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여성 독서사에서 이경자는 단연 돌올한 존재다. 여자들은 쉬운 독서만을 선호한다는 편견이 횡행할 때, 이경자는 엽편과 장편, TV 드라마와 강연 등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여성 독자들을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초대했다. 특히 내게 이경자의 행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동시대 여성을 매우 진지한 ‘토론’의 상대로 여겼다는 점 때문이다. 가사노동의 경제화, 가족법 개정, 간통죄 존폐 논쟁 등 당대 주요 논의에 이경자는 자신의 글쓰기로써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그의 입장은 일관됐다. 그는 언제나 여성들에게, 가부장제 사회의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 되느니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 기꺼이 ‘도전’하고 ‘혼란’을 겪자고 설득했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이라는 비난을 심심찮게 받은 이경자 소설에서 조롱당하는 것은 비단 가부장 남성만은 아니다. 하층 여성과 사회적 약자 위에 군림해 권능감을 느끼려는 부르주아 여성의 허위의식은 이경자 특유의 풍자가 가장 날카롭게 작동하는 지점이다. 다만, 이경자 소설은 결코 흔한 ‘여적여’ 구도를 소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부인’, ‘부인과 애인’,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 ‘중산층 여성과 하층 여성’, ‘성녀와 창녀’ 등 여성 관계를 손쉽게 분할하는 당대 관습에 강력하게 반발한다. ‘여성 문제’의 범주가 크게 확장된 오늘날에도 이 소설집이 흥미로운 건, 가부장 남성을 절대악으로 설정하는 것보다 여성억압에 공모하는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게 훨씬 더 용감한 실천임을 이 책이 효과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경자의 여자들은 과묵하지 않다. 그녀들은 전통적인 부덕(婦德)의 비인간성을 씹어뱉듯 뇌까리고, ‘종속관계 청산’, ‘노예해방 선언’ 같은 여성주의의 생경한 언어를 어떻게든 일상에서 발설해 본다. 시어머니에게 비난받고, 남편에게 조롱당하고, 자식에게조차 비웃음을 사더라도 그렇게 한다. 그녀들이 말하기를 멈추고 돌연 벙찐 표정을 지으며 어리둥절해한다면, 그건 자신이 옳다고 믿던 ‘교양’과 ‘합리’의 정당성을 스스로 의심할 때다. 이경자의 타협 없는 단언과 차진 비유, 핵심을 찌르는 통찰, 신랄한 조롱조의 문체는 이 세계를 향할 때는 통쾌하나, 나 자신을 향할 때는 두렵다. 이경자 소설에 부려진 그 모든 전략들을 나는 1990년대 여성지성의 두렵고도 용맹한 얼굴로 기억한다.
- 오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