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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2년 03월 10일 |
|---|---|
| 쪽수, 무게, 크기 | 342쪽 | 512g | 153*224*17mm |
| ISBN13 | 9791190526623 |
| ISBN10 | 119052662X |
이방원
: 박충훈 역사장편소설
박충훈 저
|
도서출판도화
|
2022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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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는 방번, 방석 두 아들을 깨우고 간단한 짐을 챙겨 큰집으로 갔다. 두 집 식구는 일곱인데 말은 두 필이었다. 방번은 일곱 살, 방석은 여섯 살, 경신은 아홉 살, 경선은 일곱 살이었다. 방원은 여섯 식구를 말에 태웠다. 한 씨는 경선이, 지화는 방석이를 안고 네 사람이 말에 타고, 경신이와 방번이는 조랑말에 태웠다. 방원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경마잡이가 되어 두 말의 고삐를 잡고 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일곱 식구는 하루종일 오십 리도 못가서 날이 저물었다. 여름이라 춥지는 않으니 숲속 개천가에 이슬막이 천막을 치고, 준비해온 주먹밥을 먹고 잠을 자야 했다.
방원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정몽주가 뒤따랐다. 방안은 비어 있었는데, 방 한가운데 연상이 놓여 있었다. 방원이 상좌를 권하고 따라 앉았다.
방원은 마주 앉은 정몽주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눈길이 마주친 정몽주는 흠칫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방원이 자란 뒤에 이토록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보기도 처음이었지만, 그런 눈길을 받아보기도 처음이었다. 뭇사람들이 이방원의 눈빛에는 함부로 범접 못 할 위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뒤에 때때로 방원의 눈빛을 눈여겨보았지만, 그 눈빛은 위엄이 아니라 살기라고 보았던 터였다. 누구든 거슬리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는 살기. 정몽주는 지금 마주친 방원의 눈빛이 폐부를 찌르는 살기로 보았다.
방원은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리끝이 쭈뼛했다.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간적 정도전과 남은을 죽이게 되었다는 흥분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이숙번을 이렇게 믿어도 되는 것인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던 아버지는 어찌 되었으며, 어린 세자를 끼고 구중궁궐에 들어앉아 모사를 꾸미는 늙은 환관 김사행과 조순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입안이 바작바작 타고 있었다.
이틀 뒤인 11월 13일 이른 아침, 추동 정안군 사저에 임금이 타는 연과 왕후가 타는 연이 당도했다. 준비하고 기다리던 정안군과 부인 민 씨는 각각 연에 올라 대궐로 향했다. 호위군관 여섯이 말을 타고 앞장서 행차를 인도하였고 상궁과 나인들이 뒤를 따랐다. 초겨울 아침은 싸아하니 맑고 청명했다. 백성들이 연도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행차를 구경했다. 이윽고 수창궁에 입궁한 새 임금은 정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만조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백관들은 천천세를 부르며 경축했다. 마침내 조선조 제3대 임금에 즉위한 정안군 이방원은 춘추 34세였다. 즉위식을 끝낸 임금은 즉위 유지를 나라에 반포했다. 유지를 반포한 임금은 즉시 체제를 세워 교지를 내렸다.
임금은 눈을 감았고 중신들은 숨을 죽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에 마침내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사직이 복된다’ 하였다. 세자가 패만하여 이미 내쳤으니 다시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이로다. 어진 이를 두고 말한다면 효령대군은 자질이 미약하고 또한 성질이 심히 곧아서 유동성이 없다. 반면에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였다. 또한 중국의 사신을 접할 때에도 신채와 언어동작이 두루 예에 부합하고, 사신을 접대함에도 주도를 알아 술을 적당히 마실 줄 알아 취하지 않는다. 반면에 효령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니 그 또한 군주의 자질에 미치지 못함이로다. 이에 충녕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과인은 충녕대군으로 세자를 정하겠노라.”
태종의 강력한 왕권에도 불구하고 7, 8년이 지난 뒤부터는 권부의 알력과 소위 왕자의 난으로 인한 일부 부작용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왕자의 난에 희생된 유족들이 꿈틀대고 있었으며, 이들이 외척과 훈신들에 부합하여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임금의 처남인 무질과 무구 형제의 세력은 훈신세력을 압도하였고, 개국공신이며 정난공신 이숙번은 사사건건 왕권에 개입하고 도전했다. 태종은 이때부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대에서는 날뛰는 외척과 훈신들 세력을 그런대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사후 세자가 보위에 올랐을 때는 젊은 임금의 외숙이 되는 외척의 세력과 개국공신, 정난공신들의 권력에 의하여 국정 상황에 엄청난 변수가 올 수 있음을 내다보았다. 국정에 미숙한 젊은 임금의 왕권에 도전할 엄청난 권력과 막강한 세력의 횡포! 경험 없이 친정을 펴는 임금이 과연 이들 수구세력을 제압하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
세종 4년(1422년) 5월 10일, 태상왕이 연화방 신궁에서 훙하였다. 춘추가 56세였으며, 재위 18년에 상왕으로 있기를 4년이었다. 임금이 연화방 신궁에 납시어 발 벗고 머리를 풀어 발상을 하였다. 백관이 소복과 검정 사모에 검정 각대를 띠고 연화궁에 들어와 지정한 자리에 나아갔다. 통찬(나라의 제사 때 홀기를 따라 의식을 진행시키는 임시 벼슬)이 ‘곡하라!’ 하면, 백관은 열다섯 번 소리 내어 곡을 한다. 통찬이 ‘사배하라!’ 하면 백관은 네 번 절한다. 백관이 동반(東班: 문관)과 서반(西班: 무관)으로 나누어 꿇어앉으면, 반수가 명단을 읽어 빈전에 고한다.
발상 의식을 끝내고 통찬이 문무백관을 인도하여 빈전을 나오는데, 백관의 슬픈 곡소리가 연화궁을 울리었다. 백관들이 모두 섧게 울어 비록 노복이라 할지라도 따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태상왕과 중신들의 관계는 군신 관계를 떠나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라를 건국한 동지였고, 왕자의 난을 두 번이나 겪으며 보위에 오르게 한 혈맹관계였다. 이들은 건국 초기의 혼란기를 겪으며 즉위한 임금과 함께 건국의 기반을 반석 위에 올리고자 30여 년간 노심초사한 동지적 믿음이 군신 관계를 초월했었다.
방원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정몽주가 뒤따랐다. 방안은 비어 있었는데, 방 한가운데 연상이 놓여 있었다. 방원이 상좌를 권하고 따라 앉았다.
방원은 마주 앉은 정몽주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눈길이 마주친 정몽주는 흠칫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방원이 자란 뒤에 이토록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보기도 처음이었지만, 그런 눈길을 받아보기도 처음이었다. 뭇사람들이 이방원의 눈빛에는 함부로 범접 못 할 위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뒤에 때때로 방원의 눈빛을 눈여겨보았지만, 그 눈빛은 위엄이 아니라 살기라고 보았던 터였다. 누구든 거슬리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는 살기. 정몽주는 지금 마주친 방원의 눈빛이 폐부를 찌르는 살기로 보았다.
방원은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리끝이 쭈뼛했다.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간적 정도전과 남은을 죽이게 되었다는 흥분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이숙번을 이렇게 믿어도 되는 것인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던 아버지는 어찌 되었으며, 어린 세자를 끼고 구중궁궐에 들어앉아 모사를 꾸미는 늙은 환관 김사행과 조순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입안이 바작바작 타고 있었다.
이틀 뒤인 11월 13일 이른 아침, 추동 정안군 사저에 임금이 타는 연과 왕후가 타는 연이 당도했다. 준비하고 기다리던 정안군과 부인 민 씨는 각각 연에 올라 대궐로 향했다. 호위군관 여섯이 말을 타고 앞장서 행차를 인도하였고 상궁과 나인들이 뒤를 따랐다. 초겨울 아침은 싸아하니 맑고 청명했다. 백성들이 연도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행차를 구경했다. 이윽고 수창궁에 입궁한 새 임금은 정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만조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백관들은 천천세를 부르며 경축했다. 마침내 조선조 제3대 임금에 즉위한 정안군 이방원은 춘추 34세였다. 즉위식을 끝낸 임금은 즉위 유지를 나라에 반포했다. 유지를 반포한 임금은 즉시 체제를 세워 교지를 내렸다.
임금은 눈을 감았고 중신들은 숨을 죽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에 마침내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사직이 복된다’ 하였다. 세자가 패만하여 이미 내쳤으니 다시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이로다. 어진 이를 두고 말한다면 효령대군은 자질이 미약하고 또한 성질이 심히 곧아서 유동성이 없다. 반면에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였다. 또한 중국의 사신을 접할 때에도 신채와 언어동작이 두루 예에 부합하고, 사신을 접대함에도 주도를 알아 술을 적당히 마실 줄 알아 취하지 않는다. 반면에 효령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니 그 또한 군주의 자질에 미치지 못함이로다. 이에 충녕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과인은 충녕대군으로 세자를 정하겠노라.”
태종의 강력한 왕권에도 불구하고 7, 8년이 지난 뒤부터는 권부의 알력과 소위 왕자의 난으로 인한 일부 부작용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왕자의 난에 희생된 유족들이 꿈틀대고 있었으며, 이들이 외척과 훈신들에 부합하여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임금의 처남인 무질과 무구 형제의 세력은 훈신세력을 압도하였고, 개국공신이며 정난공신 이숙번은 사사건건 왕권에 개입하고 도전했다. 태종은 이때부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대에서는 날뛰는 외척과 훈신들 세력을 그런대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사후 세자가 보위에 올랐을 때는 젊은 임금의 외숙이 되는 외척의 세력과 개국공신, 정난공신들의 권력에 의하여 국정 상황에 엄청난 변수가 올 수 있음을 내다보았다. 국정에 미숙한 젊은 임금의 왕권에 도전할 엄청난 권력과 막강한 세력의 횡포! 경험 없이 친정을 펴는 임금이 과연 이들 수구세력을 제압하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
세종 4년(1422년) 5월 10일, 태상왕이 연화방 신궁에서 훙하였다. 춘추가 56세였으며, 재위 18년에 상왕으로 있기를 4년이었다. 임금이 연화방 신궁에 납시어 발 벗고 머리를 풀어 발상을 하였다. 백관이 소복과 검정 사모에 검정 각대를 띠고 연화궁에 들어와 지정한 자리에 나아갔다. 통찬(나라의 제사 때 홀기를 따라 의식을 진행시키는 임시 벼슬)이 ‘곡하라!’ 하면, 백관은 열다섯 번 소리 내어 곡을 한다. 통찬이 ‘사배하라!’ 하면 백관은 네 번 절한다. 백관이 동반(東班: 문관)과 서반(西班: 무관)으로 나누어 꿇어앉으면, 반수가 명단을 읽어 빈전에 고한다.
발상 의식을 끝내고 통찬이 문무백관을 인도하여 빈전을 나오는데, 백관의 슬픈 곡소리가 연화궁을 울리었다. 백관들이 모두 섧게 울어 비록 노복이라 할지라도 따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태상왕과 중신들의 관계는 군신 관계를 떠나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라를 건국한 동지였고, 왕자의 난을 두 번이나 겪으며 보위에 오르게 한 혈맹관계였다. 이들은 건국 초기의 혼란기를 겪으며 즉위한 임금과 함께 건국의 기반을 반석 위에 올리고자 30여 년간 노심초사한 동지적 믿음이 군신 관계를 초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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