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에 걸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아이의 자기주도성과 독자적인 행동, 독자적인 능력을 신뢰한다. 특히 운동 발달의 측면에서 아이들의 이런 능력을 신뢰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리에 앉고 일어서고 걷는지 시범을 보이지 않는다. 대근육 운동 기능의 발달이 다소 늦거나 지체되더라도 아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시간을 주고 지켜본다. 미세근육 운동 기능의 발달과 언어 발달이 눈에 띄게 늦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가 자신과 세상을 발견해갈 수 있도록 안정감과 평안함을 심어 주고, 이에 필요한 외부 조건을 조성한다. 사물의 특성을 알아갈 때에도, 우리는 앞서나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특성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그친다.
우리는 어떤 발달 단계도 선행하지 않는다. 식사나 괄약근 조절에 관해서도 우리는 아이의 능력을 믿는다. 아이가 얼마만큼의 양을 먹어야 하는지도 우리가 결정하지 않으며, 언제 아이가 배불러 하는지를 감지하려 노력한다. 또한 아이가 요청하기 전까지는 유아용 변기에 앉히지 않으며, 아이가 변기에 앉혀 달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가 아이를 대할 때는 아이는 자신의 인격이 존중 받는다고 느끼도록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단 한 번도, "심술궂다, 멍청하다, 서투르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는 절대로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이나 창피한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육교사는 아이에 대해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빼앗았다고 해서, 아이가 들고 있던 장난감을 우리가 빼앗지도 않는다. 그 대신 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다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곁에서 함께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육교사는 빼앗은 아이가 자발적으로 장난감을 돌려줄 준비가 될 때까지 빼앗긴 아이가 기다릴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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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기에게 의미 없는 소리나 귀여운 의성어를 던지지 말고,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젖먹이를 앞에 두고 마치 생각하는 바를 소리내기라도 하듯 아기와 함께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에는 무엇을 할 차례인지 이야기한다. 아기와 함께 있을 때, 아침에 아기를 받을 때, 아기를 씻길 때, 우유를 먹일 준비를 할 때, 바깥으로 데리고 나갈 때,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기에게 이야기한다. 물론 처음에는 아기가 우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아기에게 이야기를 하면, 아기는 이미 그때부터 우리의 말에 기꺼이 귀 기울일 것이다. 아기는 우리의 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관찰할 것이다. 좀 더 자라서 같은 소리와 같은 단어를 항상 같은 물건과 같은 동작, 같은 일과 연관 지어 들으면, 아기는 자신이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을 자신이 듣는 소리와 연결한다. 그러면 아기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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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소리를 냄으로써 우리와의 접촉을 시작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아기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기가 소리 내기를 배우는 과정 중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아기의 "소리 내어 말걸기"는 무엇을 뜻할까? 아기가 담당 보육교사의 주의를 끌려고 특정한 소리 또는 연속적인 소리를 몇 차례 반복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아기가 "보육교사를 부른다" 또는 "보육교사에게 말을 건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아기가 부르거나 말을 걸어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까? 아기는 배가 고프면 울음을 터뜨려 어른들의 주의를 끈다. 우리는 젖먹이 시기의 아기들, 말을 시작한 만 1세 무렵의 아기들이 점점 덜 울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 1세에서 2세 사이의 어린아이들이 처음에는 단어를 통해, 나중에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이 바라는 바를 표현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려면, 아기들 자신이 굳이 울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해도 어른들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아기가 부르는 소리와 말을 거는 소리를 의도를 가진 소리로 인식하고 응답한다면, 아기는 소리나 단어를 통해 어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진다. 아기는 상대방이 자신을 인지하고, 자신의 표현, 자신이 원하는 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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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치에서는 아이들이 의사의 진찰을 받거나 예방주사를 맞게 되면 미리 아이에게 말을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한다. 진찰을 받거나 예방주사를 맞을 때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해 둔다. 우리는 아이에게 닥칠 일에 대해서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리 알려 주면, 아이는 겁을 먹고 울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움과 충격이 오래 남지는 않는다. 예기치 않게 갑자기 불쾌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진정하는 것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같이 예방주사를 맞는 경우에는 다른 아이들이 주사를 맞을 때 곁에 있게 하면 진행 상황을 좀 더 쉽게 이해한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주사약을 주사기에 넣는 것도 아이들이 상황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믿음을 깨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왜, 무슨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주사를 맞으면 분명히 아플 거라고 미리 이야기한다. 또한 아주 조금만 아플 거라는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행동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우는 것은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자연스럽고 적절한 표현 방식이다. 우리는 아이가 불쾌한 일로 인한 충격을 가능한 한 조금만 받고 어른들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항상 안고 살지 않도록 지켜 주려 한다.
우리는 만 한 살 이하의 아기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준비시킨다. 예방접종을 위해 잠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거나 아이의 일상적인 리듬을 깨는 일도 없다. 내가 보육원장실에서 예방접종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해 두면, 보육교사가 아기를 안고 웃는 얼굴이 아니라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제 의사 선생님이 너한테 바늘로 콕 찌를 텐데, 좀 아플 거야.” 주사를 놓을 때 의사 선생님도 똑같이 말한다. “이제 좀 아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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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우는 이유가 확실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 지금 화가 나 있구나. 네가 목욕이 끝나고 옷 입는 게 싫어한다는 걸 안단다.” 또는, “지금 네가 기분이 나쁘다는 건 알겠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그냥 고단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침대에 데려다줄게.”
조안은 아직 옷을 갈아입힐 때 협조하지는 않지만, 각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내가 자신의 옷을 갈아입히도록 놔둡니다. 조안에게 발을 내밀라고 하면 내밀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때도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어요. 조안을 목욕시킬 때는,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을 모두 알려 줍니다. 예컨대, “조안, 이제 손을 씻길 거야.”라고 말하고 시간을 조금 주면, 조안은 나를 쳐다보고는 기다립니다. 이때 내가 자신의 손을 만지면, 조안은 마치 “그래,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듯 미소를 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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