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친구가 바로 내 예술이라네. 내 예술을 위해 새로운 개성이 등장한 거야. 나는 물론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묘사하고 스케치를 한다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그는 내게 모델 이상이야.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야. 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 말은, 그의 개성을 보고 예술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 내게 떠올랐다는 말이야. 그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 방식, 새로운 스타일을 탄생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야.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을 재창조할 수 있게 된 거야.” --- p.13~14
“우리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거부하기에 벌을 받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억압하고 있는 우리의 충동들이 우리 내부에서 싹을 틔워 우리를 독살시키고 있는 거지요. 그 충동과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겁니다. 누르려고 해도 소용없고, 그럴 때 오히려 독이 되는 거예요. 그 모든 욕망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거예요. 그레이 씨, 당신은 젊음의 아름다움이 활짝 꽃핀 시기를 보내고 있지요. 하지만 당신의 정열이 당신을 두렵게 만든 적이 없나요? 생각만 해도 뺨을 붉게 물들이는 꿈을 꾸어본 적 없나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 p.23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오, 정말로 슬프도다! 이 초상화에는 주름 하나 없는데, 나는 언젠가 늙어 주름투성이의 흉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아, 그 반대로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언제까지나 젊은 상태로 있고, 나 대신 이 그림이 늙어갈 수 있다면!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을!” --- p.31
“나는 인정한다, 안 한다, 이런 말 한 적 없어.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 아, 우리가 무슨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자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건가? 도리언 그레이가 줄리엣을 연기하는 한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려 한다. 왜, 안 되나? 뭐가 어때서? 자네는 내가 결혼 제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잘 알지? 왜 그런지 아나? 결혼이 지닌 가장 큰 결점이 이기주의를 죽인다는 데 있기 때문이야.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색깔이 없어. 개성이 없다는 말이야. 하지만 결혼도 경험이야. 그리고 모든 경험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법이지. 나는 도리언 그레이가 그 여자와 결혼해서 한 6개월 정도 그녀와의 사랑에 푹 빠져 있다가, 다른 여자에게 다시 반하게 되길 원해. 미래를 향해 열린 눈을 갖는 공부를 한 셈이지.” --- p.71
영원한 젊음, 채워지지 않는 열정, 은밀한 쾌락, 뜨거운 관능과 불타오르는 죄, 이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이미 그의 앞길에 주어진 것이며, 치욕의 무거운 짐은 초상화가 대신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그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울 것이며 초상화가 추하게 늙어가리라. --- p.103
도리언은 안개비를 맞으며 부두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애드리언 싱글턴을 만난 것이 그의 마음을 이상하게 흔들었다. 그는 바질 홀워드가 그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말했듯 저 젊은 친구가 파멸에 빠진 것이 정말로 자기 탓인지 자문해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떠맡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갈 뿐이고, 각자의 값을 스스로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단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단 한 번의 잘못의 대가를 너무 자주 치러야 한다는 것뿐이다. 운명의 여신은 인간과 거래하면서 결코 손해를 보는 법이 없다. --- p.178
아! 오만과 격정에 휩싸여, 초상화에게 세월의 짐을 지우고 자신은 티 한 점 없는 젊음을 영원히 지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 끔찍한 순간! 그의 모든 불행은 바로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신속하게 확실한 처벌을 받는 것이 나았다. 징벌은 바로 정화(淨化)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기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벌하여 주옵소서’라야 했다.
--- 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