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역사적 대결을 벌였다. 배구, 테니스 등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볼 수 있는 5전 3선승제의 승부였다. 그런데 한 쪽이 먼저 3번을 이겨도 5번을 모두 두는 특이한 조건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이세돌 9단이 완승을 거둔다는 분위기였으며, 이세돌 9단도 자신이 5:0 또는 4:1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반대로 과학자들은 알파고가 이길 수도 있다는 예상이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알파고의 4:1 승리였다.
알파고의 실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이세돌 9단과의 첫 판을 이기고 나서 알파고 연구팀의 책임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알파고의 승리를 ‘달 착륙’에 비유하며 감격해했다(김의중, 2016). 알파고가 강한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알파고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기사라고 해도 몇 분은 걸려야 할 수 있는 복잡한 ‘수읽기’를 몇 초 이내에 해낼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계산이 빨라도 계산기의 속도와 정확성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과 유사하다.
둘째, 알파고는 바둑에 대한 직관 또는 창의성을 갖고 있다(Bostrom et al, 2017).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정확해도 바둑의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서는 바둑에 대한 직관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컴퓨터의 자체 학습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통해 알파고는 단순히 계산만 빠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 바둑에 대한 직관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바둑 격언이 있다. 바둑은 고도의 정신력 싸움이기 때문에 상대를 의식하는 순간, 승부에 영향을 받는다. 상대가 약하다고 생각하면 ‘경적필패(輕敵必敗)’의 가능성이 생기고,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움츠려들다 패하기 쉽다. 반전무인이란 바둑판 앞에 아무도 없다고 여기는 승부에 초연한 자세를 의미한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수양을 해야 반전무인의 경지에 이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알파고는 위에 말한 계산력과 직관, 게다가 반전무인의 경지에까지 올라 있다. 알파고는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둑과 언어에는 공통점이 많다. 여기에서는 언어라는 일반적인 말보다는 영어로 한정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바둑과 영어를 둘 다 열심히 공부해 본 필자는 늘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바둑을 잘 두기 위해서, 바둑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두 질문에 대한 답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휘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를 문법적으로 맞게 배열하고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공부에서 어휘가 중요한 것처럼, 바둑 공부에서는 정석(定石)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석이란 대국 초반에 흑과 백이 최선의 결과로 만들어낸 다양한 모양의 결과물을 말한다. 영어의 어휘와 같이, 바둑의 정석도 많이 알면 알수록 좋지만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어휘를 사용하면 어색하거나 뜻이 통하지 않는 문장이 되듯이, 상황에 맞지 않는 정석을 선택하면 초반의 주도권을 읽게 되고 바둑을 이길 확률도 낮아진다.
둘째, 영어 문장의 수는 바둑의 경우의 수와 마찬가지로 무한하다. 영어의 모든 문장을 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영어에 대한 감이 필요하다. 이는 앞서 말한 바둑에 직관과 창의성이 필요한 이유와 일치한다. 모르는 단어들이 들어 있는 처음 보는 문장도 영어 원어민은 대략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문장의 전후 맥락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에 대한 감이 있기 때문에 문장 전체의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 바둑에서도 유사하다. 바둑판에 펼쳐지는 무한한 가능성 중에 처음 보는 수를 접해도 프로기사들은 바둑에 대학 직관이 있어서 효율적인 대응 수단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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