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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은 사랑

가난하지 않은 사랑

: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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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34g | 130*188*15mm
ISBN13 9791190408219
ISBN10 11904082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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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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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어 마지막 남은 먼지까지 깔끔하게 닦았다. 먼지는 구석에 조용히 있었으나 어떤 움직임 때문에 말끔히 제거됐다. 어쩌면 먼지의 존재 이유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먼지가 없었다면 청소를 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열등감은 먼지 같다. 열등감은 나를 사랑할 순 없게 해도, 나를 움직이게는 했다. 열등감 때문에 부지런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나를 사랑할 이유는 어느 정도는 성립됐다.
--- p.25, 「먼지 같은 열등감」 중에서

나라는 인간은 관계에서 얻은 기억의 총합으로 구성된 듯했다. 타인과 행복을 나눈 기억, 타인에게 위로를 받은 기억, 그런 기억 따위가 내 인격을 구성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나쁜 사람에게 고통 받았던 기억보다, 좋은 사람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걸 더 많이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돼지 꼬리에 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상한 수면 베개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데 분명히 존재한다.
--- p.38, 「나를 구성하는 기억들」 중에서

초등학교 앞에는 늘 세 명의 어른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 무언가를 팔았다. 그중 가장 특별한 걸 파는 사람은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였다. 병아리는 박스 안에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마치 백화점에서 ‘특별 할인! 90% 세일!’이라고 적힌 곳에 놓인 물건처럼. 병아리인데 병아리 취급을 받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안 살 거면 만지지 마.”
병아리 아저씨가 경고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알겠어요. 안 만질게요…….’ 나는 속으로 대답하고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가 “언제부터 자본주의의 슬픔을 알게 됐나요?”라고 물으면 “병아리를 만지지 못했을 때부터요.”라고 대답했으리.
--- pp.61~62, 「최초의 능동적 사랑」 중에서

가끔 타인이 그리울 때 편지를 쓴다. 내 직업은 고립이 필수라 외로울 틈이 많기 때문이다. 혹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때도 편지를 쓴다. 편지는 가장 이타적인 글쓰기 방식이라, 내가 너무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 걸 방지하기도 했다.
편지 안에선 낯간지러운 말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일상에서는 하지 못하는 다정한 문장이, 편지를 쓰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편지는 다정함 앞에서 뻔뻔해지는 연습인 듯했다.
--- p.90, 「글에서만 솔직한 애정」 중에서

외로움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외로움이 소나기처럼 한 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비는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비에 쫄딱 맞은 길고양이처럼 말이다. 이상했다. 없어진 건 고작 의자 하나뿐인데, 마음이 더 쓸쓸하고 허전한 게.
탁자에 의자가 있는 이유는 ‘누군가 앉을 가능성’ 때문이다. 나는 의자를 잃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곁에 있을 가능성을 잃었다.
외로움은 혼자일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가 의자를 찾음으로써 내 존재의 불필요성을 더 선명히 느꼈다. 의자보다 가치 없는 인간은 고독이 확정된 시간을 견뎌야 했다.
--- pp.110~111, 「외로움에 대하여」 중에서

우리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여름밤은 긴 시간 동안 걷기 좋은 계절이었다. 풀벌레 소리와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만큼 분위기 있었다. 그 분위기는 약간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분위기 때문에 더 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더 또렷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온 신경에 걔한테만 집중되느라 나머지는 전부 흐릿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지금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지금 포옹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지금 사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71, 「청춘과 낭만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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