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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경제, 패권

총, 경제,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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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84g | 152*225*30mm
ISBN13 9791190429214
ISBN10 119042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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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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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에서 ‘경제’라는 말은 현재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수隋나라 왕통王通의 『문중자文中子』 「예악 禮樂」에 최초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말한 ‘경제’는 經國濟民(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다)의 줄인 말로 오늘날의 경제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oikonomia(집을 관리하다, household management)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일본인이 한자 經濟 로 맨 처음 옮겼고 만청晩淸 시기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양계초梁啓超가 이 명칭을 중국에 소개한 이후 중국도 ‘경제’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제학에서 ‘경제’는 사람과 사회가 희소한 생산 자원을 어떻게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와 생산된 제품을 어떻게 사회의 각 성원이나 집단에게 분배하여 소비하게 할 것인가를 말한다.
--- p.26

도연명陶淵明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완전히 세속과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는 한 공동체를 묘사했는데, 하나의 촌락이 하나의 공동체였다. 이런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답은 긍정적이다. 경제사학자 리옌李? 선생은 『수호전水滸傳』 연구에서 송원宋元 시대 중원 일대에 이미 사방에 많은 장원莊園이 분포했다고 지적했다(‘삼타축가장三打祝家莊’ 중 축가장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장원은 약이나 비단 등 아주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외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마련해 충당했다. 심지어 술조차도 스스로 빚어 마셨는데 이런 외부 세계와의 경제적 절연은 그들이 보유한 자연경제성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자연경제 아래에서 물질생활은 매우 단순했기 때문에 자급자족하기가 쉬웠다. 또는 생산 수준이 제한적이었기에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순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수호전』 속 장원 생활이 이러했다.
--- p.31~32

루쉰魯迅? 선생? 또한 ?“외국은 ?화약을 ?사용해 ?포탄을 ?만들어 ?적을 방어하는데 ?중국은 ?여전히 ?그것을 ?사용해 ?폭죽을 ?터뜨리며? 귀신을 섬기고?있다.? 외국은?나침반을? 가지고 항해를 ?하는데 ?중국은 ?풍수나 ?살피고?있다” 라고 ?했다.? 중국과? 유럽? 국가는 ?지식혁명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각자? 다른 ?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나는 ?이것이 ?여러?사람들이 ?이야기한? ‘니덤?난제’에?대한 ?하나의?답 이라고? 본다.
--- p.57

이탈리아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페인, 포르투갈과 비교했을 때 이탈리아는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했고 신대륙과 동방에서 큰 부를 획득하지도 못했다. 영국,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이탈리아는 새롭게 힘을 얻고 있던 대서양 무역에서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했으며 특히 상업과 국내 공업 발전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중상주의를 실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이탈리아는 영국, 프랑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16세기 말에 이르러 이탈리아는 자신들의 오랜 활동 무대이던 동방무역조차 지중해로 대거 남하한 네덜란드 상인과 영국 상인에게 넘겨주었다.
--- p.86

1588년 5월 대규모 스페인 무적함대가 리스본을 떠나 “골리앗이 다윗을 공격한”것처럼 곧장 영국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대결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고 돌아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거의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최대 강국의 패권적 지위가 이로 부터 급전직하했다는 점에서 이 해전은 세계 근현대사에서 다른 어떤 해전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듬해에 나바라의 앙리가 프랑스 왕에 등극해 앙리 4세Henry IV(재위 1589~1610)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국가 이익을 종교 분쟁보다 우선했으며 몇 년 후 새롭게 통일된 프랑스로서 스페인에게 선전 포고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는 유 럽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했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더불어 합스부르크 스페인의 또 하나의 큰 적수가 되었다.
--- p.119

세계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중상주의의 역할은 르네상스,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 종교개혁, 과학기술혁명, 산업혁명, 계몽사상, 정치혁명 등 익히 잘 알려진 역사적인 사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중상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추진하며 강력한 정책으로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아직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지만 나는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상주의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근대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점검하고 나아가 세계 역사가 진행되어온 과정을 깊이 있게 인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p.158

1815년 이후 중상주의로 회귀하며 프랑스는 지속적인 성장기를 맞이했지만 1860년 영국과 다시 통상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프랑스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고 전례 없는 침체기로 들어섰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말 재차 중상주의를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엎치락뒤치락 반복을 거듭한 프랑스의 발전 양상은 영국과 분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영국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관되게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19세기 초에 이르러 산업 분야에서 이미 세계에서 적수가 없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체계적으로 자유무역을 실행했다.
--- p.178

미국 문화인류학자 프랜츠 보애스Franz Boas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 어떻게 선진 문명에 도달할 것인가는 본질적으로 그들이 다른 우수한 민족과 얼마나 접촉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므로 선진 문명, 우수한 국가와의 교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선진적인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프랑스가 아주 좋은 예다. 이 점은 중국 역사 속의 문제를 분석할 때나 현실 속의 발전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훌륭한 깨우침을 줄 것이다.
--- p.185

둘째 요소는 대륙에서의 ‘세력 균형’이다. 국제 정치에서 흔히 말 하는 ‘세력 균형’은 국가체제 내에서 어떤 국가도 절대적으로 다른 국가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압도적 우위를 형성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대외 정책의 방향은 어떤 국가가 유럽 대륙에서 독자적인 패권을 가지거나 유럽을 통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이 유럽 대륙 전쟁에 참전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 p.196

빌헬름 2세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큰외손자로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빌헬름 2세는 영국에 집착했을 뿐만 아니라 해군에도 집착해 해군 제복을 입는 것을 좋아했으며 머핸의 저작을 즐겨 읽었다. 빌헬름 2세는 독일의 지위가 독일의 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독일의 힘을 과시하는 데 단점으로 작용하던 해군을 반드시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213

독일은 화학 산업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치를 차지했다. 이후 역사가들은 화학 산업을 일컬어 “독일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성취”라고 했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Carlo M. Cipolla는 영국과 독일의 염료 산업을 비교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화학 산업에 있어서만큼은 영국이 후진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경제의 특성을 보였다. 즉 독일에 콜타르 원료 및 반가공품 등 원자재를 수출하고 독일에서 정제된 값비싼 염료를 다시 사들였다.” 신흥 근대 산업이 된 전기와 화학 산업의 급속한 발전은 후발 국가 독일이 신흥 산업 국가로 발전하는 데 활발한 활력을 제공했다. 독일은 이들 신흥 산업을 기반으로 일약 세계 산업의 선진 국가가 되었다.
--- p.242

오늘날 우리는 글로벌 세계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현실은 근대 유럽의 부흥, 발전과 해외 확장에 근원을 둔 것이다. 1500년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지금까지 세계에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두 글로벌 강국이 있었다. 그들의 통치 범위와 영향은 전 방위적이었고,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아우르는 그들의 역량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화폐를 포함해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특수한 유대’ 관계로 인해 세계 경제의 패권자인 미국을 이해하려면 대영제국 체제의 일부분이던 독립 이전의 식민지 시대를 추적해야 한다.
--- p.259

이 덕분에 미국은 자신의 제품을 아메리카 대륙, 카리브해 지역, 유럽과 극동에 이르는 세계 각지에 수출함으로써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더는 농업과 자원 수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도약할 준비가 된 신흥국이자 유럽에서 점차 인정받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20세기 초, 1926년에 미국 총생산량이 유럽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런 현상은 1919년에 나타났다. 미국이 유럽의 지위를 이어받기까지 꼭 100년이 걸린 셈이다.
--- p.264

중국학자 딩이판丁一凡과 뉴원신?文新의 설명은 아주 재미있다. 그들이 함께 쓴 『달러 패권美元覇權』(2014)에서 미국인이 마음대로 환율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비아냥대듯 말했다.

“한 미국인이 10만 달러를 위안화로 환전할 때 환율이 1:6.5라고 한다면 65만 위안이 된다. 그가 1년 동안 중국을 여행하면서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난 후 50만 위안을 남겼고, 그 남긴 돈을 달러로 환전하려고 할 때 달러 대 위안화의 환율이 1:5라고 한다면 그는 10만 달러를 환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인 한 명 혹은 몇몇 미국인, 아니면 전체 미국인이 중국에서 1년 동안 위안화를 흥청망청 써도 결국 1년 전과 같은 액수의 달러를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농담이지만, 미국이 마음대로 달러 환율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꾀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p.281

한편 일부 정치학자들은 레이거노믹스와 미국의 장기간에 걸친 번영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전쟁의 그늘에서 미국의 삶이 억압받던 것과 관련 있다고 보았다. 레이건은 간단명료한 말로 복잡한 경제 이론을 설명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설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 위기에서는 정부가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가 문제입니다.” “정부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부 예산도 규모를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싫어하고 기업 독점을 반대합니다.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의 이러한 연설과 발언은 미국 중하층의 심리, 특히 막대한 정부 예산을 반대하는 미국인의 전통적인 심리를 사로잡는 데 큰 몫을 했다.
--- p.288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조용히 돈만 벌자’가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시장 개방에 힘입어 발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제 사회에서 몸을 낮추어 ‘3S’라는 평가를 받았다. 3S는 Silent, Smiling, Sleeping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일본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라면 어떠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 p.305

플라자 회의 다음 날인 1985년 9월 23일,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재계와 무역업계 대표를 접견해 무역 문제에 관해 연설하며 ‘자유무역’은 반드시 ‘공정 무역’이어야 한다며 일본의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했을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이던 존 코널리John B. Connally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공정해야 한다.”
--- p.326

현대 세계 경제사 데이터 연구 및 분석 전문가 앵거스 매디슨 Angus Maddison의 추산과 추정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800년까지는 동방과 서방 국가를 막론하고 1인당 GDP는 기본적으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14~15세기 베네치아에서 비로소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16~17세기에는 네덜란드 경제가 산업혁명 이전에 성장의 길에 들어섰으며, 17~18세기에는 영국의 1인당 소득이 일정한 증가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1820년대 후반 영국과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근대적 경제 성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p.350

근현대 세계 역사를 배경으로 중국의 과거 70년간의 경제 성장 궤적을 살펴보면 비교적 분명해진다. 앵거스 매디슨이 『세계 경제 천년사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2001)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몇몇 세계 대국의 총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을 볼 때, 1500년 명나라 효종孝宗(재위 1487~1505) 홍치弘治 연간 중흥 시기에 중국 GDP는 세계 경제에서 대략 24.9퍼센트를 차지했고, 명나라 신종神宗(재위 1573~1620) 만력萬曆 28년인 1600년에 이르면 중국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9퍼센트로 상승했다.

그러다 청나라 성조聖祖(재위 1661~1722) 강희康熙 39년인 1700년에 이르러 22.3퍼센트로 하락했다. 청나라 선종宣宗(재위 1820~1850) 도광道光 연간인 1820년에 중국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최고 수준으로 상승해 전 세계 경제의 32.9퍼센트를 점유했다. 많은 경제사가들은 당시 중국 GDP가 유럽 모든 국가의 GDP를 합한 것보다도 높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 p.351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아시아 국가, 특히 동아시아의 ‘후발 추격형’ 경제체제의 고속 성장 시기가 모두 이들 국가가 채택한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 전략과 관계있다는 점이다. 20~30년에 걸친 고속 경제 성장과 자국의 산업화를 완성한 이후 이들 추격형 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경제 성장이 둔화되어 심지어 절반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74년부터 1992년까지의 경제 성장률이 3.7퍼센트에 불과했는데, 1950년에서 1973년까지 고속 성장 기간의 성장률에 비해 절반 이상 하락한 것이다. 또한 1993년 이후 2009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매우 크게 하락해 연평균 성장률이 겨우 0.8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경제도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대략 4.3퍼센트에 불과해 1971년에서 1996년까지의 고속 성장 시기에 비해 성장률이 거의 절반가량 하락했다.
--- p.368~369

인류의 생존과 생활방식을 더욱 변화시킬 차세대 대기술혁명이 도래하기 전에 중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과잉 생산, 성장 기회 감소, 제한된 시장 공간 및 성장 동력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중국 경제 성장률이 1973년 일본,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과 싱가포르처럼 하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추세다.

그러므로 최근 중국 정부가 미래 경제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큰 방향에서는 옳다. 그러나 인류의 과학기술 지식 발달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인류의 생활 방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다음 과학기술혁명은 무엇일까? 인류 사회는 신소재, 신에너지, 나노기술, 생명공학, 새로운 통신 기술, 심지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까지 통합하는 제4차 과학기술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매우 불분명하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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