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 진짜 거슬려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데, 내 입에서 계속 말이 튀어나왔다. 진정해, 진정해. 아직 그날이 아니니까, 진정하라고. 이 짜증스러움은 기분 탓이야.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또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짜증 나네.”
“아…….”
조금 전과 똑같은 반응. 야마조에 씨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작 탄산음료 뚜껑 여는 소리에 이렇게 야단을 떨면 대책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억누를 길 없는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탄산음료만 마시지 말고, 일이나 하면 좋을 텐데.”
아아, 심술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몸서리를 친다.
--- 「1」 중에서
“그렇게 심각해지지 않는 게 좋아요. 공황장애는 10년 20년 걸려서 낫는 사람도 많습니다. 초조하게 굴지 말고, 병과 사이좋게 같이 살아간다 여기고 지내는 게 중요합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10년? 20년? 이 나이에? 체력도 기력도 가장 왕성한 20대가 고스란히 물거품이 된다는 말인가. 10년이나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약의 종류가 바뀌고 용량이 늘었을 뿐이었다.
진료를 받고서 회사에 가려고 역으로 향했는데, 회사에 가는 것도, 전철을 타는 것도, 어제보다 한층 힘들었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인도 이유도 없다. 그런데 나는 며칠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치유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
--- 「2」 중에서
어젯밤, 공황장애에 대해서 정보를 검색하다 미용실과 치과가 최고의 난적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가만히 앉아서 상대의 작업에 몸을 맡기려면 엄청난 긴장감을 견뎌 내야 한다고. 그래서 야마조에 씨의 머리가 그렇게 너저분한 거였다. (중략)
아무튼 머리는 짧아졌다. 하지만 마지막에 자른 것은 야마조에 씨 본인이고, 머리 스타일은 엉망이다. 아니야, 시원해졌으니 그럼 됐지, 뭐. 어떻게든 그렇게 믿으려 하다가, 불쑥 생각났다. 2년 만이라고? 2년 만에 웃었다고? 제멋대로 자란 머리보다 그쪽이 더 엄청나다.
--- 「3」 중에서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PMS로 고생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후지사와 씨처럼 짜증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슬픈 일도 없는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계속 흐른다는 경우, 무기력해져서 움직이기도 어렵다는 경우.
공황장애에 PMS에 우울증. 자기 몸과 마음인데,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눈이 피곤해져 화면을 껐다.
먹고 싶지 않지만 칼로리바를 먹고,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약을 먹는다.
--- 「4」 중에서
내가 옆에서 그냥 보기만 해도 짜증을 부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공황장애 같은 심인성 병을 앓으면 타인의 감정적 움직임에 민감해지는 걸까. 어느 쪽이든, 폭발하기 전에 나의 변화를 알아챈 사람은 처음이다.
발작을 일으키면 죽을 듯이 괴롭다는 것. 전철이나 버스, 미용실 등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소를 두려워한다는 것. 공황장애에 대해서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고, 죽음을 상상하게 되는 발작. 한 달에 한 번 예상할 수 있는 날짜에 찾아오는 PMS도 힘겨운데, 얼마나 무서울까. 그런 상상을 하자, 야마조에 씨의 핏기 없는 얼굴이 떠올랐다.
--- 「5」 중에서
공황장애를 앓은 지 2년. 점차 적응이 되어, 이 생활에 불편은 없다. 그렇게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일도 하고,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어도, 그 자리에 갈 수조차 없다. 발작이 끝난 안도감에 한심함이 겹쳐,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아니, 눈물 따위 흘려 봐야 아무 소용없다. 자신을 가엾게 여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중략)
페달을 밟자, 바람이 시원하게 볼을 스친다. 다가올 봄과 저녁을 품은 축축한 바람. 나는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다. 두 다리와 자전거가 있으니 병원은 금방이다. 발작으로 뜨거워진 몸이 바람에 식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 「16」 중에서
작게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소박하게나마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아가는 이 두 사람의 여정이 사랑스럽고 따스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상황을 깨닫고 인정하고 긍정해 가는 과정과 두루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전증후군 여자와 공황장애 남자의 만남.
느릿느릿 답답하지만 우당탕탕 요란할 때도 있고, 때로는 불똥도 튄다. 그리고 재밌다. 따스하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먹구름 걷히고 환한 빛을 품은 새벽이 그들에게도 반드시 찾아오리란 것을 믿을 수 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