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네지프 카펜은 그 어떤 형태의 부자유도 참지 못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는 부자유에 대해서라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혐오감을 내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으로 18년간 독재자 아버지의 훈련을 견뎌 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용수철을 단단히 감는 것과 비슷했다. 언젠가 반드시 풀린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버텨 냈다.) 겨우 네 살이 될까 말까 했을 때 (이미 그때부터!) 그는 여름에 어머니와 가 정교사에게 산책을 나가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쇠사슬에 묶인 채 위협적으로 그에게 덤벼들려 하는 잡종 개나 개집 문턱에서 조용히 깽깽거리는 조그맣고 우울한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묶인 것을 풀어 자유롭게 놓아주기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면 단지 쓰다듬어 주고 뭔가 먹을 것이라도 주려 했던 것이다.
--- p. 15
난 소설을 쓸 거야, 예술에, 진정한 예술에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소설을 쓸 거라고 ? 하지만 소설은 형-이-상-학적이야! 이해하겠어? 그 썩을 ‘삶에 대한 이해’는 이제 됐어. 그런 건 재능 따위 하나도 없이 범속함을 엿보고 그따위를 좋다고 재창조하는 엿보기꾼들한테 남겨 주겠어.
--- p. 56
이 모든 것은 매우 과장되었다. 이미 거의 아무도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보기 드문 마니아들만이 소수의 제한된 모임 안에서 듣도 보도 못한 노력을 기울여 그 속물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 p. 67
저는 선생님처럼 예술의 중요성을 믿지 않아요. 선생님의 개념은 실제 그 개념이 뜻하는 것보다 높습니다 ? 관념으로서 스스로 자신보다 높아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그 관념들의 실제 기초의 가치를 과장하고 계시니까요. 저는 문학을 사랑하는데 그 이유는 문학 안에 저 자신의 삶보다 훨씬 풍성한 삶이 있기 때문이에요. 문학 안에는 현실에서 결단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된 삶이 들어 있어요. 그 응축의 대가로 비현실을 지불하는 거죠.
--- p. 104
모든 것의 위대함은 오직 예술 안에만 있어. 예술은 멧돼지가 접시를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들여다보이는 삶의 비밀이야, 이해하겠어, 뭔가 만질 수 있는 것이지 어떤 관념들의 체계가 아니라고.
--- pp. 114~5
텐기에르는 점점 더 무시무시하게, 점점 더 도달할 수 없게 연주했다 ? 그는 이 음악적으로 교양 없는 애송이가 사실은 적당한 청중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내 음악을 위해서는 원시인이거나 아니면 슈퍼초울트라 세련된 전문가여야 해 ? 중간은 악마에게나 가라지.” 사회 전체가 유감스럽게도 그 “중간”이었다.) 그는 즉흥연주를 하는 게 아니었다 ? 이것은 ‘신들의 해방’이라는 제목의 교향악 대서사시를 피아노곡으로 개작한 것으로 1년 전쯤 작곡했다. 곡 스케치들을 모아 놓은 폴더에 그는 백배나 더 무시무시한, 거의 연주 불가능한 ? 피아노곡으로서 그에게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닌 ? 전반적으로 연주 불가능한, 풀어낼 수 없는, 음악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는 작품들도 가지고 있었다. “연주불가능것들”이라고 그 자신이 이름 붙였고,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그런 스케치 중 하나가, 그가 직접 말한 표현에 따르자면 이미 “삐약거렸고”, 악보는 적대적인 표시들의 괴상한 패턴으로 천천히 불어났으며, 그 표시들은 그 안에 세상의 심연 속에 홀로 남은 개인적인 짐승의 형이상학적인 포효를 잠재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텐기에르는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유일하게 그에게 충실한 가축의 뚜껑을 쾅 덮었다. 짐승 같고 형이상학적인 밑바닥까지 뒤흔들린, 뭔가 형체 없는 인간 반죽처럼 으깨져 버린 게네지프에게 다가갔다. 의기양양하게, 짐승같이 말했다.
--- pp. 118~9
“…그리고 내게 약속해야 한다, 예술가가 되는 것만은 절대로 결단코 시도조차 해 보지 않겠다고. 알겠니?”
--- p. 123
“형태야.” 그는 반복했다 “형태 그 자체, 존재의 비밀을 직접 표현하는 형태! 그 뒤엔 단지 어둠뿐이야. 이걸 이해하기에는 관념이 모자라. 철학은 이미 끝났어. 비밀리에 원인론이나 파헤치고 있을 뿐이지. 공식적으로 철학은 이제 대학에 학과도 없어. 다만 형태만이 아직도 뭔가 표현하는 거야.”
--- pp. 127~8
“그걸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받아들여 낭비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 왜냐하면 넌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할 테니까 ? 오로지 괴상함이 죽은 관념들의 균사가 되어 너를 조각조각 뒤덮을 거다 ? 이미 그렇게 돼 버린 사람을 내가 보여 주지 ? 여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걸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해서는 안 돼 ? 심지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안 그러면 예술에 빠져 버릴 테니까, 날 보면 그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 너도 알겠지. 점점 더 이상한 방식으로 난 이 모든 것을 갖고 싶고, 그걸 조절하기 위해 불가능성을 겹겹이 쌓고 있어. 그렇지만 이 짐승의 탐욕은 채울 수가 없어 ? 그 어떤 것도 충분치가 않아. 그러고 이런 순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드카나 아니면 뭔가 더 나쁜 것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그런 뒤에는 이미 방법이 없어, 계속 가야만 하고, 제정신을 잃을 때까지 그 안에서 몸부림쳐야만 하지.”
“그런데 광기란 뭐죠?”
“고전적인 정의를 원하나? 현실과 내면의 상태가 합치되지 못한 채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주어진 환경에서 안전하다고 받아들여진 기준을 넘어서는 거지.”
“그럼 선생님도 역시 광인이군요? 선생님 음악은 위험하고 그 때문에 선생님은 인정받지 못하는 거예요.”
--- pp. 128~9
‘우리는 모두 죄수들이야, 자기 내면과 이 지구 상에 갇힌.’ 게네지프는 불분명하게 생각했다.
--- p. 137
지금 그는 마치 이제 막 시작된, 미칠 듯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누군가 중간에 뚝 끊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어떤 사람인지조차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의 눈앞에 어떤 구멍이, 바닥 없는, 그러나 좁고 불편한 구멍이 입을 벌렸다. 발밑에서 세상이 마치 물로 씻어 낸 듯 사라졌다. 그는 그 심연 위에 몸을 기울인 채 매달려 있었 다. 그러나 어디로부터 몸을 기울인 것인가? 그 심연은 공간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그 무지는 동시에 각성 이후의 상태로부터 완전히 달라진 의식의 정점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프치오는 그 구멍 안으로 날아들어 갔고, 계속 날아들어 가다가 여전히 루지미에쥬의 숲길에서 마치 눈 속에 파묻힌 것처럼 갑자기 멈추었다.
‘내가 어디 있었던 걸까 ? 맙소사 ? 어디 있었지?’
--- p. 140
그렇다 ? 그냥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그보다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커다란, 정말 커다란 만족이다. 그것을 통해 모든 일이 얼마나 단순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쉬워지고, 기름이 배어들고 윤활유가 발리고 정신적으로 더러워지는지 ? 그저 배설물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부르르르….
--- p. 153
분명히 말하는데 유일하게 확실한 건 내 사랑하는 기호들과 거기에서 나온 모든 것뿐이오, 수학과 한발 더 나아가 공학과 그리고 모든 것, 모든 것! 나머지는 불확실성의 현현일 뿐이오. 기호는 깨끗하지만 삶은 더럽고 지저분한 가정으로 덮여 있소.
--- p. 173
그 형이상학에서 내려오시오, 나는 버텨 낼 수가 없으니까.
--- p.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