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친구」는, 형사가 된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소설 쓰기를 꿈꾸던 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던 그는 교사와 학우들의 물적·정신적 폭력에 의해 자신의 재능과 의지를 서서히 상실하게 된다. 주인공은 오랜 세월이 지난 그가 자신의 의지를 무참히 짓밟았던 폭력 교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 그 교사를 파멸로 몰고가는 발신인이 되어 나타난 동시에,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달함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교가 제창」은, 회사를 그만두고 노래방을 경영하면서 한국의 갖가지 여흥 풍속을 체험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조직 사회와 개인 사이의 권력 관계가 갖는 문제성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교가 제창, 사가 제창은 집단의 위계 질서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억압과 획일성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한글학자」에서 주인공은, 어머니의 말년을 함께 해준 노인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을 드나들던 중에 옛 제자인 최 군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최 군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노인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이야기의 내막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노인의 간절한 눈빛은, 노인의 맞은편 병상에 누워 있던 사내아이가 자신이 교정한 오자를 출판사에 전해달라고 한 부탁을 주인공이 져버린 것에 대한 질책이었던 것이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에서 주인공은 별거하고 있는 어린 딸을 위해 준비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이 자전거를 찾아 헤매면서 그는 어린 시절의 자전거 타기에 얽힌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는,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여 굴러갈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 아버지의 가르침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한다.
「끝이 없는 길」은 라디오 음악 프로를 진행하는 주인공과 구성 작가 명애의 과거가 하나의 노래를 통해 서로 조우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명애의 고향인 보길도로 가는 길을 동행하면서 해변에서 실종됐다는 명애의 외삼촌이 자신의 대학 시절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비밀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노래가 그들 둘의 삶에 공통적으로 녹아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래들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내밀한 사연들을 이처럼 끝없이 살아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세 사람」의 주인공은 한 사람은 귀순자, 한 사람은 일본인, 또 한 사람은 이곳에서 사업에 실패한 이인데, 이 소설은 이들 각각의 내면 세계와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양상을 그리고 있다.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처음으로 동행하게 된 이 세 사람은 한국의 역사적 도시들 중 하나인 수원의 화성에서 만나 유적지를 함께 관광한다. 이들의 시각이 교차되면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오늘날이 낯설게 그려진다.
「너와 나의 그림자」는 조선시대 문신인 신숙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맞아 지난 과거의 인생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하나하나 되새겨본다. 그러나 그가 이시애의 반란에 즈음하여 투옥되었을 때 그를 도와준 의금부 낭청 남용신이 환열로 비통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다. 신숙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역사의 흐름 뒤에 남게 되는 어두운 그늘과 그 안에 서린 피 그림자에 대한 성찰을 드러낸다.
「포구에서 온 편지」는 송미라는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보다 진지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는 그녀는, 잊고 지워서는 안되는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지우는 남자들의 세상을 향해 경종을 촉구하는 편지를 포구에서 띄운다.
「열 번째 계단」은 지하상가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아버지와 어린 딸의 이야기이다. 고단하고 궁핍한 삶의 어두운 국면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어린 딸의 티없는 희망은 아버지에게로 전해진다.
「다시 사랑할 순간·1」은, 주인 없는 고양이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친구에게 써 보내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다. 정염을 불태우며 미래를 설계하는 일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그녀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그와의 진정한 만남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사랑할 순간·2」의 남자 주인공은 사업을 부도 내고서 가족과 헤어져 노숙 생활을 겪은 끝에 뒤늦게 경제적 여유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상경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자동차 검문을 피해 정읍까지 달아나는 일이 생기고, 그 바람에 거기서 거행되는 한 시인을 추모하는 시비 제막식에 얼떨결에 참가하게 된다. 문인으로 행세하며 이 행사의 이면에 감춰진 거짓과 비리에 암묵적으로 동참하던 그는, 학창 시절에 펜팔로 교제하던 풋사랑의 여인이 불구가 된 몸으로 미술 학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세상을 향해 굳게 닫아두었던 문을 다시 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