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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2년 02월 28일 |
|---|---|
| 판형 | 양장? |
| 쪽수, 무게, 크기 | 346쪽 | 458g | 140*196*21mm |
| ISBN13 | 9791190526685 |
| ISBN10 | 1190526689 |
서른살 목화
[ 양장 ]
김다경 저
|
도서출판도화
|
2022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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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숨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혹독하고 힘든 일인지, 무섭도록 절절하게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던지, 미장원으로 달려가면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일이 년 동안 취직시험은 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일백 장 남짓 자소서를 썼지만, 시험은 열 번도 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취직을 하겠다고 알바 인생을 살았다. 그 암담했던 시절을 생각하니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시원 임대료를 내고 생필품을 사고 나면 한 달의 절반은 라면으로 때웠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친척 아저씨의 슈퍼에서 무작정 일을 거들었다. 숙식을 제공받는 것 외에는 임금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슈퍼에서 일하다 보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레이어 외에 영어, 중국어, 힌디어 등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민 외에도 중국계, 인도계 등 다민족이 모여 사는 국가라 자연스럽게 서너 개의 언어는 구사할 줄 알았다. TV에서도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방송이 진행되었다. 말레이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 주로 영어를 사용했다. 그녀는 영어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골프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가량 되었을 때였다.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난 뒤 잔에 커피를 내린 다음 디저트 코너로 가서 무얼 먹을까, 생각하며 케이크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커피에는 이 케이크가 잘 어울립니다.”
뜻밖에도 영어 발음이 매끄럽게 들렸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의 음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흰 옷차림의 사내가 서 있다. 목화는 그의 추천대로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올린 뒤 자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실내 등이 꺼지며 퉁탕! 퉁탕! 귀를 찢을듯한 굉음이 머리 위에서 폭발하듯 들려왔다.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니 천정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어두운 하늘에서 별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펑! 펑! 폭발음이 터질 때마다 별꽃 무리가 수줍게 떨리면서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목화는 폭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뱉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왕하오의 가슴에 안겨 있다. 목화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암흑과 같은 어둠 속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타악기의 연주는 사라지고 폭죽 소리와 관광객들의 감탄사가 어둠 속에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졌다. 퉁탕! 퉁탕 탕!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올 때마다 폭죽이 터진다. 화려한 불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왕하오가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친구들이 결혼하거나 취직할 때 그녀는 말레이시아로 왔다. 그때 그녀는 사랑, 결혼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 나라에 와서 비록 월급은 적지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목화는 자신이 유학 온 셈 치자고 생각했다. 유학을 왔으니 돈은 적게 버는 게 맞아. 그러니 영어만은 확실하게 배운 다음 귀국하는 거야. 그래야 억울하지 않지.
지나간 이십 대와 시작의 삼십 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일까? 여전히 혼자인 것은 같고, 다른 것은 직업이 조금 안정되어 있다는 것일까?
요즘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왕하오와 함께 있을 때면 그의 선한 눈빛이 마냥 좋았다. 자밀과 운동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여전했다.
대학 일학년 때 과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그녀는 남자 부근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뒤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가 원할 때면 금세 몸이 굳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어서 헤어졌다. 졸업 후 알바를 하다가 처지가 비슷한 알바생을 만나 서로 감싸주다가 애정으로 발전했다. 그가 경호였다. 그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절정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서로의 가난이 그들을 묶어주는 것 같았다. 취업이 되지 않다 보니 이별을 말하지 않았을 뿐 지루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가난한 그들에게는 사랑보다 취직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한식은 왜?”
그녀는 이 분위기를 농담으로 바꿀 요량으로 던진 말이었다.
“난 모카 공주의 요리사니까. 넌 따로 요리를 배울 필욘 없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금방 결혼하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화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모카! 싸랑해, I love you. 사야 신따 무(Saya cinta mu)…….”
사랑한다는 말…… 이성 사이에는 이미 사라져야 할 박물관 언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고 싶지 않았던 말, 아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말. 오늘, 그 말을 왕하오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목화는 생애 처음 듣는 소리처럼 진실하게 들렸다. 아득히 먼 옛날 사람들이 주고받으며 행복해 했던 말.
“나도 사랑해.”
목화는 그의 사랑에 그녀의 사랑을 부었다.
목화는 샤워를 끝낸 뒤 거울 앞에 서서 퍼렇게 멍든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고생만 하고 살아온 엄마의 슬픈 침묵이 가슴을 도려낸 듯 아팠다. 그러나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유 중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행복에 있지 않았을까.
살기 위한 변신은 이것으로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넌 뭐든 잘 해낼 거야. 목화니까.’
목화는 거울 속의 그녀를 향해 힘주어 말했다.
상처가 많으면 무뎌진다고, 그 말은 사실일까? 무엇하나 똑 부러진 것 없이 감성적 사고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전과는 다른 여자로 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이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말레이시아는 꿈속에서 잠시 다녀왔을 뿐이라고, 그녀는 모든 것을 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도 왕하오가 그리웠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친척 아저씨의 슈퍼에서 무작정 일을 거들었다. 숙식을 제공받는 것 외에는 임금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슈퍼에서 일하다 보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레이어 외에 영어, 중국어, 힌디어 등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민 외에도 중국계, 인도계 등 다민족이 모여 사는 국가라 자연스럽게 서너 개의 언어는 구사할 줄 알았다. TV에서도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방송이 진행되었다. 말레이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 주로 영어를 사용했다. 그녀는 영어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골프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가량 되었을 때였다.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난 뒤 잔에 커피를 내린 다음 디저트 코너로 가서 무얼 먹을까, 생각하며 케이크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커피에는 이 케이크가 잘 어울립니다.”
뜻밖에도 영어 발음이 매끄럽게 들렸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의 음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흰 옷차림의 사내가 서 있다. 목화는 그의 추천대로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올린 뒤 자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실내 등이 꺼지며 퉁탕! 퉁탕! 귀를 찢을듯한 굉음이 머리 위에서 폭발하듯 들려왔다.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니 천정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어두운 하늘에서 별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펑! 펑! 폭발음이 터질 때마다 별꽃 무리가 수줍게 떨리면서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목화는 폭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뱉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왕하오의 가슴에 안겨 있다. 목화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암흑과 같은 어둠 속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타악기의 연주는 사라지고 폭죽 소리와 관광객들의 감탄사가 어둠 속에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퍼졌다. 퉁탕! 퉁탕 탕!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올 때마다 폭죽이 터진다. 화려한 불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왕하오가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친구들이 결혼하거나 취직할 때 그녀는 말레이시아로 왔다. 그때 그녀는 사랑, 결혼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 나라에 와서 비록 월급은 적지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목화는 자신이 유학 온 셈 치자고 생각했다. 유학을 왔으니 돈은 적게 버는 게 맞아. 그러니 영어만은 확실하게 배운 다음 귀국하는 거야. 그래야 억울하지 않지.
지나간 이십 대와 시작의 삼십 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일까? 여전히 혼자인 것은 같고, 다른 것은 직업이 조금 안정되어 있다는 것일까?
요즘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왕하오와 함께 있을 때면 그의 선한 눈빛이 마냥 좋았다. 자밀과 운동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여전했다.
대학 일학년 때 과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그녀는 남자 부근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뒤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가 원할 때면 금세 몸이 굳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어서 헤어졌다. 졸업 후 알바를 하다가 처지가 비슷한 알바생을 만나 서로 감싸주다가 애정으로 발전했다. 그가 경호였다. 그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절정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서로의 가난이 그들을 묶어주는 것 같았다. 취업이 되지 않다 보니 이별을 말하지 않았을 뿐 지루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가난한 그들에게는 사랑보다 취직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한식은 왜?”
그녀는 이 분위기를 농담으로 바꿀 요량으로 던진 말이었다.
“난 모카 공주의 요리사니까. 넌 따로 요리를 배울 필욘 없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금방 결혼하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화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모카! 싸랑해, I love you. 사야 신따 무(Saya cinta mu)…….”
사랑한다는 말…… 이성 사이에는 이미 사라져야 할 박물관 언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고 싶지 않았던 말, 아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말. 오늘, 그 말을 왕하오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목화는 생애 처음 듣는 소리처럼 진실하게 들렸다. 아득히 먼 옛날 사람들이 주고받으며 행복해 했던 말.
“나도 사랑해.”
목화는 그의 사랑에 그녀의 사랑을 부었다.
목화는 샤워를 끝낸 뒤 거울 앞에 서서 퍼렇게 멍든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고생만 하고 살아온 엄마의 슬픈 침묵이 가슴을 도려낸 듯 아팠다. 그러나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유 중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행복에 있지 않았을까.
살기 위한 변신은 이것으로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넌 뭐든 잘 해낼 거야. 목화니까.’
목화는 거울 속의 그녀를 향해 힘주어 말했다.
상처가 많으면 무뎌진다고, 그 말은 사실일까? 무엇하나 똑 부러진 것 없이 감성적 사고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전과는 다른 여자로 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이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말레이시아는 꿈속에서 잠시 다녀왔을 뿐이라고, 그녀는 모든 것을 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도 왕하오가 그리웠다.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취업이 어려운 목화는 편의점, 식당에서 알바를 하다가 먼 친척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골프 리조트의 골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녀의 업무는 인터넷을 통한 골프 예약, 캐디 예약, 마시지 예약 외에도 손님들을 위한 안내와 서비스였다. 목화는 골프를 하다가 발목을 다친 할머니도 간병하고, 골프장에서 라운드 오는 손님들 관리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호텔 식당의 셰프 왕하오를 만나지만, 실수로 자밀의 아이를 임신한다. 자밀은 알라신의 뜻이라며 결혼을 강요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다. 자신이 역겨운 목화는 자신이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을까? 떠올린다. 어릴 적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때이다. 뱃속 아이가 점점 크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설자리가 없어진 목화는 귀국해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한다.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하오에게는 고향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픔이 가슴을 조여온다.
서울 근교의 고시원에 둥지를 튼 목화는 또다시 자신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이십 대의 꿈은 이런 삶이 아니었다. 목화는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서른셋의 나이가 벅찰 만큼 무거웠지만 대학 일학년 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왕하오가 한국에 왔다는 말에 그가 떠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취업을 해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 갈래 길에서 목화는 갈등하면서 독한 소주로 자신을 달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야 목화는 취직 시험을 볼 생각으로 학원 등록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후 몇 번 취직 시험에 떨어진 목화는 시험장에서 돌아오다가 한 사장으로부터 왕하오가 아직도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다시 폭풍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된 목화는 초 단위로 변화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한다. 마음속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목화는 상경하는 그녀에게 하던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되거든, 니 앞에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엄마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 기다려야제.’
백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해 걷는 목화의 얼굴로 봄이 아직 먼 찬바람이 때리며 지난다.
서울 근교의 고시원에 둥지를 튼 목화는 또다시 자신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이십 대의 꿈은 이런 삶이 아니었다. 목화는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서른셋의 나이가 벅찰 만큼 무거웠지만 대학 일학년 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왕하오가 한국에 왔다는 말에 그가 떠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취업을 해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 갈래 길에서 목화는 갈등하면서 독한 소주로 자신을 달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야 목화는 취직 시험을 볼 생각으로 학원 등록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후 몇 번 취직 시험에 떨어진 목화는 시험장에서 돌아오다가 한 사장으로부터 왕하오가 아직도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다시 폭풍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된 목화는 초 단위로 변화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한다. 마음속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목화는 상경하는 그녀에게 하던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되거든, 니 앞에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엄마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 기다려야제.’
백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해 걷는 목화의 얼굴로 봄이 아직 먼 찬바람이 때리며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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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는 제 몸을 친친 동여매고 있는 전깃줄을 끊어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작가 김다경이 곡진한 시선으로 그려낸 목화는 이국에서 막 돌아온 참이다. 이곳의 고시원을 떠나 말레이시아의 리조트에서도 열심히 일했지만, 그녀를 계속 옭아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계급의 굴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랑을 한다. 우리에게 슬퍼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수많은 목화들은 슬퍼할 줄 아는 능력조차 빼앗겨버렸다. 사랑 앞에서 주저하고, 찾아온 사랑을 외면하기도 한다. 멀리 떠난 곳에서도 고국에서의 삶을 반복하는 목화, 목화는 다시 편의점과 고시원과 늙은 부모가 있는 이 땅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그녀 앞에는 늘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
세상엔 수많은 따뜻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또 세상엔 정확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서른 살 목화』는 후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보고서가 아닌 자화상으로 읽히기도 한다. 충실한 취재와 그에 따른 생생한 묘사, 선입견의 포장을 낱낱이 벗겨낸 문장들이 그 자화상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목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지금 누구 때문에 슬퍼하고 또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곧 이 소설이다.
세상엔 수많은 따뜻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또 세상엔 정확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서른 살 목화』는 후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보고서가 아닌 자화상으로 읽히기도 한다. 충실한 취재와 그에 따른 생생한 묘사, 선입견의 포장을 낱낱이 벗겨낸 문장들이 그 자화상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목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지금 누구 때문에 슬퍼하고 또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곧 이 소설이다.
-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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