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되짚어보면, 그리고 오늘날 위기에 빠진 세계를 보면, 이 책이 제기한 세 가지 쟁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해줄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 당대 및 오늘날에 저발전 사회와 핵심 자본주의 국가의 관계, 이 두 종류의 사회 간 사회적 구조의 차이, 이러한 차이가 혁명의 전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소농에 기반한 아일랜드의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과 자본주의적 잠식에 직면해 벌어지는 러시아 공동체 촌락의 투쟁을 서유럽에서 확대되고 있는 사회주의적 노동계급 운동의 동맹으로서 바라본다.
--- p.14
이 연구는 마르크스가 당대에는 대부분 자본주의의 주변부였던 사회에 관해 쓴 글에 집중한다. 특히 나는 『뉴욕 트리뷴』 기사와 같이 비교적 덜 알려진 마르크스의 글을 다룰 것이다. 또한 비서구사회 및 전자본주의 사회를 다룬, 방대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의 1879~1882년 노트를 검토할 것인데, 이 중 일부는 아직 어떠한 언어로도 출판되지 않았으나 몇 년 이내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2)』을 통해 이용 가능해질 것이다(이는 부록에서 논의할 것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알제리와 같이 마르크스가 연구한 이러한 비서구사회 및 전자본주의 사회 일부는 식민지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근대성에 부분적으로 포함되었다.
--- p.41
나는 유럽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회적·역사적 발전의 다양성과 민족주의, 인종, 종족의 특수성을 아우르기에 충분히 열려 있고 폭넓은 자본 및 계급 개념을 자신의 사회 비판에 포함하는 글로벌 이론가로서 마르크스를 바라보는 21세기의 이해로 옮겨가는 것에 찬성한다. 따라서 나는 마르크스를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역사와 사회에 관해 훨씬 더 복선적인 입장을 취한 이론가, 유럽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사회의 구체적인 사회적 실체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사람, 계급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와 종족을 고려한 이론가로 제시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마르크스가 사회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을 추상적 보편이 아니라, 변증법적 총체성 내의 보편성과 특수성이 상호작용하는,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회적 전망으로 가득 채워진 것으로 여긴 이론가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 p.50
이 지점까지, 마르크스의 기사는 「인도에서의 영국의 지배」와 유사한 개념적 구조를 보여주는데, 그는 영국 식민주의의 전반적인 진보성에 찬성한다. 이 장의 도입부에서 내가 말했듯, 이러한 논증은 그가 『공산당 선언』 서두에서 서유럽과 북미의 자본주의 성취에 관해 논의한 내용과 유사하다. 하지만 산업화된 세계에 관한 논의에서와는 달리 인도에 대해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근대화 내부로부터 솟구치는 깊은 모순을 지적하지 않았다.
--- p.79
마르크스에게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봉건적 잔재가 가장 많이 제거된 국가였다. 프랑스는 민주주의 항쟁이, 그리고 1848년 이후에는 노동계급의 항쟁이 가장 뿌리 깊었던 곳이었다. 독일은 헤겔주의 관념론에 대한 비판적 전유로부터 혁명적 철학의 근대적 형태가 탄생한 곳이었다.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도전받지 않는 전제주의가 권력을 유지하는 곳이자, 유럽 전역의 반혁명적 세력으로서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곳이었다.
--- p.114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1861~1865년 미국 남북전쟁은 미국과 영국 모두의 백인 노동에게 노예제에 맞서는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었던, 세기의 주요한 인간해방 전쟁 중 하나였다. 『자본』 1867년 서문에서 그는 남북전쟁이 다가올 사회주의 혁명의 전조였다고 썼다. 그는 남북전쟁을 정치 지형뿐만 아니라 계급 및 소유관계도 바꾼 사회혁명으로 여겼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북부에 대한 지지를 좌파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으로 보면서도, 에이브러햄 링컨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반대하는 급진적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옹호했다.
--- p.177
아일랜드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술들, 특히 1870년 전후의 저술들은 폴란드와 미국 남북전쟁 관련 저술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계급, 민족주의, 인종, 종족이 직조된 정점이다. 아일랜드는 진보적 민족주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아일랜드를 영국과 세계 자본에 대한 반대를 유발하는 중요한 원천으로 보았다. 동시에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영국 내 하위 프롤레타리아를 형성하면서 계급과 종족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공했다.
--- p.241
마르크스가 비서구사회에 관한 논의, 민족주의, 인종 및 종족에 관한 논의를 자신의 정치적 저작과 저널리즘 저작에 국한시켰더라면, 이러한 논의는 그의 핵심적인 지적 프로젝트와 그다지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장에서 이러한 관심이 『요강』에서 『자본』에 이르는 마르크스의 주요한 경제학 비판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더욱이 나는 비서구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가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이, 『자본』 제1권,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어판(1872~ 1875)(이 책은 마르크스 자신이 출간을 준비한 최후의 판이다)의 논의의 전반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p.307
1871년 파리 코뮌이 패배한 후, 마르크스는 서구와 북미 이외 지역에서 나타난 자본에 대한 저항 형태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만년이던 1872~1883년에 걸쳐 이처럼 비서구 농업사회로 선회한 것은 그의 저작에서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은 새로운 선회를 나타내고 있으며, 1850년대 후반 이후 마르크스 사상의 점진적 진화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요소는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프랑스어판 『자본』에 도입된 변화에서 발견된다. 두 번째 요소는, 이 장에서 논의되듯이, 비서구사회와 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1879~1882년의 발췌노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30만 단어 이상에 달하는 여러 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아직 어느 언어로도 출간되지 않은 것도 있다.
--- p.381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론적 모델과 핵심적인 모순을 매우 선견지명 있는 방법으로 정리했으며, 지금까지도 『공산당 선언』의 서술의 힘에 필적하는 것은 없을 정도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그들은 사회 진보에 대해 암묵적으로 그리고 문제가 있는 단선적 개념을 채택했다. 전자본주의 사회, 특히 중국은 종족중심적 술어로 “가장 야만적인” 사회로 특징지어졌고, 새롭고 역동적인 사회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침투되고 근대화되는 운명에 있었다. 『뉴욕 트리뷴』에 기고한 1853년의 논문에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을 인도로 확장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당시 영국 식민주의의 진보적 특징으로 보고 있었던 것을 칭찬하고, 인도의 카스트가 지배하는 “불변의” 전통적인 사회 질서에는 반대했다.
--- p.452
분명히 마르크스는 포스트모던적 의미에서 차이의 철학자(philosopher of difference)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통일체, 즉 자본에 대한 비판이 마르크스의 지적 기획 전체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심성이 일의성 또는 배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의 성숙한 사회 이론은 총체성의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되었으며, 그 개념은 단지 특수성이나 차이에 대한 광범위한 관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인종, 종족, 민족과 같은 특수한 것들도 총체성에 대한 규정요인으로 삼는다.
--- p.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