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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라프로쉬망을 꿈꾸다

역사, 라프로쉬망을 꿈꾸다

: 문화사와 지성사에 대한 12편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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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92g | 152*224*30mm
ISBN13 9791156122135
ISBN10 115612213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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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화해 혹은 화친의 상태라는 함의를 지닌 ‘라프로쉬망rapprochement’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즉 역사학의 본질은 문학과 철학(윤리학), 예술과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들과 끊임없이 라프로쉬망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 p.8

19세기 이전까지 서양에서 역사학은 문학의 한 분야로 생각되었다. 고전고대 역사학의 특징은 크게 보아 수사적 역사 서술과 교훈적 역사 서술의 두 가지이다. 수사적 역사 서술이란 역사학을 연대기 수준에서 ‘문학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서술상의 기법을 의미한다. …… 교훈적 역사 서술이란 역사서를 하나의 정치지침서 혹은 윤리서로 보는 것이다.
--- p.21

엘리트 계급의 관심사가 곧 권력이며, 정치란 권력 쟁패의 장이고 또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시대를 통틀어 역사의 주류가 정치사 혹은 전쟁사라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26

독일 역사주의가 국가를 사회의 다른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위치로 격상시킨 것과는 달리, 아날학파는 전통적인 학문분과 간의 경계를 허물어 통합적 성격의 ‘인간과학’을 창출하려고 했다. 아날 역사가들은 경제학과 인문지리학을 역사의 범주 속에 끌어들였다. 이로써 역사 연구의 키워드가 정치에서 사회?경제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 p.28

미시사의 중요한 특징이 익명적 거대 집단과 평균적 개인의 존재 형태보다는 어떤 소규모 집단에 속하는 개개인의 이름과 그들 간의 관계를 추적하는 ‘실명적?집단전기학적 역사’, 종래의 지나치게 좁고 엄격한 실증의 방식보다는 보다 더 넓은 의미의 입증 방식을 포용하는 ‘가능성의 역사’, 딱딱하고 분석적인 문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의 전말을 말로 풀어나가는 듯한 ‘이야기로서의 역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31

서양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역사학과 문학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역사 서술이 문학의 일부이기를 거부한 때는 단지 19세기 랑케 이후 ‘이른바 ‘과학적’ 역사를 추구하던 시기뿐이었다. 하지만 역사학은 언제나 자연과학의 정밀성과 법칙성도, 문학/예술의 상상력과 미학도 공유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 p.36

알레싼드로 만초니는 1850년 역사와 역사소설에서의 글쓰기를 다룬 『역사소설론』을 발표했다. …… 만초니는 『역사소설론』 제1부에서 당시의 역사소설 비판을 둘로 나누었다. 첫째, 역사소설은 실재하는 것과 지어낸 것을 함께 버무려 넣음으로써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거꾸로, 역사소설이 오히려 사실과 허구를 지나치게 구분함으로써 작가의 의도가 이야기 속으로 잘 녹아들지 않고, 따라서 어떤 미적 감흥도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이 모든 비판은 역사소설이 본질적으로 “역사와 지어낸 것을 뒤섞어 놓은misti di storia e d’ invenzione” ‘허위적 장르의 일종una specie d’un genere falso’인 데서 연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p.43

역사가가 ‘사실fact’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사실’의 ‘조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역사 서술이란 비유하자면 조각 맞추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 미리 정해진 밑그림도 없을 뿐더러, 무언가 모양을 맞추어나갈 조각의 숫자도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만초니가 말한 ‘있을 법한 것’이 ‘추론’될 여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사실 경험 있는 역사가라면 어느 누구도 수집된 사실만으로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자신 있게 천명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 p.48

우리는 그 시대가 받아들이는 의미를 그 시대의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의 모습은 시간 속에서 바뀔 수 있다. 역사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다시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종래는 이 과정을 가리켜 역사를 ‘해석’한다고 말해왔다.
--- p.49

역사가라면 누구나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이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일 뿐이므로, 누구의 해석이 더 진실에 가까운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 얼마나 더 정확한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동료 역사가와 대중이 그 해석을 지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는 곧 역사학이 그 시대의 권력과 이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p.77

플라키우스의 『막데부르크 교회사』와 바로니우스의 『교회연대기』는 15세기 초 루터가 95개조를 내건 뒤 거의 100여 년에 걸친 유럽 종교 분쟁―동시에 정치 투쟁이기도 한―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 서술이었다. 그것은 역사 서술이 종교적 이념에 의해 어떤 식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양쪽의 역사가들은 모두가 자신만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또 그것을 ‘입증’하는 수많은 문서를 그 증거로 사용했지만, 입장을 달리하는 한 그러한 증거도 결정적인 것이 되기는 힘들었다.
--- p.89

『여러 민족들의 풍속 및 정신에 관한 에세이』의 지향점은 인류의 진보라는 계몽주의의 기본 테제가 세계의 여러 민족에게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었다. 볼테르는 책의 첫머리에서 당시의 역사서들과는 달리 프랑스가 아닌 고대 중국을 맨 먼저 다루고 있는데 …… 특히 그는 관용적 이신론의 모범으로 공자와 유교에 대해 커다란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마호메트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 p.93

계몽사관은 분명히 18세기를 관통한 주류 역사철학이었으나 동시에 경험적 사실에 의거하는 역사를 이성 중심적(데카르트적) 방법과 개념으로 재단하려는 내재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다. 진리가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면 이러한 방법을 적용할 수 없는 역사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진리’에 접근할 방도가 없다.
--- p.93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에게는 흔히 ‘근대 역사학의 비조鼻祖’란 존칭이 붙는다. 그 이유는 주로 그가 사실에 의거하여 이른바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의 역사를 복원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95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진 뒤, 그 대답으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해온 이 유명한 언명은 21세기 초입의 사학사적 전망에서 볼 때 두 가지 문제를 던진다. 첫째는 우리가 계속해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자각 없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마치 철학적 명제와도 같은 의문을 던져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대답으로 과연 ‘대화’라는 비유가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 p.100

역사가에는 세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이 진실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정한 역사를 쓰고 있다고 믿는 부류이다. ‘순진한’ 역사가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을 위해서 사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 부류이다. ‘노회한’ 역사가이다. 마지막은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한’ 역사가이다. 어떤 역사가가 좋은 역사가인가.
--- p.101

일기는 오랫동안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폄하되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는 역사학이 여전히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 진실을 확보하는 데는 사적 기록보다는 공적 기록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19세기 이래의 전통적이고 편협한 역사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 일기의 자유로움은 엘리트주의적―그래서 권력-위계적―문학과 역사학에 대한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 p.107

가계서의 범주에 머물렀던 일기가 개인의 자아 성찰이라는 현대적 특징으로 방향을 튼 시기는 보통 17세기 후반쯤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이처럼 새로운 경향을 주도한 것은 각별히 잉글랜드 청교도들이었다.
--- p.113

기원전 7세기, 에게해 레스보스섬에 한 여인이 있었다. 후세의 고대 작가들은 그녀가 탁월한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온갖 성적 추문에 휩싸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여성으로서 작품이 남아 있는 서양 고대 유일의 시인이며, ‘나’라는 주어로 시를 쓴 최초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또한 호메로스가 전하는 용맹한 전사들의 무용과 전우애가 아니라, 여성의 평화로운 욕망과 쾌락을 찬양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 p.132

서양 고대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경제적 독립과 섹슈얼리티의 주체성이라는 이상에 접근했을 수도 있는 여성의 유형은 그리스의 헤타이라hetaira와 르네상스기 특히 이탈리아의 코르티자나cortigiana였던 것처럼 보인다. 헤타이라는 (성적) 파트너라는 뜻의 그리스 말이며, 코르티자나는, 카스틸리오네가 쓴 유명한 책 이름처럼 이탈리아 궁정에서 비공식적으로 제후를 보필하고 조언하는 정신廷臣을 가리키는 코르티자노cortigiano의 여성형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달라서 대개 기예를 갖춘 고급 창녀를 의미했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사실 아주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각각 저급 창녀를 뜻하는 포르네porn? 및 메레트리체meretrice/푸타나puttana와 구별된다.
--- p.137

지성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던 헤타이라 프뤼네를 보자. 기원전 371년경에 태어난 그녀는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정부로,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 프뤼네는 어느 포세이돈 축제에서 아프로디테 역할을 맡았다. …… 이 바다의 축제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나신을 포세이돈에게 바친다는 의미였다. …… 이를 빌미로 그녀는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

그녀의 변호사 히페리데스는 그녀를 사람들 앞으로 돌려세운 뒤, 갑자기 그녀의 옷을 찢고 젖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때맞춰 히페리데스는 신이 내려준 것이 분명한 이런 아름다움이 신성을 더럽혔을 리가 만무하다고 항변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성과 동일시되었고, 신의 복수를 두려워한, 혹은 세속적으로 말해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배심원들은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 p.142

16세기 후반 로마를 ‘지배’했던 툴리아 다라고나가 바로 그러했다. …… 그녀는 음악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고 대화를 하는 데 있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든 학자들까지도 그녀에게 끌렸다고 한다. 그녀의 살롱은 1527년 ‘로마의 약탈’로 전대미문의 상처를 입은 후의 그 도시에서 지적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작가이자 출판인이었던 루도비코 도메니키의 전언에 따르면, 살롱에서의 대화는 상당히 진지하고 학문적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 p.145

툴리아의 대화편은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대부분의 이론이 여성 혐오적 기조 속에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육체적?감각적 경험을 폄하하고, 여성의 합리성을 부정하며, 여성을 오직 육체와 죄의 영역으로만 몰아넣는 당시의 플라톤적 혹은 종교적 교의에 도전하여, 여성과 남성 간의 사랑에서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욕구를 다 같이 인정하는 것만이 도덕적임을 천명한다. 그녀는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 간의 지적?성적 동등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p.147

〈최후의 심판〉이 모습을 드러낸 1540년대 중엽은 16세기 초와는 달리 이미 루터와 칼뱅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고, 동시에 이에 대응하는 반종교개혁 혹은 가톨릭 종교개혁의 보수적 분위기가 점점 힘을 더해가고 있었다. ……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1564년 초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문제의 그림에 덧칠하기로 결정되었다. 1994년 원형대로의 복원이 완료되기 전까지 우리는 덧칠 이전의 몇몇 모사품과 판화를 통해서 그 원형의 윤곽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 p.155

시인 아리오스토로부터 “군주의 채찍”이란 별칭까지 얻었던 범상치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아레티노는 〈최후의 심판〉이 공개된 수년 후, 그림의 내용과 형식을 맹비난하는 편지를 써서 미켈란젤로에게 보냈다. 그는 여기서 당시의 통상적인 예술적 관례에 의거해 이 작품이 시스티나 예배당이란 성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157

그는 먼저 〈최후의 심판〉의 디제뇨로 이어지는 미켈란젤로의 “발상inventione”을 라파엘로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비교하며 짤막한 찬사를 던진 뒤, 대뜸 그림의 “방종함licentia”?음란하다는 뜻의?을 지적하며 공격의 포문을 연다. 그는 가장 성스러워야 할 최후의 심판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그려놓았느냐고 비난하면서, 특히 그런 그림이 시스티나 예배당 같은 가장 깊숙한 성소에는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 p.181

17세기 전까지 모든 사람은 『헤르메스 서』를 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가 플라톤 이전의 아득한 옛 이집트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614년 칼뱅파 신학자 이작 카조봉이 15세기 이후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발전된 문헌학적 비판 방법을 사용하여 그 책이 기원후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위작’임을 ‘증명’했다. 『헤르메스 서』에 담겨 있던 플라톤적?성서적 요소들은 그것이 미리 예언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베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 p.197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Giulio Cesare Evola(1898~1974), 그는 누구인가? 움베르토 에코는 그를 비학秘學 내지는 비교秘敎를 추종하는 일종의 오컬트주의자로 간주하면서, 『신비주의의 전통』이나 『성배의 신비』 등 그의 이 방면 대표작들을 언급하고 있다. …… 에볼라가 파시즘 및 나치즘과 상당한 관련이 있었을 뿐 아니라, 문제의 『의정서』 이탈리아판을 재간하고 그 서문까지 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더 뒤의 일이었다.

나는 그제야 에코가 파시즘에 관한 최근의 한 에세이에서 에볼라를 가리켜, 왜 “성배의 전설과 『의정서』” 그리고 “연금술과 신성로마제국을 혼합”함으로써 “가장 존경받는 파시스트 심령 지도자들 중 하나”이자 “새로운 이탈리아 우파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원천”이 되었다고 말했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 p.218

그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공격하면서 이른바 ‘제3의 길’을 모색하던 파시즘 혹은 나치즘에 상당한 공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1930년 그는 친파시스트 잡지 『망루』를 창간했으며, 1934년부터는 로베르토 파리나치가 크레모나에서 발행하는 과격파 파시스트 일간지 『파시스트 정권』에 우파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하는 일종의 정치평론 면을 책임 편집했다.
--- p.224

1970~80년대 유럽 우파 테러리즘에 에볼라가 이용 담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발생 원인을 그의 사상에서 찾으려는 것은 결코 적절한 판단이라 하기 힘들다. 에볼라의 전통주의 사상은 여러 측면에서 파시즘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엘리트적 정신주의에 대한 일관된 강조가 대중을 포섭하지 않을 수 없는 파시스트당의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었다.
--- p.247

서양의 역사 속에서 도시civitas란 문명civilitas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 축도로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20세기 초에 쓴 〈도시〉(1911~13)라는 글에서 세계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오직 서양의 도시에서만 발견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서 자유도시Gemeinde=comune의 존재를 들었다.
--- p.253

도시 코무네가 콘타도에 대해 곡물 가격 통제정책을 사용한 직접적 동기는 무엇인가? …… 곡물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사실상 콘타도 주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얻어진 이익은 결국 도시민의 생계비를 저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모든 도시 정부의 최우선적 관심사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도시 생계비의 상승을 막는 일이었다. …… 도시 코무네의 곡물 통제가 ‘자유’의 신장과 반비례하는 현상은 바로 여기에 기인했다. 철저히 비농경적이었던 중세 도시의 자유는 이처럼 언제나 주변 농촌 지역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 p.261

13세기를 통하여 이탈리아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농노 해방 자체가 마티네스의 말대로 결코 ‘인도주의’ 정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 농노가 해방되었다는 말은 농노 개인이 즉시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봉건영주의 지배로부터 도시 코무네의 지배 아래로 들어왔음을 의미할 뿐.
--- p.262

지금까지 서양의 도시, 특히 중세 도시가 표방한 ‘자유’의 의미가 19세기 이후 지나치게 신화화되었으며, 이는 다시 동양의 도시 또는 동양의 사회 자체가 자유에 대한 관념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교우위적 관점 속에 흡수되어 광범위한 오리엔탈리즘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문제의식.
--- p.267

교황 무류설에 대한 거부를 통해 가톨릭 교리의 편협성을 비판했던 큉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슬람, 유대교, 불교 등 비그리스도교와의 대화가 세계 평화에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지구윤리 구상』이란 소책자에서, “지구윤리 없이는 생존이 없다”, “종교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없다”, “종교 대화가 없이는 종교 평화가 없다”는 세 모토로 자신의 주장을 간명하게 요약했다.
--- p.302

큉은 종교를, 헌팅턴은 문명을 화두로 삼았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이 두 개념은 거의 상호 치환될 수 있다. 종교란 교리만으로 이루어지는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전통이란 이름 아래 현재화된다. 또한 종교를 제외한 문명 역시 생각하기 힘들다. 종교는 문명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결국 종교와 문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 p.307

우리는 종래의 역사책에서 흔히 보는 ‘정복자 사관’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문명과 국가, 혹은 왕조의 “흥망” 사관이 되든지, 더 나아가면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복수 사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역사관에는 희망이 없다. 단지 힘과 권력의 흥망성쇠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역사 서술은 큰 중심들이 아니라 작은 중심들, 대규모의 문명이나 국가나 왕조 간의 정치적, 경제적 쟁패가 아니라 소규모의 지방 혹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 혼종, 교차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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