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인고의 시간을 버티면서 생각도 많고 감정이 짙은 나로서는 괴로움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내가 믿었던 친구, 나를 믿어준 친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그 많은 인연을 모두 헤아리고 신경 쓰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그만큼 나도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마음은 무산되기 일쑤였고, 이제는 너무 지쳐버렸다. 내 삶의 가치가 그들에게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데에 치우치다 보면, 정작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나의 색을 잊는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 누가 봐도 좋고 편안한 사람. 그들에게선 색이 없는 무채색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쿨한 사람은 파란색, 부정적인 사람은 검은색, 평화로운 사람은 초록색, 열정적이고 사나운 사람을 빨간색이라 친다면 내 색깔은 빨강에 가깝지 않았을까. 물처럼 누구나 동요될 수 있는 무채색이 되기보다는 나만의 색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비록 혼자가 어울리는 색의 사람이 될지라도.
모래밭의 모습은 갈색 또는 흑색에 가깝다. 수많은 모래알이 한데 뭉쳐서 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가운데서 군데군데 빛이 나는 모래알들도 보이지만 결국은 그래봤자 그저 수많은 모래알일 뿐이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을 홀로 독립적으로 마주한 모래알 하나는 금빛으로 빛난다. 그러니 혼자여도 괜찮다. 어쩌면, 혼자일 때 우리는 더 빛이 날지도 모른다.
--- p.17, 「보잘 것 없는 모래알」 중에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날이 있어요. ‘내 인생은 왜 이럴까’부터 시작해서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일도 많고 해결이 어려운 일도 있고 잘 해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를 너무 옥죄는 느낌이 드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거나 혹은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선택권이 다시 내게 주어진다면 아마도 변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보기 전엔 몰랐잖아요, 잘못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었더라면 후회라는 감정이 이리도 짙게 남지는 않았을 테니. 그러니 행여 과거가 조금 후회되거나 부끄럽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잘못이 있다고 해도, 스스로 자책감이 든다고 하더라도, 원망스럽고 미운 존재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잘못됐을 수도 있으니 지난날의 잘못을 너무 자책하거나 누군가를 짙게 원망하며 불행한 삶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내가 삶을 조금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남은 인생을 참회하며 다시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야죠. 사람들은 내 잘못에 대해 냉정할 테지만,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의 삶에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 의한 나를 위한 한 번뿐인 삶이니까요.
--- p.26, 「무너지는 하루」 중에서
내 마음만 시끄럽지, 세상은 고요하다. 내 마음은 요동치지만, 세상엔 한 줄 변함도 없이 적막만이 흐를 뿐이다. 모든 걱정과 문제는 내 안에 있다. 괴로움을 자처하는 것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도, 삶에 대한 불안도, 어떠한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고 나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즐기도록 하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가끔 꺼내 보는 서랍 속의 낡은 앨범처럼 그렇게 묻어두었다가, 꺼내 보았다가 반복하며 살아가는 연민을 가져보도록 하자.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만큼 내가 강인한 사람이라면 고통을 즐기자. 애써 웃어 보일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고문들은 매섭게 내치면서 살아가자. 아무것도 나아질 것 없는 스스로의 고뇌들. 그건 채찍질이 아니라 희망 고문일 뿐이다.
희생이라는 말은 내 것을 기꺼이 내어줬을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내 것을 잃으면서까지 상대를 위해줄 때 진정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였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 누
구나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했을 때 비로소 그걸 용서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였다.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이 있다면,
조금 어려운 희생을 해보기를.
다소 힘겨운 용서를 해보기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힘들다면 이젠 그만 용서하기로 하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은 이제 그만 나를 위해 내려놓아 주기를.
--- p.58, 「누구랑 싸우는 걸까」 중에서
결혼식엔 몇 사람이나 올까, 나는 내 친구들과 농담 삼아 결혼 얘기를 할 때면 결혼식에 부를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그 수를 헤아리곤 한다. 사실, 어렵게 헤아릴 것도 없었다. 난 어릴 때부터 주변에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있어도 꿋꿋이 만나곤 했었다. 다른 내 주변 아이들이 다들 그 아이를 싫어하고, “왜 만나냐”, “만나지 마”라는 얘기를 줄곧 해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꿋꿋이 만났었다. 그만큼 난, 누가 뭐래도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반면에 누가 뭐래도 내가 싫어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연들은 가차없이 끊어내고 살아왔다.
덕분에 난, 지금도 꽤 손에 꼽을 정도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어릴때 함께한 친구였지만 지금은 안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한 시절의 추억을 함께했던 깊은 사이였지만 내 말실수 한 번으로 언젠가부터 나를 차단한 사람도 있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불편한 사람들이 생긴다. 서로 좋아했던 사이였다거나, 싸웠다거나, 때로는 그 친구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같이 험담했는데 어느새 그 친구가 욕하던 친구를 만나고 있다거나. 살아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 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필수 불가분하게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그 주변에 또는 그와 엮인 사람들에게 어느새 나는 불편스러운 존재가 됐을지도 모른다.
관계란 어떤 의미에서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것이라서 학교에서도,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관계가 많다. 그렇다 보니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불편을 주거나 민폐가 되는 일이 꽤 자리할 것이다.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그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사람들은 나를 대할 때도, 그쪽에서 나를 바라볼 때도, 여러 의미로 나는 참 불편스러운 존재일 지도 모르겠지.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도 나와 연락하고, 늘 나를 챙겨주며, 나를 만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불편할 텐데. 때로는 그들을 만나며 내 눈치를 살필 것이고, 나를 만나며 그들의 시선을 느끼 곤 할 텐데. 참 미안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물론 내 결혼식엔 많은 친구들이 오지는 않겠지만, 모진 눈치와 시선을 안고 나를 만나러 와 준 진정한 내 사람들 하나만 되더라도 내 결혼식은 충분히 빛 날 것이다. 수많은 모래알 속에서 받는 축하는 빛이 나지 않을 테지만, 하나의 보석이 해주는 축하는 태양 아래서 가장 빛날 테니까. 앞으로도 난 꿋꿋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살 것이며, 그 언젠가 내가 받은 만큼, 내 마음만큼 내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갈 것이다.
--- p.121, 「내 결혼식엔 몇 사람이나 올까」 중에서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을 깨고 들어오지 않는다. 상황이 아무리 나아져도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정적인 사상과 염세적인 관념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원하던 일을 이루었거나 갑자기 횡재를 한다고 해도 이내 곧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부정적 인생관에 시달릴 확률이 높게 된다. 생각이라는 건 도랑과 같아서 이미 길이 난 곳으로 생각이 자꾸 흐르는 것이 반복된다고 하였다.
상황이 좋지 않았고, 이미 좌절을 맛보았으니 나는 늘 나를 의심하고, 남을 의심했고, 상황을 우선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누군가는 긍정이 합리화이고 자기 위로밖엔 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부정적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물에 젖은 천에 퍼지는 물감과 같아서 아주 작은 한방울만 떨어뜨려도 금세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졌고, 그 부정의 얼룩을 지우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부정적인 삶은 절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도 쉽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어려워 긍정적인 결과
를 도출해내기 더 어려울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말의 안장 위에 앉아 말의 엉덩이를 때려주는 일과 같았다. 잠시라도 쉬면 떨어질 것처럼 불안했고, 계속해서 엉덩이를 쳐줘야만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계속 반복해서 채찍질해야만 했다. 긍정적인 생각이 어렵다면,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자. 그냥 생각 없이 배고프면 밥을 먹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듣고싶은 음악을 듣고,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를 보라. 이룰 수 없으면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목표가 있다면 모든 잡념은 버리고 열심히 말고 부지런히 해나가자. 열심히는 때로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들기도 하니까. 남들과 속도를 맞추지 말고 나 자신의 속도에 맞추자. 돈과 행운은 남이 가져다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나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가져다줄 수 없으니.
--- p.211, 「행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