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카노. 그냥 확인차 묻는 건데, 너희 둘, 그러니까 그런 사이 맞지?”
“응? 그런 사이라니, 어떤 사이……?”
“그러니까 카노랑 유키야는 서로 사귀는 거지?”
한 박자 늦게 내 얼굴의 난감한 기능이 마치 축제처럼 대폭발했다.
“뭐?! 하, 할머니,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뭐긴, 요전에 유키야가 너한테 그랬잖아? 계속 함께 있어달라고. 그거, 어디로 보나 고백 아니니?”
“그걸 어떻게 알아?! 할머니, 엿들었어?!”
“얘는, 엿듣다니 무슨 말이 그러니? 우연히 들린 거야, 우연히. 그런데 둘 다 색기도 부족하고 전혀 진전도 없어 보이고―사실은 어떻게 된 거니?”
할머니가 바짝 추궁하자 나는 입만 뻐끔뻐끔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 잘, 몰라…….”
--- p.13 중에서
유키야 오빠가 중간에 말을 삼키고, 안경 너머의 눈이 동그래졌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을 따라가듯 또 다른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정말로 갑작스런 반응이라 억누를 틈도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눈가를 비비며 웃었다.
“미안해요, 잠깐, 어디 갔나 하고 깜짝 놀라서―.”
말꼬리가 한심하게 갈라진 순간, 무언가가 부러지며 다시 세차게 눈물이 쏟아졌다.
또 사라진 줄 알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유키야 오빠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것이다.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이다. 그걸 아는데도 유키야 오빠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는 안심보다 불안과 공포의 흔적이 너무 강해서 몸이 얼어붙는 심정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눈가를 손등으로 누르고 숨을 죽이며 필사적으로 울음을 그치려고 하는데, 머리에 가만히 손이 올라왔다. 가늘고 긴 손가락 모양을 눈으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느꼈다.
“―미안해요.”
목소리가 나만을 향해 속삭였다.
“이제는 말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나는 또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숙인 채 몇 번이나 작고 빠르게 끄덕였다.
--- pp.18~19 중에서
“버!”
“버? 왜 그래요?”
유키야 오빠도 멈춰 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얼굴이 고추처럼 새빨개진 것을 느끼며 나는 용기를 짜냈다.
“버, 버스 타고 싶지 않아요. 걸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그건 상관없지만……, 거리가 꽤 먼데요? 혹시 다이어트 해요? 그런 건 카노한테는 필요 없어요.”
키시다 유키야 씨, 이 지독한 둔탱이! 아니면 내가 표현력이 부족한 거예요, 신령님?! 나는 주저앉을 것 같은 마음을 코트 옷자락을 꾹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소, 손잡고, 걸어서, 가고, 싶어요.”
잘라 말하고 나자 부끄러움이 태풍처럼 휘몰아쳐와 반쯤 울상이 되었다.
유키야 오빠는 프로그램에 없는 명령어가 입력된 컴퓨터처럼 얼어붙었다. 몇 초 지나자 시선이 흔들리고 어딘지 잘 모를 곳을 보며 입가를 손으로 슬쩍 감쌌다. 늘 하얗고 쿨한 옆얼굴이 희미하게 물든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저녁놀 때문일 것이다.
작게 헛기침을 한 유키야 오빠는 평소의 차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춤을 신청하듯이 공손하게.
“손 줘요.”
--- p.84 중에서