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가 해변에 내려앉은 섬
2002년 여름, 나는 오키나와 본도에서 멀리 남쪽에 떨어진 다케토미지마(竹富島)라는 섬에서 열흘 동안 혼자 지냈다. 이 섬 곳곳에 마련된 우타키(御嶽)라는 민속신앙의 성지(聖地)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우타키는 한국의 서낭당과 비슷한 공간으로 오키나와의 민속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스러운 신앙 공간이다. 일본에서 민속신앙의 성지는 대개 여성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는 이른바 금녀(禁女)의 공간임에 비해, 오키나와의 우타키는 반대로 남성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는 금남(禁男)의 공간이다.
다케토미지마는 오키나와 본도에서 멀리 남쪽에 위치한 야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에 속한다. 정확한 행정상의 주소는 오키나와 현(沖?縣) 야에야마 군(八重山郡) 다케토미 정(竹富町)에 속한다. 다케토미지마에 가려면 한국에서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오키나와 본도에 있는 나하(那覇) 공항을 경유한다. 나하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이시가키지마(石垣島)에 있는 공항에 도착한다.
다케토미지마는 이시가키지마(石垣島)에서 서남쪽으로 약 6.5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이시가키지마에서 쾌속선으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섬의 주위는 9.15 킬로미터, 면적은 5.42 킬로미터, 낮고 평탄한 융기산호초로 이루어져 있다. 관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2020년 4월 현재 인구가 358명에 불과하다.
섬 주위 해변에는 고운 모래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그 모래 알갱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모래는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해변에 내려앉기라도 한 듯, 햇볕을 받으면 별처럼 반짝인다. 섬사람들은 백사장에 깔린 이 모래를 퍼서 곱게 물을 들인 다음 작은 유리병에 담아서 관광 상품을 만들었다. 그 모래 덕분에 이 섬은 일본 내에서 다케토미지마라는 본래의 이름보다도 ‘별모래의 섬(星砂の島)’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동화 속의 섬마을
이 섬은 2005년 일본에서 상영된 「니라이카나이로부터의 편지(ニライカナイからの手紙)」라는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영화를 찍은 곳답게 섬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여자배우 아오이 유우(蒼井優)를 앞세워, 2008년에 「아오이 유우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였다. 그런데 실은 일본어 제목에 들어간 ‘니라이카나이’란 말에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제목 속의 ‘니라이카나이’란 전통적으로 오키나와에서 바다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는 신들의 세계이다. 또한 사람이 죽은 후에 가게 된다고 전해지는 타계이다.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온갖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유토피아 세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오키나와 사람들의 타계관, 생사관, 자연관 등이 반영된 신화적 세계이다. 그 때문에 니라이카나이는 오키나와의 설화 및 민속신앙에 자주 등장하며 오키나와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배가 섬의 선착장에 도착하여 조금 걷다가 마을을 바라보니 돌담 위로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지붕 위에는 오키나와 말로 ‘시사(シ-サ-)’라 부르는 사자를 닮은 괴수 석상이 얹혀 있다. 이 시사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오키나와의 상징물이다. 일본 본토의 신사 입구 양쪽에 놓여 있는 이른바 ‘고마이누(?犬)’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수호신 역할을 한다. 참고로 ‘고마이누(?犬)’는 ‘고마이누(高麗犬)’로 표기하기도 한다. 오키나와의 시사는 지붕 위만이 아니라 집의 현관 양쪽에 놓아두기도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를 가면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전통가옥이 밀집한 골목길 곳곳에 하얀 잔돌을 깔아놓았다. 이 하얀 잔돌과 붉은 기와지붕이 대조를 이루어 무척 인상적이다. 실제로 와서 보니, 이 섬이 일본에서 ‘중요전통건조물보존지구(重要傳統建造物保存地區)’로 지정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섬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잔돌이 깔린 골목길을 빗자루로 쓰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골목 사이사이로 꽃으로 치장한 달구지를 물소가 끌고 돌아다닌다. 이 물소 달구지는 섬사람들이 공을 들인 관광 상품 중의 하나이다.
외지에서 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 달구지에 앉아서 섬을 둘러본다. 이 때 달구지를 끄는 마을 사람이 산신(三線)이라는 오키나와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섬에 전하는 민요를 들려준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의식한 관광 상품이라고는 하지만, 이 얼마나 목가적인 풍경인가. 이 섬을 거닐다보면 마치 속세에서 벗어난 동화의 세계와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섬이야말로 영화 「아오이 유우의 편지」 제목에 나오는 니라이카나이의 세계가 아닌가하고 착각이 들 정도이다.
섬의 ‘추장’을 만나다
2002년 당시 나는 숙소로 마을의 빈집 하나를 빌려서 사용하였다. 이 빈집은 이곳이 고향인 오키나와국제대학 가리마타 게이치(狩?惠一) 교수의 부친께서 소개해 주었다. 운이 아주 좋았던 셈이다. 가리마타 교수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분이다.
일본 각지에 흩어져 사는 다케토미지마 출신 사람들과 연락하여 ‘전국다케토미지마문화협회(全國竹富島文化協會)’라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는가 하면, 이 협회의 명의로 일 년에 한 번씩 섬을 소개하는 종합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소식지 수준이 아니다. 섬의 역사, 전통문화, 민속, 풍물, 인물 등을 골고루 소개하는, 민속학의 민속지나 인류학의 민족지(ethnography)에 버금가는 본격적인 문화잡지이다. 그 잡지의 이름이 다름 아닌 [별모래의 섬(星砂の島)]이다. 나도 가리마타 교수의 권유로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제 1장 오키나와 다케토미지마의 다나두이 마쓰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