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큐레이터는 항상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할까? 불가능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 p.25, 얀 페어보어트, 「Control I’m Here」 중에서
“나는 엔터테인먼트에 교육을 끼워 넣는 것은, 문화 전문가의 등장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교육은 지식 및 지식획득의 경제 내부에서 소비자나 관객에게 학생 또는 다른 학생들을 구경하는 관중의 역할만 맡긴다.” (…) “왜 우리가 진실을 전문가에게 맡기려 하는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제도로서 예술이 문화 자본의 이익으로부터 혜택을 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술과 교육은 교육학적 전환 이전부터 이미 손발이 맞는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동시대 미술에서 교육학적 전환이 예술의 즐거움과 문화 자본의 필요성, 관리주의와의 공모 및 전문성 문화에의 투자를 강화하고 강조하기 위한 방법은 아닌지 확실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
--- p.59, 데이브 비치, 「베버의 교훈: 예술, 교육학, 관리주의」 중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모델, 즉 단순한 제도적 실천이 아닌 ‘제도화하는’ 실천, 규율보다는 해방적 교육학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해방적 교육학은 사람들이 예술과 전시, 대화자, 상황, 다른 참여자를 마주하면서 예술 안팎에서의 경험을 포괄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인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작용해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제도화를 통해 끝이나 해결 없이 대화와 논의가 계속되면서 제기된 문제는 단순화 또는 배제되기보다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교육적’이거나 ‘교육학적’인 전환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교육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 p.79, 사이먼 샤이크,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기능에 관한 조사)」 중에서
예술의 생산 외에도 예술학교는 예술을 작품 구매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특권층의 ‘상품’으로 지정하거나, 단순히 서비스에 불과한 지위로 문화·예술을 비하하는 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 유통과 자기조직의 대안적 방식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하다. 예술학교·아카데미·대학의 자기평가와 그 교육 과정 및 교수법에서 목표는 ‘교육, 정보, 엔터테인먼트’의 문화적 권한을 가지고, 이를 비판적 사고와 혁신적 (반응)행동을 통해 새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 p.109, 우테 메타 바우어, 「교육, 정보, 엔터테인먼트」 중에서
영화와 정치에 대한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의 명언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교육적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보다 ‘교육학적으로’ 프로젝트나 전시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프로젝트나 전시가 교육으로부터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 게다가 교육학적 환경에서의 발언의 선행이 줄어들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정보의 풍부함이나 상징적 미술 시장을 우선시하는 측면에서 교육의 수익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일도 줄어들어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경험과 만남의 구현에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
--- p.192, 페이오 아기레, 「혁신을 동반한 교육」 중에서
성공한 예술가들이 교육 시스템에서 지식과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모순은 종종 생긴다. 하지만 시스템은 자신의 존재를 이어 나가기 위한 정당화 수단으로 이런 예술가들을 확보한다.
--- p.346, 찰스 에셔, 「테이블로 시작하기…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