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집에 가고 있었는데 예린이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사과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말이 헛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 상황에서는 그 선택이 나한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린이의 입장에서는 회피하는 것으로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언니한테까지 물어보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생각했다.
“언니, 그냥 사과를 받아줄 걸 그랬나? 언니가 예린이라면 어떤 느낌이 들것 같아?”
“너 말대로 ‘쟤는 나랑 사과하기 싫은가?’라는 생각도 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다려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짜? 그러면 내가 내일 먼저 말 걸어볼까?”
“네가 준비됐을 때 그렇게 해.”
내가 준비됐을 때 먼저 말을 걸어보라는 언니의 말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예린이의 반응은 어떨지. 그렇게 생각해낸 게 바로 서로의 일기장을 보는 것이었다. 서로의 일기장을 보면서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는지 이해하면, 좀 더 화해가 쉬울 것 같았다. 예린이에게 물어봤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막상 예린이의 일기장을 받으니 엄청 떨렸다. ‘일기장에 나에 대한 험담이 쓰여 있으면 어떡하지? ’, ‘예린이는 사실 나랑 안 친해지고 싶은 거 아닐까?’ 같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 일기장을 봐야지 좀 더 쉽게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나는 놀이공원에서 산 일기장에 예전의 일기를 다 옮겨 적었다.
하지만 예린이는 일기를 안 쓰다가 쓴 건지, 아니면 옮겨쓰지 않았는지 몇 장 되지 않았다.
맨 첫 번째 장은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에게 나랑 같이 있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을 했던 것도 쓰여 있었다. 그리고 나랑 놀이기구를 같이 타면서 내가 마니또일 것 같다고 짐작하는 글도 있었다. 그때부터 들켰다는 것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랑 다시 친해지고 싶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그 외에도 나에게 자꾸 말이 헛나가려고 했지만 참았던 것도 일기로 쓰여 있었다.
나보다 더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은 예린이가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예린이가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화해하지도, 싸우지도 않은 상태로 흐지부지됐을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잇에 예린이에게 고맙다는 짧은 글을 썼다.
TO. 예린
예린아, 안녕? 나 은아야. 지금 이 쪽지를 볼 때쯤이면, 우리가 이미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 뒤겠지? 짧게나마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해. 작년에도 내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었고, 이번에도 대화를 미뤘던 건 나잖아? 근데 이렇게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먼저 다가와서 사과해줘서 고마워. 너의 사과와 나의 해결 방법이 만나, 우리에게 맞는 화해 방식을 찾은 것 같아. 우리 앞으로는 항상 웃으며 서로를 이해하며 지냈으면 좋겠어.
먼저 손 내밀어줘서 고맙고, 우리 그 손 꼭 잡고 계속 함께하자!
FROM. 은아
예린이의 일기장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런데, 예린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궁금했다.
다음 날, 오늘은 조금 일찍 와서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예린이었다. 예린이와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일기장을 다시 돌려받았다. 일기장을 바꿔 본 느낌도 말했다. 내가 다시 나의 일기 내용을 보려고 책을 펴는 순간 끄트머리에 빼곡한 글씨가 보였다.
예린이의 편지였다. 나와 통한 것일까?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보니 마음이 찡해지면서 환하게 밝아진 것 같았다. 예린이도 내 쪽지를 봤는지 입가에 미소가 피어있었다. 예린이를 보고 있던 나는 예린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활짝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일기장 때문에 말이 헛나오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내면, 그리고 은아의 내면에 쌓여 있었던 게 조금씩 나오게 된 것 같다. 내 일기장이 이제부터 또 어떤 나를 발견하고 이해할지 궁금해진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