를 끝낸 치치코프는 기쁜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온통 그가 새로 구입한 영지로 꽉 차 있었다. 그는 갑자기 환상 속의 지주에서 실제의 지주가 된 것이다. …… 이런저런 생각이 오락가락했지만, 아무리 어떤 식으로 미래를 그려보아도, 아무리 이모저모 따져보아도 이번 거래에서 손해 볼 일은 조금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예컨대 이렇게 할 수도 있다. 우선 영지 전체를 저당 잡힐 수도 있고, 그중 가장 좋은 땅은 팔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이 영지를 직접 경영하게 되면 코스탄조글로의 훌륭한 충고를 받고 그를 본보기로 삼아 훌륭한 지주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경영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영지를 누군가에게 전매하고 죽은 농노들만 자기 몫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p.201~202
행운을 찾아 떠난 치치코프의 여행은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그는 이제 적지 않은 돈을 소유한 부자가 된 것이다. 그는 행운을 잡았다. 이미 죽은 농노를 담보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데다, 300만 루블의 재산을 가진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 하나사로바라는 할머니가 죽자 유언을 조작해 유산 일부분을 가로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둑질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시스템을 이용했을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처럼 한다. 어떤 이는 국유림을, 어떤 이는 공공 기금을 이용하고, 또 어떤 이는 뜨내기 여배우를 위해 자기 아이들 것을 훔치고, 어떤 이는 고급 가구와 마차를 사기 위해 농노들을 착취한다. 이 세상에 온갖 유혹이 난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 pp.206~207
무라조프의 말을 들으며 치치코프에게는 자신에게도 낯선 그 어떤 감정이 일었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 내내 억눌려 있던 그 무엇이 이제 자유롭게 뛰쳐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오,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이곳에서 얼마간 재산을 갖고 나갈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겠다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자그마한 영지를 사서 성실한 주인 노릇을 다하고, 나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돕기 위해 돈을 모으고, 소박하게,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 p.217
그는 이미 이전의 치치코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의 치치코프의 잔해 같은 것이었다. 그의 내적인 영혼 상태는 새 건물을 세우기 위해 분해된 건물과 비슷했다. 다만 건축가에게서 최종 설계 도면이 오지 않아, 새 건물 건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일꾼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과 같았다.
---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