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은 현대미술의 무럭무럭 자라는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큰 도시에 온갖 나라의 딜러들이 모여들어 컨벤션센터, 부둣가 지역, 임시 구조물, 혹은 호텔에 마련된 값비싼 부스들을 차지하고 전속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아트바젤이 마이애미비치를 선택한 것은 십수 년 전, 부유한 마이애미의 컬렉터들이 아트바젤 본부의 이벤트장을 찾기 시작하면서였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인근 지역에는 스무 개 이상의 아트페어가 생겨났고, 수많은 파티와 팝업 숍 그리고 리본 커팅 행사들로 구성된 지금의 ‘마이애미 아트위크’가 탄생했다. 사우스비치의 풍경은 달라졌다기보다는 한층 더 강렬해졌다. 허풍, 성형수술, 파티 그리고 셀레브리티가 넘쳐났다. -19쪽
큐레이팅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면서 또한 기묘하게 신체화되고도 탈신체화된 현상으로 존재한다. 큐레이터는 이제 예술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세계에서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같은 소수의 큐레이터들이 자신의 기관을 지배하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 사람으로서 미디어와 문화를 오가며 자신의 역할을 펼친다. 예술세계의 외부에서 큐레이팅은 막강하고도 확산된 형태로 존재한다. 전시를 넘어 뮤직페스티벌이나 부티크에서 수행되는 셀레브리티에 의한 큐레이팅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큐레이팅’하기에 이르렀고, 우리의 일상과 소비가 일어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 단어가 통용되게 되었다. 큐레이터는 그 모든 곳에 어울릴 수도 있고, 또 때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큐레이터의 최종 승리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큐레이터의 비참하고도 화려한 몰락을 보고 있는 것일까? -23쪽
오브리스트가 인터뷰와 그것의 보급에 쏟는 집중력은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비교된다. 하지만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자란 워홀의 부모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노동자였으며, 그 자신은 맨해튼에 ‘팩토리’라는 스튜디오를 만들어 미국의 산업 체계의 모순을 드러내고 패러디했다. 이 재치 있는 이름의 스튜디오에서 워홀은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의 스크린 테스트 영상들은 주류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스타 제작 과정을 흉내 낸 것이었고, 그가 의도적으로 따분하게 만든 초기 영화는 스크린 테스트의 확장판인 것처럼 준비된 시나리오 없이 만들어졌다. 그의 8시간짜리 영화 엠파이어Empire(1964)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어 시간을 연장한 것으로, 평범한 현대를 찬양하면서 할리우드 대작을 조롱하는 작품이다. 카미유 파글리아Camille Paglia가 『반짝이는 이미지Glittering Images』에서 지적하다시피, 그 유명한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번개 같은 속도로 작품을 찍어내는 데 목적을 둔 “직조물 디자인을 위한 상업적 공정이었다. -31쪽
중세의 큐레이트curate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교회에 남아 있는 직위를 뜻한다. 큐레이트라는 명칭은 로마의 큐레이터나 프로쿠라토르에서와 같이 명목직이나 명예직을 뜻하지는 않는다. 큐레이트는 성직 체계 속에서 교구 사제라는 중요한 직위에 놓인다. 이 인물은 ‘영혼의 치유’를 책임지는데, 그 개념이 탄생한 것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6세기 신학서 『목회율Liber Regulae Pastoralis』, 오늘날엔 『Pastoral Care』로 더 잘 알려진 책에서였다. 여기서는 자신이 맡은 교구 안에서 실천되어야 할 사제의 임무와 “영혼의 치유”가 개괄적으로 설명된다. 오늘날에는 큐레이터의 역할과 책임이 불명확하고 파편적인데, 흥미롭게도 큐레이트 혹은 교구 사제들 역시 설교를 하는 것부터 병자를 간호하기까지 온갖 직무를 수행해야 했다. 여기서 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쿠라cura의 뜻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 따르면 쿠라에는 세 가지 주요 의미가 있었는데, “돌봄care, 관심concern, 책임responsibility”이었다. 그렇다면 ‘영혼의 치유’는 큐레이트나 교구 사제가 사전적 의미대로 영혼을 치료한다기보다는 그것을 돌본다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서는 후기 중세영어에 이르러서야 ‘cure’에 치료적 의미의 치유가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옆에서 보살핌을 뜻하는 돌봄과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보다 강한 의미의 치유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48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