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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정토

고해정토

: 나의 미나마타병

[ 개정판 ]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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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51쪽 | 454g | 140*210*22mm
ISBN13 9788990706485
ISBN10 8990706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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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돌이 지나고, 두 돌이 되어도 아이들은 걷는 것은 물론이고 기지도, 말하지도, 젓가락을 쥐고 먹지도 못했다. 때때로 정체불명의 경련이나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생선이라곤 먹어본 적도 없는 젖먹이 아기가 미나마타병일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시내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며 어구들을 내다팔아야만 했다. --- p.23

내 고향인 이 지방에서는,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장례행렬 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리를 불고 징을 울리고 비단이며 오색찬란한 깃발을 휘날리며, 명정 하나 세우지 못한 초라한 장례라도, 길 한 가운데를 엄숙하게 행진하면 마부는 말을 멈추게 하고, 자동차는 뒤로 물러서주었다.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많든 적든 살면서 불행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일단 죽은 사람이 되면 숙연한 친애와 경의의 뜻이 담긴 장송의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
1965년 2월 7일, 일본국 쿠마모토현 미나마타시 데츠키의 어부이자 노동자였던 미나마타병의 마흔 번째 사망자인 아라키 타츠오 씨의 장례행렬은, 굉음을 울리며 연달아 달려가는 트럭에게 길을 내주고 질척한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폭 8미터의 3번 국도 가장자리를 논으로 구를 것처럼 위태롭게 비틀비틀 숨죽이며, 바다를 바라보도록 파놓은 묘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p.65

잠시도 멈추지 않는 자잘한 떨림 속에서, 그녀는 건강했을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씽긋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려고 했다. 이미 마흔을 넘겨 수척한 그녀의, 가슴에 사무칠 것 같은 사람 좋은 그 미소는, 하지만 어느새 입술 언저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의 자연스러움과 예의를 자신을 찾은 방문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때때로 그녀가 짜증을 부리는 것은 그녀의 경련이 심해지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녀의 자연스런 성품을 나타내야 할 중요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 p.125~126

밤 되면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바다야. 바다가 제일 좋았어.
봄부터 여름이 되면 바닷속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지. 우리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바닷속에도 명소라는게 있어.‘찻잔코’에‘맨살여울’에‘검은 해협’‘사자섬’까지.
빙 한바퀴 돌면 익숙해진 우리 코에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의 바다 향기가 풀풀 풍기거든.‘회사’냄새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바닷물도 흘러. 굴이며 말미잘이며 청각채며, 바닷물이 출렁이며 흐르는 곳이면 어디나 꽃들이 한들한들거리지.
그 중에서도 특히 물고기가 아름답지. 말미잘은 만발한 국화꽃 같아. 청각채는 바닷속 절벽에 잘 뻗은 가지모양을 층층이 이루고 있지.
톳은 조팝나무 꽃가지 같아. 해초는 대숲 같고.
바닷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닷속에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섬 밑에 있는 바위 안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 틈이 꼭 있거든. 그런 맑은 물하고 바다의 짠 물이 만나는 곳 바위에, 아름다운 파래가 봄에 앞서 먼저 피어나지. 바다 내음 중에서도 봄색이 짙어진 파래가 물기 마른 바위 위에서 햇볕에 구워지는 냄새라니! 정말 그립네. --- p.144~145

고무장갑을 낀 한 의사선생이 한쪽 손바닥에 그녀의 심장을 쥐고, 메스로 자르려던 참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장은 그 심실이 절개되는 순간 조심스럽게 마지막 피를 토해내고, 내 속에선 울컥 그리운 슬픔의 기억이 치밀어 올랐다. 죽음이란, 한때를 살았던 그녀의 전 생애의 무게에 비해 이 얼마나 초라한 행위란 말인가? --- p.151

새댁, 나는 대단한 성공은커녕 나이 칠순이 되어도 보시다시피 근근이 살면서 예까지 왔네. 평생을 살면서 자랑할 것 하나 이뤄놓진 못했지만, 아주 사소한 작은 거짓말이야 때로 방편으로 사용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속이거나 강도질이나 살인 같은 나쁜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조심하면서, 남한테 폐 끼치지 말자고 믿는 마음 하나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죽을 날 머지않은 지금에 와서 이런 재난을 겪어야 한단 말이오?--- p.181

이들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정점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이 나라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의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시켜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집약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미나마타병의 증상을 우리는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목숨이 저승 갈 여비도 안 될 가격으로 값이 매겨졌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된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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