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좋고 효과가 있는 그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그 위에 무언가를 더 보태려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의 나쁘고 망가진 그 무엇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해 그 모두를 파괴해 버리려 애쓰는 성향이 있다.”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무시하면서 이상향의 청사진을 관념적으로 창조하겠다는 이념적 오만도 정답이 아니고, 우리 세대에 요구되고 우리가 노심초사해서 답해야 할 질문에 과거의 지혜에만 맹목적으로 의지해 자동적으로 대꾸해서도 안 된다.”
“인류라는 이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합성체(the great mysterious incorporation of the human race)는 버크가 말했듯 일종의 계약이다. 신성과 인간성, 죽은 자와 현재를 살아가는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 맺어진 계약 말이다.”
“문제는 결국 인간에게 타고난 권리(natural right)가 있는지 그 여부가 아니라 그러한 권리들을 어떤 특정한 시기에 영원히 규정해도 좋으냐다.”
“자유지상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선하다면 정부의 악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권위주의자들이여 답하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이라면 어떻게 정부가 미덕을 강제하는 힘이 되겠는가?”
“경제적 자유가 제한될수록 그만큼 강제 조치의 물길이 높아지고 자유에 주어진 공간은 좁아진다. 경제적 자유를 수용하도록 사람들을 교육한다는 의미는 이른바 복지 국가의 모든 혜택을 포함해 모든 강제의 증가에 당연히 뒤따르는 무게감까지 고려하라는 가르침이다. 복지국가서 강제는 대단히 필수적이어서 복지국가의 의미를 명료하게 하려면 ‘강제적 복지 국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물론 민주주의와 고삐 풀린 정부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나 반대해야 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삐 풀린 정부다. 사람들은 다수결 법칙의 적용 범위는 물론이고 어떤 다른 형태의 정부도 그 영역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여하튼 평화적 변화의 수단이나, 정치 교육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이점은 다른 어느 체제와 비교해 보아도 아주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정부에 무엇을 할 권한이 주어졌느냐이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사이,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악한 사람들 사이의 도덕적 질서는 서로 소통이 불가능하다. 각자는 그 자신만의 실재에서 살기 때문에 각자는 그 자신의 생각에 걸맞은 증거들만 발견한다. 이렇듯 다른 실재에 기반을 둔 주장은 상대에게 어떤 설득력도 가질 가능성이 없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과거와 달리 새롭다. 그동안 인간들이 맞서 싸워왔던 문제가 아니다. 교회, 헌정체제, 경제적 이해, 권력의 분립, 권위의 분권화와 다원화 등으로 견제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절대적 획일성을 불러오며 뒤이어 폭정을 촉발하는 경향이 있다.”
“헌정체제는 언제나, 단순한 종이 문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공유된 상황(shared situation)”으로 인간이 정치체제에서 공통의 이해를 보존하는 부단한 조정(continuous arrangement)이다. 헌정질서는 국가가 그 국민의 특성을 계속 표현하도록 만드는, 유능한 인물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능력 발전의 여지를 주는, 그리고 사회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모든 영향력들로 구성된다.”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의 가치는 법무부가 독점이나 담합이라는 잘못을 찾아내어 벌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가치는 이 법률이 남아 있는 한 어떤 기업인 집단도 가격 담합이나, 특정 지역에 부과된 판매량 제한 혹은 할당량이라는 담합을 깨는 반항적인 동료 기업인을 어느 법정에도 제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반독점법은 그런 독불장군 기업인들이 담합 기업인들의 꿍꿍이를 거부하도록 허용한다.”
“청중들이… 묻는다.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때때로 질문자는 강연자의 공허한 둘러댐을 예상한 듯, “가급적이면 한 문장으로”라고 덧붙인다. 그런 경우 나는 답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을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집합체(‘국민’, ‘소수’, ‘새로운 민족’)에만 관심이 있거나, 집합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침몰시키고 조작가능 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적 측면에나 몰두할 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자기실현을 주로 개인의 독립성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든, 아니면 공동체의 관점에서 인식하든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이념적 개념들을 거부한다. 공동체가 주요한 개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집합체라는 관점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는 부분과 별개고,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무엇이며 초인적 특성을 지녔고 그에 걸맞은 능력들도 보유했다. 사회는 그 자체의 윤리적 철학적 세계에서 작동하며, 유한한 존재인 인간들이 전혀 모르는 별들의 안내를 받는다. 따라서 사회의 한 단위인 개인은 그 자신의 한계 탓에 사회를 판단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측량하는 기준들을 사회에 적용할 수도 없다. 물론 개인은 사회에 필요하지만 오직 기계 부품처럼 대체 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는 개인을 가부장적으로 염려하지만 개인들에 결코 의지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영미의 전통을 계속 방어해야 했던 버크나 해밀턴 같은 사람들을 ‘최초의 보수주의자’로 그릇되게 주장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지키려던 전통을 그 자신들이 수립했다고 생각하려면 역사를 유별나게 왜곡해서 보아야 한다. 사실 그들이 내세웠던 원칙들이나 그 원칙을 보호하려던 주장들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그들은 포테스큐, 코크, 셀던, 헤일 같은 정치인이나 사상가들의 책에서 그런 내용을 배우고 익혔다.”
“자유 민주주의는 영미의 전통적 헌정체제가 아니다. 신교(Protestant religion)와 영미의 국가적 전통에서 전면적으로 분리해 합리주의자가 재구축한 체제일 뿐이다. 오랜 세월 검증된 정부 형태가 아닌 이 자유-민주적 이상은 오직 20세기 중반에 시작됐으며 미국과 영국 모두에 전혀 새로운 체제다. 자유주의자들이 기꺼이 내다버린 보수적 원칙들 없이 이러한 종류의 자유-민주적 정권이 오래 유지된다는 주장은 이제부터 처음으로 검증되어야 할 가설이다. 이 실험의 결과가 … 바람직하리라는 … 증거는 아직 하나도 없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