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품질이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고상해야 하는가, 현란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엔 1차로 의사소통의 장벽이 없어 공동체 성원 누구나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연장이 된다면 일단 그 언어는 기본 품질을 갖춘 것이리라. 더 나아가 새로운 문물과 기술과 현상과 느낌을 마음껏 새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언어의 품질은 높다고 할 수 있으리라.
즉, 첫째는 수월화이고 둘째는 풍부화이다. 현재 한글문화연대는 수월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문제가 아직까지는 언어 인권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 수월화의 과제는 교육을 통해 성취되겠지만, 사회 차원에서 수월화는 외국어 남용을 줄이고 새로운 외국어 신조어를 바로 우리말로 바꾸는 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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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외국어 능력의 차이에 따라 생기는 언어 장벽을 아직 우리는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감수성은 최근 들어 상당히 높아졌다. 언어에 대한 인권 감수성에서도 ‘벙어리, 깜깜이, 김치녀’ 따위 차별어와 혐오 표현에 대한 비판은 쉽게 사회적 공감을 얻어간다. 하지만 공공영역에서 일어나는 외국어 남용을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제약으로, 의식하기 힘든 차별로, 그리고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사대주의 정서도 뿌리 깊지만, 그에 더해 능력주의의 폐해가 크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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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의 사회적 의미가 담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것을 묵과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불평등으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그러한 언어를 거부할 것인가? 사회의 위계질서를 정당화함으로써 권력에 더 큰 힘을 부여하는 언어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언어의 편에 설 것인가? 다수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하는 언어에 만족할 것인가, 소수자들의 희망과 좌절에 무감한 언어를 불편해하며 새로운 말의 길을 찾아갈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언어가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는 사회언어학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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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자유주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자본은 노동자의 언어, 감정, 주체성에 대한 통제를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Heller, 2010). 이런 의미에서 언어를 정치적 행위로 인식하는 국어운동은 단지 국어를 지킬 뿐 아니라 노동운동이나 자본주의적 착취와 파괴에 맞서는 다양한 움직임들과 연대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언어 행위가 안고 있는 당파성, 계급성, 정치성을 더 전면적으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언어 정책을 위한 화두로서의 인권 개념은 좀 더 진화할 여지를 아직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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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영미문화권에서 쉬운 영어를 추구하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고 뿌리가 깊다. 14세기 중세 영문학을 대표하는 『The Canterbury Tales(캔터베리 이야기)』의 ‘옥스퍼드 서생의 서시(The Clerk'’s Prologue)’편에는 여관 주인이 옥스퍼드 서생에게 ‘제발 간청컨대 우리가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번에는 쉽게 이야기해 주시오(Speketh so pleyn at this tyme, we yow preye, That we may understonde what ye seye)’ 라는 당부가 나온다(Cutts, 2009).
저자인 초서(Geoffrey Chaucer)는 사실 당대의 저명한 공직자이기도 했는데, 다른 작품 『The House of Fame(명예의 전당)』에서도 아래처럼 ‘어려운’ 언어를 피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할 것을 촉구한다(Wikipedia contributor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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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변화는 단순히 의사소통이라는 사회적 기능이나 효율성의 차원에서만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한 권력과 배제의 작동 차원에서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말의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단순히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말의 경계를 만듦으로써 내부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집단이익을 보호하고 독점하려는 행위는 결코 말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변화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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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적 과정을 결정짓는 공론장은 소수의 능력 있는 엘리트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복잡 사회에서는 많은 영역이 일반 대중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 언어와 지식이 있어야만 접근할 수 있게끔 특화되어 있기 마련이다. 아무나 의사가 될 수는 없으며 법률이나 금융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념을 따르자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문제들조차 소수의 엘리트만이 참여할 수 있는 토론과 결정 공간에 갇혀 있다. 여기서 이러한 폐쇄성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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