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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 학교

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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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36g | 153*224*30mm
ISBN13 9788920042461
ISBN10 892004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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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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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날 한국 대학의 제도적 ‘뿌리’인 전문학교의 역사에 대해 쓴 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 근대(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1876~1945)라는 시기에 전문학교가 생겨난 경위,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 그리고 전문학교를 통해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 위한 조선인들의 노력에 대한 기록이다. 주로 일제 강점기 전문학교에 대해 썼지만, 그 이전 시대를 모르고서는 이 시대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으로 전문학교의 설립이 논의된 개항기 고등교육에 대해서도 약간 덧붙였다.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한 시대는 그 이전 시대로부터 많든 적든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서울대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른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파동(국대안 파동)’ 속에서 1946년 8월 22일에 제정된 군정법령 제102호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에 의해 설립됐다. 그런데 이는 경성대학(경성제국대학의 해방 직후 교명)뿐만 아니라 여기에 6교의 관립 전문학교와 1교의 사립 전문학교가 통합되는 형태였다. 그러니까 서울대학교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만이 아니라 전문학교이기도 한 것이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한국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학 중에는 전신이 전문학교인 경우가 많다. 연세대학교는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고려대학교는 보성전문학교, 숭실대학교는 숭실전문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동국대학교는 중앙불교전문학교, 숙명여자대학교는 숙명여자전문학교, 성균관대학교는 명륜전문학교가 그 전신이다. 그 밖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은 대구의학전문학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경대학교 수산과학대학은 부산고등수산학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은 광주의학전문학교가 그 전신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학의 뿌리가 전문학교라고 말하는 이유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있지만, 사립대학의 비율(약 80%)이 압도적으로 높은 체제, 또한 서열 구조가 있고 그 꼭대기에는 국립대학(서울대학교)이 놓여 있는 체제다. 대학이 대체로 국립이고 평준화되어 있는 유럽 나라들이나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있지만 주립대학의 비율이 더 높고 또한 서열 구조가 있더라도 그 꼭대기에는 사립대학이 있는 미국의 고등교육 체제와도 다른,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유형이다. 비슷한 유형의 나라로는 일본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독특한 고등교육 체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총독부는 관립 전문학교의 ‘종래의 비율제도’, 즉 민족별 정원제도의 폐지와 이를 계기로 생겨난 민족별 입학자 수의 역전 현상을 “실력주의로만 나가게 된 바 조선인 학생의 실력이 일본 내지인만 못”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실력주의란 인종, 민족, 신분, 계급, 학벌, 연고 등과 관계없이 능력만을 기준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앞의 인용문에서 실력주의란, 관립 전문학교가 입학자 선발 과정에서 ‘민족’을 배제하고 오직 실력, 즉 학업 능력만을 기준으로 입학자를 선발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총독부는 실력주의라는 논리로 민족별 입학자 수의 역전 현상을 학업 능력을 기준으로 한 공정한 선발의 결과라며 정당화했다.
---「제2장. 민족별 정원 제도에서 ‘실력주의’로」중에서

여자전문학교가 이화여자전문학교밖에 없었다. 그만큼 조선 여성은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또한 남성에 비해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유학을 가기도 어려웠다. 특히, 전시체제기에는 대한해협의 남쪽 바다가 전쟁의 장이 됨에 따라 일본 유학은 더욱 위험해졌다. 당시 대구고등여학교를 다녔던 스기야마 토미는 “제가 5학년 무렵에는 연락선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고 바다에 기뢰가 있어서 현해탄을 건너는 것이 위험하여 배를 탈 때 전부 구명조끼를 입던 시대였지요. 일본에도 학교는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 여자 혼자 현해탄을 건너는 것은 위험했고, 저희 집에서는 허락할 리가 없었지요”라고 회고했다.
---「제3장.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중에서

총독부는 사립 전문학교의 설립 인가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총독부는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1917), 보성전문학교(1922), 숭실전문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1925),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1929), 경성약학전문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1930),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대동공업전문학교·숙명여자전문학교(1938), 명륜전문학교(1942)의 설립을 허가했다. 그 결과, 1938년에 관립 전문학교 5교, 공립 전문학교 2교가 설립되어 있었던 데 반해, 사립 전문학교는 11교가 설립되어 있었다.
---「제3장.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중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서열 구조 안에서 가장 꼭대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있었으며, 그 아래에 관립 전문학교, 그 아래에는 사립 전문학교 그리고 맨 아래에는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가 있었다. 이런 서열 구조는 관립 전문학교와 사립 전문학교 간에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총독부의 관립 전문학교 우대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사립 전문학교가 아무리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더라도 관립 전문학교보다 높은 서열로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관립 전문학교와 사립 전문학교 간에 고착화된 서열 구조는 사회적으로도 관립 전문학교 졸업자를 우대하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제4장. 관립은 일류, 사립은 이류」중에서

관립 전문학교는 경성제일고보를 비롯해서 비교적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로 채워졌다. 이는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입신출세의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경성제국대학 예과나 관·공립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입신출세의 욕구는 학교 선택에 강력한 동기였다.

바꿔 말하면, 이는 총독부가 관립 전문학교 우대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식민지 전문학교 체제의 서열 구조를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관립 전문학교로 학업 능력이 우수한 조선인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관립 전문학교의 높은 서열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됐다. 이런 순환 작용 역시 식민지 전문학교 체제의 서열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제6장. 입신출세를 위한 학교 선택과 극심한 입학 경쟁」중에서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 중에는 해방 후 정규 고등교육기관, 나아가 사립대학으로 승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중앙보육학교는 1948년에 중앙대학을 거쳐 1953년에 중앙대학교로 승격됐다. 숭의여학교 보모과는 1963년에 숭의보육학교로 재건되어 1978년 숭의여자전문대학을 거쳐 2012년에 숭의여자대학교로 승격됐다.

마찬가지로 상명고등기예학원은 1965년에 상명여자사범대학을 거쳐 1987년에 상명여자대학교로 승격됐다. 감리교회신학교는 1959년에 감리교신학대학을 거쳐 1993년에 감리교신학대학교로 승격됐다. 성결교회경성신학교는 1959년에 서울신학대학을 거쳐 1992년에 서울신학대학교로 승격됐다. 조선신학원은 1951년에 한국신학대학을 거쳐 1992년에 한신대학교로 승격됐다. 동아고등공업학원은 1948년에 한양공과대학을 거쳐 1959년에 한양대학교로 승격됐다. 즉,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는 해방 후 사립대학의 요람과 같은 역할도 했던 것이다.
---「제7장. 대안적 고등교육기관,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중에서

전문학교는 지역적으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전문학교는 경기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성과 그 부근에 몰려 있었다. 1925년 이전까지 전문학교는 모두 경기도(경성 포함)에 설립되어 있었으며, 1925년에는 전체 10교 중 9교, 1935년에는 전체 15교 중 12교, 1945년에는 전체 20교 중 13교가 경기도에 설립되어 있었다.
---「제8장. 그 시절에도 전문학교는 경성에 몰려 있었다」중에서

1944년 4월 20일에 광주의학전문학교와 함흥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됐다. [조선총독부 관보] 1944년 4월 13일자에 실린 ‘생도 모집 광고’를 보면 두 학교의 모집 인원은 각각 100명이었다. 같은 해에 두 학교의 입학 지원자는 합계 2,130명으로 평균 입학 경쟁률은 10.7:1이었으며, 1945년 2월에 함흥의학전문학교는 입학 지원자 800명으로 입학 경쟁률이 8.0:1, 광주의학전문학교는 입학 지원자 4,400명으로 입학 경쟁률이 44:1에 달했다.
---「제8장. 그 시절에도 전문학교는 경성에 몰려 있었다」중에서

전문학교 재학생이 내야 하는 비용이 매우 컸으므로 경제적으로 혜택받은 계층이 아니면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전문학교 재학생 부모의 직업을 살펴보자.
---「제9장. 개천에서 용 나도록」중에서

1937년에 손기정은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7월에 성재육영회의 급비생으로 선발됐다. 즉, 성재육영회는 손기정을 다른 급비생과 달리 학업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가 아니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이유로 선발했다. 다만, 이후 손기정은 총독부의 감시가 심해짐에 따라 같은 해 2학기에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메이지대학에 입학했다.
---「제9장. 개천에서 용 나도록」중에서

해방 후 전문학교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휴교 상태에 있던 전문학교들은 1945년 9월 28일에 미군정청이 중등 이상 학교에 대해 10월 1일부터 재개교를 허가하자 하나둘 다시 학교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2월 14일에 미군정청 학무국의 교육정책 자문 기구인 조선교육심의회는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임시 조치안〉에서 전문학교의 운영을 한시적으로만 허가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1946년 5월 20일에 문교부(학무국의 후신)는 다수의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켰다.
---「나가는 글.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연속과 단절」중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고착화된 서열 구조의 유사성이다.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서열 구조 안에서는 가장 꼭대기에 경성제국대학, 그 아래에 관립 전문학교, 그 아래에 사립 전문학교 그리고 마지막에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과 관립 전문학교는 통합되어 국립 서울대학교로 개편됐으며, 사립 전문학교와 몇몇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는 사립대학으로 승격됐다. 그럼에도 이전 시기의 고착화된 서열 구조는 서울대학교와 사립대학 간에 거의 그대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나가는 글.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연속과 단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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