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수호자, 보호자로 여기는 관습은 자취를 감췄다. 이 건장한 여자들의 경우 두려워할 남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보호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들의 안전한 나라에는 야생동물도 없었다.
우리가 높이 칭송하는 어머니의 본성, 즉 모성애는 이곳에도 존재했고 가장 고귀한 능력으로 숭상됐다. 또한 우리가 그들의 관계를 실제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 지극했던 자매애도 존재했다.
테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황당하며 혐오스럽기까지 하다는 태도를 보였고, 우리끼리 있을 때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비웃었다. “헤로도토스만큼이나 구닥다리에 믿기 어려운 전통들이군. 여자들이 그렇게 단결을 잘 했었다고? 여자들은 싸울 줄이나 알지 단체를 꾸리지 못하고, 지독히도 질투심이 강한 건 다 아는 사실이라고.”
--- p.103~104
“우리는 여자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요. 여자들은 우리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죠.”
소멜이 약간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가정이 뭐죠?”
그러나 더욱 간절한 목소리로 자바가 끼어들었다. “그것부터 대답해주세요. 정말 일을 하는 여자가 전혀 없나요?”
테리가 말했다. “물론 있습니다. 가난해서 여자들도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죠.”
--- p.109
그는 자신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자신이 벌이는 일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쨌든 어느 날 밤 그는 그녀의 침실에 숨어들었다.
허랜드 여자들은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녀들은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고 약하지 않았으며 모두들 강인하게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마가 한 마리 쥐처럼 오셀로의 베개에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테리는 여자란 자고로 정복당하기 좋아한다는 자신의 오랜 확신을 실행에 옮겼다. 그의 강렬한 남성성에서 오는 자신감과 열정 속에서 그는 야수 같은 힘으로 알리마를 정복하려고 했다.
--- p.226
‘남자로 성장’하고 ‘남자답게 행동’한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진정 방대하다. 이 말의 거대한 배후에는 열을 맞추고 줄을 바꾸며 행진하는 남자들, 새로운 바다로 배를 몰아 항해하는 남자들, 미지의 산을 탐험하고, 말을 길들이고, 소를 몰고,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며, 대장간과 용광로에서 노동하고, 광산을 파고, 도로, 다리, 높은 성당을 건축하며,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온 대학에서 가르치고, 온 교회에서 설교하는 남자들, 즉 온 세상에서 온갖 일을 하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 즉 세상 자체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여자란 말을 들으면 한 성별로서만의 여성을 떠올린다.
--- p.233~234
어느 때는 저 뒤에 수많은 여자들이 있는 것 같다. 또 때로는 여자는 한 명뿐인데, 그녀가 이리저리 빠르게 기어다니면서 무늬를 흔들어대서 벽지 전체가 흔들리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매우 밝은 지점에서는 움직이지 않다가, 아주 어두운 지점에서는 철창을 잡고 세게 흔들어댄다.
그녀는 항상 철창 사이로 나오려고 애쓴다. 그러나 무늬가 목을 조여버리기 때문에 아무도 그 무늬를 통과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무늬에 이렇게나 많은 머리들이 있는가 보다.
--- p.272
그녀는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을 맛봤다. 지금 그녀는 돈, 그것도 그녀가 직접 번 돈을 소유하고 있었다. 구걸하고 졸라대고 구슬려서 얻는 돈이 아니라 그녀가 줄지 말지를 정할 수 있는 그녀의 돈.
물론 그녀, 그러니까 그에게 문제의 고지서가 왔더라면 그는 당연히 지불을 했을 것이고, 그녀에게 고지서 얘기를 꺼낼 필요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