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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푸른사상 시선-15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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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54쪽 | 228g | 128*205*9mm
ISBN13 9791130818924
ISBN10 113081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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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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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아직 뱀처럼 냉혈한 뜨락에
봄빛 날개 파닥인다

놀란 수선화는 사냥하는 사자들처럼
군데군데 몸을 웅크리고 앉아
굽어보는 내 동공을 과녁 삼아
늘씬한 화살을 쏘아 올린다

햇빛이 화살촉의 푸른 녹을
위에서 아래로
한 겹 두 겹 벗겨낼 때마다
정수리는 샛노래지고
껍질을 벗어날 때마다 맞닿는
꽃샘바람 세상은 아픔 덩어리지만
화개에 벌써 달려온 녀석은
속적삼 휘날리며 나풀나풀 춤추고
제자리에서 화려한 날을 꿈꾸는 자,
동그랗게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봄빛 날개 파닥이는 뜨락에
줄기는 꽃봉오리를 향해 말달리고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

-------------------------------------------

환대

우리 부모는 전라도 담양에 터 잡고 평생 일곱 마지기 논농사를 짓다가 나뭇가지도 흔들지 않고 훌쩍 날아간 농부새였다
그곳 삼간초가 둥지엔 항상 떠나지 않은 세 가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유리로 두른 호롱불 등잔을 처마에 내걸고 막 지은 밥 한 그릇을 안방 아랫목에 묻어두는 의식으로 매일 밤을 맞이하였고
하늘빛 보자기로 싼 광목 이불이 터주대감 노릇 하며 늘 대나무 시렁 위에서 묵언 수행하고 있었다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등잔을
허기를 달랠 수 있게
밥그릇을
추위를 녹일 수 있게
이불을

미리 마련해두어라, 어머니는 나에게 지시한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당신처럼 성심으로 모시라고 가르친 적도 없었다
우러나 그렇게 살았을 뿐, 그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을 뿐, 아무 바람의 그물도 나에게 치지 않았다

-------------------------------------------



수직은

곧장 수평이 된다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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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정원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흙에 닿으면서, 대지에 그의 몸을 내리면서, ‘수평’이 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60년 동안 보아왔지만, 알지 못한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이내 수평이 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위대한 발견을 한다. 그런데 시인 김정원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비가 수평이 되었을 때 “수평은 동무가 참 많다”는 결구를 빚어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하늘에서 저마다 따로따로 내리던 빗방울 하나하나가 땅에, 흙의 대지에 이르는 것을 보고 친구가, “동무가 참 많다”고 노래할 때 김정원은 미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사상시(Gedankengedicht)의 정점에 이른 듯하다.
- 김준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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