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캘리포니아에서 내린 나는 인생을 바꿀 여자를 만나려는 참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치열한 경쟁과 역경에 용감히 맞서며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내 운명의 여인을 쟁취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안젤라로, 사진을 통해 나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공항 게이트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며(공항 보안 검사는 몇 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망설임을 느꼈다. 심장의 쿵쾅거리는 소리는 내 귀에 들릴 정도였고, 그녀의 계피향 향수 냄새가 내 후각을 온통 채웠다. 우리는 인사의 표시로 손을 잡았는데, 그 순간 우리 사이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은 처음에는 수천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시작된 불꽃으로, 상상 속의 세계에서 활활 타오른 바로 그 불꽃이었다.
안젤라와 나는 순전히 전자 신호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엘렌시아(Elanthia)라는 세계에서 만났다. 나는 라이쓰라는 마법사였고, 안젤라는 카오티라는 이름의 엘프 흑마녀였다. 엘렌시아는 젬스톤(Gemstone)이란 게임의 무대였는데, 젬스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험과 격렬한 낭만, 검이 부딪치는 대결에 이끌려 모여드는 소셜게임이다. 이 게임은 지니(GEnie)라는 온라인 서비스상에서 플레이됐는데, 지니는 90년대의 소셜 네트워크(이 용어는 10년이 지난 후에야 통용됐지만) 중 하나였다.
안젤라와 나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게임 비즈니스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느꼈고 이 느낌을 행동에 옮겨서, 레전드 오브 퓨처 패스트(Legends of Future Past)란 게임을 개발해 인터넷과 컴퓨서브에 출시했다. 이 게임은 몇 개의 상을 받았고, 이 게임을 통해 여러 명의 개발자가 게임 개발자 경력을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젬스톤과 레전드 오브 퓨처 패스트를 플레이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게임의 손자뻘 되는 게임들을 수백만 명이 즐긴다. 기술은 변화됐지만, 게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게임은 수백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며, 게임 제작 기술은 인류의 문명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짚고 넘어가기
초기 온라인 게임의 혼돈스러운 시기부터 현재까지, 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내, 외부 양쪽 분야에서 여러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행운을 잡았다. 각각의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과 기술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각기 다른 측면을 깨우칠 수 있었다. 이프라이즈란 회사에서는 위키의 선조격인 웹사이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인간에게는 서로 상호작용하고 정보를 나누고 싶어하는 타고난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이머DNA는 게이머를 위한 소셜 네트워크였는데, 안젤라와 나 같은 경험을 겪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와 안젤라는 시대를 앞서 나간 셈이었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은 이 흔적을 바탕으로 변화해나갔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나는 원래 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온라인 게임으로 세상을 즐겁게 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안젤라와 함께 새롭게 설립했던 회사인 디스럽터 빔에서, 나는 게임 개발 이상의 뭔가를 꿈꾸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이 게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게임의 특별한 매력을 승화시켜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고 재미있는 곳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게임 묘약'을 만들고 싶다.
알고 보니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2010년 어느 즈음에 게임화(gamification)라는 흥미로운 신종 용어가 출현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특정 요소를 뽑아서, 각종 비즈니스 또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에 살짝 적용해 비즈니스를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저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웹사이트에 순위표(leaderboard)를 추가할 수도 있고, 배지를 수여해서 유저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게임화에 관한 많은 논의에는 뭔가가 빠져 있다.
안젤라와 나는 순위표, 배지 시스템, 포인트 시스템 때문에 만난 게 아니다. 우리는 감정과 상상력 때문에 만났다. 우리가 게임 속에서 공유했던 경험은 강력한 감정, 꿈과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포인트는 중요하다. 배지도 도움이 될 것이다. 순위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게임 디자인의 도구일 뿐이다. 어떤 게임이 성공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 책은 소셜게임에 관한 책이다. 사람들이 함께 플레이하는 그런 게임 말이다. 이 책은 여러분을 주인공으로 하는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러킺이 하는 일에 몇 가지 게임의 마법을 적용해 비즈니스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순위표, 포인트, 배지 같은 시스템은 역시 중요하기에 다루고 넘어가겠다. 또한 나는 인간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이런 경험의 전달 수단으로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최첨단에 설 수 있게 됐는지 설명하면서, 뭔가에 재미를 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비즈니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화, 스토리텔링,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등을 설명하겠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몇 가지 요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유저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컴퓨터 스크린상에 몇몇 요소가 조합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로 고객을 인도하는 출입구로 생각할 수 있다.
자, 이제 여행을 시작해보자.---저자 서문 중에서
검색창에 몇 글자만 타이핑하면 원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에 무지란 지식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우리가 어떠한 주장에 대해 갖는 믿음의 강도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의 강도에 비례해야 한다고 믿는다.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함에도 자신의 주관적인 선입견 때문에 또는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어떤 주장을 강하게 믿는 것이 무지다. 또한 자신의 믿음과 대립되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믿음에 맞춰 객관적인 근거를 왜곡하는 것도 무지의 한 측면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게임에 대한 일부 왜곡된 시선도 그런 무지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러 가지 사실이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게임은 우리 시대 그리고 향후에 가장 중요한 미디어라는 점이다. 과거 기성 세대에게 준거가 되는 미디어가 영화나 방송이었다면, 게임은 산업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문화적 영향력에 있어서도, 그런 전통 미디어를 빠른 속도로 추월해나가고 있으며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이제 게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서술된 바와 같이 게임은 인간의 깊은 본성에 강력히 호소하기 때문에, 그토록 강렬한 것이며,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이제는 사회적인 미디어로 발전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게임의 강력한 에너지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데 활용해보자는 취지에서 게임화(gamification)라는 새로운 흐름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국내의 기성 세대는 말초적 재미를 제공하는 유해 미디어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깝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래 핵심 미디어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잠재력을 긍정적 사회 에너지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시작돼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 책은 구체적으로는 소셜게임 개발 및 운영에 대한 실무 지식에서부터, 포괄적으로는 심리학, 사회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왜 그토록 게임이 우리를 사로잡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고자 시도했다. 또한 게임의 강력한 힘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응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많은 착안점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소셜게임이나 게임을 업으로 삼는 분들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핵심 미디어인 게임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나도 국내 게임 관련 서적을 많이 접해봤지만, 기존에 국내에서 번역된 게임 관련 서적 중 가장 방대하고,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저자가 좀 더 간결 명료하게 서술했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번역하면서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했으며, 오랫동안 게임을 업으로 삼아왔던 나에게도 새로운 배움과 자극의 기회가 됐다.
SNS나 소셜게임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계속 신종 용어가 생겨나다 보니, 대응되는 적절한 국어 표현이 없는 경우가 많아 번역이 쉽지 않았다. 이 경우 원어 발음 그대로 표시할지, 역자의 재량으로 한글화할 것인지는 개인의 역자가 해결하기엔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또한 'engagement', 'flow', 'immersion' 이런 용어의 경우에는 각각 대응되는 적절한 국어 표현이 없어, 모두 '몰입'이라고 번역하자니 세 단어의 구별이 안 되고, 각자 다른 단어로 표시하자니 의미가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고, 용어 부분에서 활발한 공론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게임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