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책을 내어놓은 의미는 분명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동네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동네의 역사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독특한 인생관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많은 얼굴로 우리 가까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대중매체에서도 전하지 않는 우리 동네, 동네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집값이 아니라, 주변의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와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우리의 바람은 소박하다.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고, 우리 동네가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즐길 거리와 만날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 책이 이 소소한 바람의 시작이 되고 매개가 되길 희망한다.
---「서문」중에서
성동역은 기획부터 운영까지 상당 부분 ‘상업적으로 대규모 물류, 유통’을 목적으로 기획된 기차역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1960년 6월 4일에 공설시장 형태로 출발한 ‘경동시장’은 성동역 바로 앞에 만들어졌었다. 성동역이 이미 대규모의 상거래를 염두해두고 기획된 역이었다면, 그 인근(현재는 제기동역 인근)의 대형 시장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그 기원에 대한 설명이 된다.
경동시장, 약령시장을 제외하면, 현재 ‘청량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시장들이 많지만(청량리 도매시장, 청량리 종합시장,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등), 행정구역상 이 대형 시장들은 모두 다 예외 없이 ‘제기동’ 소속이고, 60년 이상 된 오래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성동역이 있던 옛날 제기동은 대규모 시장이 모여 있는 상인들의 천국이었다.
---「제기동 - 보물을 품은 상인들의 메카」중에서
‘회기동 사람들’은 회기동 주민과 상인, 청년들의 즐거운 네트워크로 재미난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노원구에서 여기까지 4년째 오고 있다는 김대현 씨 얘길 들으니 재미가 뭘까 더 궁금해진다. 스물 세 살의 4년 차 지역 활동가는 기존 동네 축제라고 하면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 정도로 생각했지만 직접 기획하며 진행하니 달랐다. “되게 재미있었어요. 실제 뭔가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그렇고요. 제가 만든 축제를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가 느낀 즐거움 같아요.”
---「회기동 - 속사포의 후예들과 골목의 역사」중에서
그럼 지역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일단 개인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요. 도시 생활하면서 너무 외로웠거든요. 친구 관계와는 별개로 도시가 너무 삭막하게 느껴지고 사람들이 타인에게 관심을 잘 안 두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내가 사는 동네가 좀 더 따듯했으면 좋겠고, 사람과 사람이 좀 더 만났으면 좋겠고, 뭔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롭지 않은 그런 동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점점 커졌어요.
어렸을 때 잠시 독일에서 살았는데, 한인사회가 따로 있다 보니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이사할 때 도와주고 그런 서로 도움이 일상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너무 대비되더라고요. 특히 서울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전 항상 사람과의 연결을 갈망해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마음은 있어도 어디서 뭘 할지 몰랐는데, 학교생활을 계속 이 근처에서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문모아’로 연결되었고, 그래서 오랜 바람을 실천해보자 했습니다.” ‘외로움’에서 만들어진 활동의 동기가 너무나 공감된다.
---「이문동 - 우리 읍내의 정서를 품은 동네」중에서
“한 동네에 오래 살고 싶어요. (한 동네에 오래 산다는 건) 내가 그 동네 일원이 되는 거잖아요…. 그냥 내가 퇴근하고 아니면 학교 갔다가 집에 딱 들어오면 그냥 버스 내리자마자 ‘아… 내 집에 왔다’ 생각되는 거요. 동네로만 딱 버스가 들어서도 여기 내 친구 집, 저기 아는 아줌마 집, 저기는 누구 집… 이런… 내가 잘 알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내가 부르면 나올 수 있고 그런 데서 살고 싶어요, 저는.”
정수지에게 동네의 이미지는 물리적 공간의 느낌이 아니었다. 관계의 공간이고 ‘좋은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정수지에게 이런 ‘따뜻한 동네’의 이미지가 이상향처럼 떠올려지는 건, 어린 시절 그가 겪은 ‘오래된 동네 친구’에 대한 결핍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계속 동네를 바꿔서 이사를 했었다.
---「전농동 - 임금님의 경작지, 적전」중에서
말과 관련된 장한벌의 역사적 정체성은, 현대의 핵심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거래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전환된 듯 보인다. 1955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이래, 1974년에 한국의 고유 모델인 ‘포니(Pony)’가 출시되면서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다.
이후 1970년대 중고차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정부는 서울시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중고차 시장을 한데 모아 1979년 장안평 지역에 대규모 중고차 시장을 개장한다. 아마도 이 시기가 장한로가 정비되고, 서울시 강변도로가 정비되는 때였고, 이때 가장 ‘평평하고 넓은 서울 인근의 평지’를 고려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외부 강변도로를 타고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에 교통편이 좋은 편이다).
---「장안동 - 말의 쉼터에서 차와 사람의 쉼터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