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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38g | 128*208*10mm
ISBN13 9788960216112
ISBN10 89602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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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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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

내 안에 아이 셋을 낳고 울어도 좋을 습지가 생겼습니다 차가운 머리론 잘 떠오르지 않는 자궁 안의 분화구 수초 속의 용암 덩어리 열정이었고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당신이 뻘밭을 걷다 만난 나였을 수도 있을

오지에서 레저 용품 전시장을 개업했다 폐업한 자리에 육포처럼 질긴 샐러드와 마른 수초로 엮어 만든 여자를 상징물로 배치해 놓고 우두커니 길가에 불 꺼진 가등처럼 서 있는 내가
교차로에 있던 아이가 보기에는 한밤중에 몰래 섬으로 도망가기 직전의 사기꾼 같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샐러드에 폐유 쏟아 놓은 듯 역겁게 끈적거리고 생각 닿는 곳마다 메스꺼워 삶 자체를 몽땅 토해 놓고 어디 수심 깊은 물속에라도 뛰어들고 싶을 때였답니다 사막의 중심에서 바다까지 연결된 여자의 수중 터널 같은

네! 뭐라구요? 말도 안 되는 말 그만하고 제가 눈에 불을 켜고 있던 교차로 주변이나 내면에 꼬인 용수철 같은 물질이나 살펴보라구요? 튕겨져 배 밖으로 나온 가계도의 도면부터 분석해 보던가

핏줄로부터 분리된 어제의 기억으로
사는 내내 겨울 없이 풍성했던 거짓말로

아이 셋을 낳고 알 수 없는 의문과 불안으로 반역을 일삼던 어느 비즈니스맨의 아니 오지 전문 가이드의 납득되지 않는 비명이 내 안에 습지를 만들고 차가운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필요한 활화산 같은 여름 한때였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교차로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늙은 아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서해 어디 무인도가 있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들던 어느 날인 것 같기도 하고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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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꾸로 돌려 상처 난 기억의 필름들을 현재로 인화印?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 불면과 회한의 감정, 사색과 성찰의 시선이 뒤섞인다. 과거는 통증의 발자국이고 기억은 생쌀처럼 입안에 서걱거리는 모래알들이다.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젖은 침대를 지고 살았던 시인을 위무하는 건 여행과 예술이다. 이때의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정박하지 못한 자의 방랑에 가깝고 음악과 미술은 고독한 자아를 어루만지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말러나 라흐마니노프는 시인의 영혼이 잠시 머물러 쉬는 휴양림 같은 곳이다. 어린 나이부터 객지를 떠돌며 부박한 삶을 살았을 시인, 그가 일생 동안 떠돈 산과 바다, 이역의 땅들은 결국 고독과 갈망이 낳은 시인의 또 다른 육친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시집은 굴곡 많았던 생의 가파른 능선을 기어코 오른 시인 자신에게 바치는 빛의 헌사獻詞이자 바람의 비망록備忘錄이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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